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용인에 작은 원목가구공장을 차렸던 적이 있다. 현장에서 인테리어 작업을 마무리하는 즈음에 들여오는 가구들이 항상 성에 차지 않았다. 일로 만나 호형호제하며 막역하게 지내던 가구공장 사장이 제안을 했다. "형 그러지 말고 형이 원목가구 공장을 한번 해보면 어때? 지금 공장 옆에 빈 창고도 하나 있는데..." 깊이 고민도 해보지않고 동업으로 덜커덕 공장을 차렸다.
서울과 용인은 멀었다. 아무리 전화기가 불이 나도록 설명하고, 팩스로 도면을 보내도 엉뚱하게 작업되어있기 일쑤였다. 공장으로 내려가는 일이 잦았다. 마침내 작은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침대까지 갖춘 숙소로 사용하며 묵는 날이 많아졌다.
그 날도 금요일이었다. 토요일에 납품해야하는 물량이 제법 믾았다. 까다로운 작업이라 불안했다. 게다가 골프약속까지 잡혀 있었다. 골프 채비를 갖추고 공장으로 내려갔다. 독려를 했지만 야간작업은 더디다 . 밤을 꼬박 새우고서야 제작이 마무리 됐다. 골프장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준비한 화물차에 모든 짐이 실리지 않는다. 마침 내 차는 SUV스포티지라 남은 짐을 실을 수 있다. 내 차까지 내어주고나니 공장에 남은 차는 영업용으로 쓰는 마티즈 1대다. 그날따라 옆구리에 새긴 회사 이름과 전화번호가 선명하다.
선택의 여지도 없었고 나는 상관이 없는데 분당에 들러 선배를 태우고 가기로 한게 내심 걱정됐다. 사람 둘, 캐디백 두개와 보스톤백 둘이 실릴지 걱정이다. 약속한 아파트로 들어서니 선배가 나와 있었다. 차가 코 앞까지 갔는데도 시계만 연신 쳐다본다. 정차하고 내렸다. "형 뭐해? 빨리 싣지 않고..." "너... 너.... 이게 뭐냐?" "뭐긴 뭐야 자동차지.... 어떻게 실어야 잘 실었다고 소문이 나나..." 나는 운전석에 선배는 운전석 뒷자석에 탔다. 캐피백은 조수석을 눕혀 포개고 보스톤 백을 올리고 출발했다.
황당해하던 선배가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낄낄댄다. "너 어떻게 이 차를 끌고 올 생각을 했냐?" "뭐 어때... 어떻게 그렇게 됐어. 잘 나가네 뭐..." "푸하하하하..." "ㅋㅋㅋㅋㅋ..." 토요일 아침이라 고속도로에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버스전용차선으로 앰블런스 한대가 경광등을 번득이며 쏜살같이 지나간다. 시간에 맞춰 골프장 입구로 들어섰다. 클럽하우스 못미쳐 앰블란스 한대가 길가에 주차되어있다.
차는 클럽하우스 정문 앞에 섰는데 골프장 직원들이 백을 내려 줄 생각을 안하고 또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다. 심지어 한 직원이 차 앞으로 다가와 어서 차를 빼라고 손짓한다. 내렸다. 조수석을 열고 보스톤 백 하나를 빼니 그제서야 황급히 달려들어 도와준다. 다들 뜨악한 표정이다. 그랬든 말든 상관없다. 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선배는 후다닥 보스톤 백을 들고 클럽하우스로 먼저 들어간다. 발렛파킹을 부탁하면서 당부를 했다 "뒷문 텅텅거리니까 요철 조심해서 넘으세요"
당당히 걸어들어가 프론트 앞에 섰다. 그런데 라커키를 건네 줄 생각을 안한다. 또 또 멀뚱히 쳐다만 본다. 직원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저기 이봐요 락커키..." "어머...아...아....네.... 죄송합니다. 택배아저씬줄..." 그제서야 내 행색을 전신거울에 비춰봤다. 톱밥가루는 서리처럼 머리와 구두 끝에에 앉았고, 후줄근한 점퍼차림의 아저씨가 거기 있었다.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갔다. 토요일이라 테이블 빈 곳이 별로 없다. 선배들이 나를 보자마자 손가락질 하며 한바탕 웃는다. 벌써 사전정보(?)가 샜다. 그렇게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뒷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가 들린다
"그래서 늦겠다 싶어서 ..... 앰블런스를 타고 말이야..." "하하핫 역시 김원장은 센스가...."
빕숟가락을 들다말고 돌아다 봤다. 유난히 하얀 얼굴에 머리가 희끗한 중년영감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