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1

by 문성훈

그녀는 살아있는 저의 구원자이고, 늘 함께하는 스승입니다.

'촛불혁명'에 이어 다시 한번 한국 정치사의 큰 획을 그은 '서초혁명'(동학혁명에 빗대고 싶습니다)날인 9월 28일.
어제는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합니다.

결혼기념일로는 처음으로 아내는 2박3일간의 학교행사가 있어 집을 비웠고. 예전같으면 같이 했을텐데 이 날은 저만 서초동으로 향했습니다.
곤두 선 가시만 무성한 남편을 만나 무던히도 속을 끓이며 살았는데도 아직 그대로의 품성을 간직하고 있어 언제나 고마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대기업의 사원으로 소개받았을텐데 연애기간 중 맨 손으로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 결혼을 했으니 이후로 무려 1년반동안 월급 봉투를 받아보지 못한 아내입니다.
출근하려고 현관을 나서면 무척이나 미안하고 수줍게 "오빠... 오늘 우유 대금을 줘야해서...." 그러면 저는 무심히 만원짜리 한장을 쥐어주고 회사로 향하곤 했습니다.
집에 쌀이 떨어졌는지, 전기세는 안밀리고 내는지 무심하기가 이를 데 없는 형편없는 남편이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양가에 결혼하겠다고 해놓고 미루고 미루다 장모님이 저를 불러앉혀 놓고는
"문군. 오해하지 말게... 내가..."
결혼을 약속한 두 남녀가 너무 오랫동안 혼인을 미루니(중매라 통상 6개월안에 결혼해야 한다던데 저희는 2년 반동안 만났습니다) 기독교 신자이신 장모님이 팔공산에 있는 용한 점쟁이를 찾으셨답니다. 그랬더니 둘의 궁합이 너무 안 좋다고 했답니다.
해서 제가 화를 삼키며 "점쟁이 바부랭이 주제에 감히 누구더러... 어머니 당장 날 잡으십시요(점쟁이 이 놈. 내가 얼마나 잘 사나 보여주지) 날 잡는대로 바로 결혼하겠습니다"라고 해서 급하게 날을 잡았습니다.

당시 안정된 직장(사업 시작한 저보다는 훨씬...)을 다니던 아내를 그만두게 하고 고향으로 내려보내 모든 결혼 준비를 시켰습니다.
세부지침까지 내렸죠.
"결혼식장은 무료인 관공서를 빌리되 일가친척이 많으니(양가 29남매 + 자손) 좌석 수가 많아야 한다. 따라서 굳이 우인에게 돌릴 청첩장도 찍지마라, 식사는 식장 근처 3,000원이 넘지 않는 갈비탕이나 설렁탕집을 물색해라"

아내는 그대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결혼식장은 고향 근처 대처인 부산에 있는 '부산일보사 대강당'을 무상으로 빌리고(10몇층이던데 전망 하나는 끝내줬습니다) 근처 갈비탕 집을 잡아 뒀더군요.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 당시 제 직원들에게도 결혼식 당일 "장기 출장 다녀오마"하고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침 일찍 부산에 도착하고나서야 깜빡하고 식장에 입고 갈 예복을 준비 안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근처 광복동 신사동 매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느매장 쇼윈도우에 <양복 1벌을 사시면 결혼 예복을 무료 대여 해드립니다>란 문구가 보였습니다.(아마 '캠브리지'였던듯) 얼마나 횡재한 기분이던지. 아무거나 급한 대로 양복 한 벌을 샀습니다. 그리고 결혼 예복을 빌렸죠.
직원이 예복을 입혀 주며 "그런데 고객님 결혼식이 언제십니까? 바짓단과 소매를 조금 줄여서 준비해 두겠..."
채 말이 끝맺기도 전에 "조금 있다 오후 1시입니다" 눈이 놀란 토끼마냥 커지더군요. 오줌 마려운 사람처럼 종종거리며 소맷단에 안보이게 핀을 꽂고. 바짓단도 어찌어찌 해주더이다.

그렇게 쇼핑백에 양복 한 벌과 빌린 예복을 넣고 식장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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