몰트 위스키와 블랜디드 위스키가 어떻게 다른 지 알게 된 것이 불과 수년 전이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상품명만 보고 마셨던 셈이다. 역시 나는 소주나 막걸리가 격에 맞다. 주머니가 넉넉해 고급 주종을 찾으려면 고량주나 증류식 소주가 딱이다. 맥주는 술이 아니다. 일종의 이온음료나 탄산수 비슷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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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마다 안성맞춤인 안주가 있겠지만 국물이 있거나 푸짐한 것에는 소주가, 전이나 홍어에는 막걸리식이다. 어지럽게 널려있다고 해서 다 안좋은 것만은 아닐텐데 젊은 시절 휘청거리며 걷다보면 부딪치는 전봇대보다 많았던 포장마차들이 귀해졌다. 사라져가서 아쉬운게 어디 한 둘일까만 포장마차에 삐뚤빼뚤 써놨던 많은 안주들이 그립다. 그 중에 하나가 '오돌뼈'다.
'오도독뼈'가 정확한 이름이라는데 삼겹살에 붙은 작고 연한 뼈 부위를 고기 안주이름으로 썼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다 '살'이 붙고 유독 이 고기에만 '뼈'를 붙이는데 포장마차 밖에서는 파는 것을 보지못했다. 살보다 뼈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가 부실한 사람은 입안에서 발라내도 되고 연골이니 씹어 삼켜도 된다. "오도독"하고....
그래서인지 누구든 오돌뼈를 냉큼 삼키거나 함부로 씹지 않는다. 자칫 잘 안보이는 숨은 뼈에 이가 상할 수도 있어서다. 그래도 맛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싸다. 안주로는 그만이다. 게다가 단백질이고 뼈까지 삼키면 칼슘까지 보충이 된다. 서민의 보양 안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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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꽤 오래된 얘기다. 사무실이 홍대 부근에 있다보니 연에인 보는 것은 다반사고 가끔은 촬영 현장도 마주치게 된다.
잠시 외출을 했다가 돌아가는 길인데 카메라를 든 사람과 마이크를 쥔 사람이 길가는 행인을 붙들고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지나치려는데 그 마이크 쥔 이가 내 팔뚝을 붙든다. "분자 요리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은 자주 들어봤는데 왠 '도'? 얼마전 TV다큐에서 본 기억이 남아 있었다. "재료를 미세하게 분자단위까지 분석하고 연구해서 만드는 요리 아닙니까?" "네.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엉겹결에 몇 명이었을지 모르는 행인중에 정답자가 됐다. 그런데 정작 분자요리라고 해서 먹어 본 적은 없었다.
이후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밤톨만한 연두부같기도 하고 디저트로 나오는 푸딩같은 것 위에 녹즙을 살짝 꺼얹은듯한 요리를 맛봤는데 '분자요리'라고 했다. 그 맛을 기억할 수 없는 건 내 입이 촌스러워서거나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해서일거다. 신선한 재료 그대로의 맛을 냈다고 했으니 건강에는 나쁠리 만무한데 그 맛은 밍밍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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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혹시라도 고깃집에 가게되면 양념없이 소금에 찍어먹는 메뉴를 고른다. 좋은 고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다. 우리집 아이들은 양념갈비나 특히 떡갈비를 좋아한다. 아내가 가끔 마트에서 장을 봐오는 아이들 찬거리중에서도 떡갈비는 환영을 받는다. 떡갈비는 비싼 쇠고기를 다져넣고 각종 채소와 양념으로 구어내니 손이 많이 간다. 본디 임금 수라상에 올랐던 음식이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가는 노릇이다. 순수한 고기맛보다는 갖은 양념에 어우러진 불맛이 더 배여있다.
씹기 수월하고 혀에 감기는 단 맛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우시장에서 소를 고를 떄 이빨을 본다. 이빨이 튼실해야 건강하다. 아마 임금들이 단명한 것도 식단 때문일지 모른다. 칼로 다져놓아 오래 씹을 필요가 없었을테니 치아가 부실했을 것이고 침이 나올 새도 없이 삼켜져 소화기능이 좋았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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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신문, SNS에서 다양한 글을 만난다. 찾아서 읽기도 하고 권해서 찾아 보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은 '오돌뼈'같은 글이다. 천막비닐만 걷으면 문턱도 없이 들어설 수 있는 단골 포장마차의 흔한 안주같지만 조심하게 씹으면 그보다 맛있을 수 없는 글 말이다. 내공이 미치면 활자 속에 숨은 오돌뼈를 발라내지 않고 그대로 씹어 삼켜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수도 있다.
발음도 힘든 프랑스 무슨 요리학교를 마쳤거나 호텔 주방장이 내놓는 분자요리 같은 글은 그 맛을 제대로 탐지하는 혀를 가지지 못한 탓에 자주 못 먹는다. 모양은 이쁜데 양도 적으려니와 비싸서 엄두가 안난다. 아무래도 전문가인 미식가들이나 맛 볼 글이다. 그래도 초대를 받는다면 가끔은 슈트를 입고 냅킨을 무릎에 펼치는 수고를 할 생각이다. 포크와 나이프 쓰는 요령 정도는 안다.
어른 아이 할거 없이 사람들은 대체로 떡갈비같은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넘쳐나는 글도 대부분 그런 종류의 음식이다. 대체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다작 작가들이 그렇다. 공을 들여 갖은 양념과 채소를 섞고 향신료로 맛을 냈다. 씹을 새도 없고,단 맛 배인 패스트푸드에 적응이 된 현대인에게는 안성맞춤인지도 모른다. 결코 뼈조각같은 건 용납이 안된다. 애초부터 들어가는 고기는 줄이고 다른 부속 재료로 양을 늘리니 장삿속이 녹아 있다. 경험과 사색은 부족한데 레시피만 익혀 그럴듯하게 플레이팅하는 요령만으로 내 놓은 글이다. 가히 멀리해야 건강에 이롭고 오래 산다.
포장마차는 차츰 사라져가지만 오돌뼈같은 글을 요리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럴듯한 빌딩에 입주하지 않고 수년, 수십년을 우리와 호흡하며 철거반에 쫓겨다니면서도 그 자리를 지켰던 장승같은 주인장들이다. 우리의 기원을 들어주고 애환에 같이 아파하고 그만 마시고 들어가라 술잔을 빼앗던 속 없는 양반들이 있어 우리가 조금은 비틀거려도 된다.
오돌뼈 한 접시에 소주 한잔이면 족하다. 나도 그런 요리를 내놓고 싶다. 그런 글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