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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06. 2019

사는 맛

어제는 저녁초대를 받았습니다. 부부동반으로 이번이 두번째 만남입니다.

처음 집들이할 때 만난 아내들도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언니 동생하며 무척 친하게 됐습니다. 올 7월에 리모델링을 끝낸 건물의 건물주인 젊은 부부의 초대입니다.
집들이에는 도자기 화병을 선물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 부탁받은 그 건물 초기 드로잉한 종이를 챙겨갔습니다. 액자를 해서 걸어두겠답니다.

아직 어린 남매를 둔 부부는 이 건물 3,4층과 옥탑을 씁니다. 제가 디자인한 집에서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기분은 남다릅니다. 일로써도 한번 인연이 닿으면 늘 고마워하고 찾아준다는 사실이 남다른 제 긍지고 자부심입니다.

어제 역시 과분한 대접(제가 좋아하는 토속 집밥으로 안주인이 손수... )과 찬사를 듣고 돌아왔습니다만 낯을 가리고 과음하지 않는 아내가 취했습니다. 이번 주에 밤샘을 여러 날 한 탓도 있고 마침 시험과 과제가 끝나 긴장이 풀어져서인 것도 같습니다.

오늘 아침. 그 부부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답장이 왔습니다. 저희 부부가 두 사람에게는 선물같다면서 언제든 환영한다고 조만간 또 만나자고 합니다.

아래 글은 제가 보낸 톡의 내용입니다.
사진은 전달한 드로잉했던 그림입니다.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ㆍ ㆍㆍㆍ

" ㅇㅇ는(작은 아들) 식탁 밑을 기어다니고, ㅅㅇ(큰 딸)이는 연신 재잘거립니다.
아이가 계단에 앉아 그림책을 보고있는 상상을 해 봅니다.(자주 그러고있고 좋아한답니다) 자기 방은 결코 보여줄 수 없다는(제가 보고싶다니까) 어린 숙녀의 속내가 이쁩니다.
세상은 이 아이들이 있어 꽃을 피우고 숨을 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태 떼지않은 1층 우편함의 보호비닐을 벗겨내면서 아직은 때 묻히고 싶지않은 두 분의 마음이 읽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서 도착이 늦겠다는 아내의 전갈을 받고 먼저 들어갔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도 될것같아 편하게 맞는다는 ㅊㅁ씨(그댁 안주인)의 말이 어떤 환영인사보다 반갑습니다.
결혼해서 아니 만난 이후로 '처음' 아내가 만취한 모습을 봤습니다.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도 아닌데...' 그래도 줄어드는 양주병(여자들은 양주, 남자들은 소주)을 보며 불안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왠지 그대로 내버려둬도 될 것만 같았습니다.

개구장이는 쿵쾅거리며 들락거리고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는 어른들 대화에 양념을 치고 임재범(음악)은 무심한 청중을 탓하지 않고 열창을 합니다.
그 분위기가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우리의 인연이 소심한 아내를 무장해제시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처음'이 참 많은 만남입니다. 저번에는 내가 만취를 했었고, 아내가 그 뒤를 잇는 일도 '처음'이었거니와 아내가 두번 만난 누군가와 포옹을 하는 장면도 '처음' 목격했습니다 (여성동지들이 의기투합해서). 물론 집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 혼절한 모습도 '처음'이니 짖꿎은 지아비인 저는 아내의 약점을 잡은 것도 같아 왠지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 걸 숨길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해야 할 일이 있어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아내 역시 아침에 일이 있다고 했으니 사무실에 도착해 알람을 대신해 전화를 했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입니다. 아니 정신이 덜 든 것이겠지요. 예상했던 대로 어젯밤 실수는 없었는지,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러워합니다.

그리고 '핸드폰' '파우치' '외투'를 순서대로 찾습니다. 어젯밤 침대에 누일 때도 잠꼬대처럼 이 순서 그대로를 되뇌었습니다. 장난을 칠까하다가 괜찮았다고 말해줬습니다. 지난 날 저는 수없이 그랬을텐데 굳이 나 즐겁자고 잠시라도 고민하게 만들면 나쁜 남편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ㅊㅁ씨 고생하셨고 ㅈㅎ씨 고맙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어서 애기들 고녀석들 인사를 못받고 왔네요.

마음껏 기댈 수 있고, 조금은 허트러져도 허물이 안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처럼 든든한 일이 또 있을까요. 아내가, 남편이 그리고 가족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거기에 서슴없이 자고 가길 권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니 어제의 만남이 처음처럼 그리고 다음에도 그렇게 귀한 인연으로 이어질겁니다. 저 역시 두 분이 가꿔나갈 행복한 가정의 한 조각을 맞춰 준 것만 같아 혼자 뿌듯해한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우리 부부는 아무래도 술주정꾼 부부가 되어버렸습니다 ^^  
그래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은 걸 보니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아마 아내는 오늘 온종일 전전긍긍할지 모르지만... 하하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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