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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Dec 07. 2019

인테리어 단상

산고를 치른다는 말은 알지만 경험해 본 바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고통도 의미도 덜할 지 모르지만 프로젝트 하나를 끝마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의 희열이 그것과 어느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하루를 온전히 내 그림을 펼쳐 낸 이 곳에서 보냈다. 커피를 마시고 머레이 페라이어의 피아노 선율을 따라 책을 뒤적였다.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고(혹은 알고 있다 착각하는) 또 누구도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분야에 있으면서 몇 가지 공통된 점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디자인에 대해 민감하다. 개성만큼이나 다른 취향을 지녔지만 누구나 나름의 미적 감각은 타고나기도 하고 세상을 경험하며 눈을 뜨기 마련이다.

다만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미흡할 뿐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필요한 지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디자이너와 기술자를 자주 혼돈한다. 의뢰인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애기했으니 디자이너가 그대로 구현해 줄것이라고 믿고 디자이너는 자신이 제시한 안이 채택되었으니 그대로 현장에 옮겨줌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형태는 아파트다. 이사를 하면서 인테리어를 하게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부동산사무실과 함께 인테리어 가게가 성업중이다.
집주인이 인테리어를 의뢰하러 들리면 의욕적인 인테리어 사장은 이전에 공사를 끝낸 같은 단지의 집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것이 여의치않다면 인테리어 잡지에 실린 아파트의 인테리어 사진을 펼쳐보여준다. 이어서 집주인이 가장 궁금해하는 견적을 물어보게 되는데 사장은 너무도 시원하고 명쾌하게 대답을 해준다.
그것도 어떤 소재로 어느 부분까지 하게되면 얼마가 되고 공사기간을 어느정도 걸리는지도 그 자리에서 말해 준다. (나는 그 능력이 언제나 부럽다)  

대개의 경우 집주인은  한번에 결정하지 않고 같은 요구조건을 제시해서  2~3군데의 견적을 대비해보고 공사금액이 적정하면서(대개는 낮은 곳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신임이 가는 가게를 선택한다. 이윽고 계약이 성사되면 사장은 친절하게도(?)  부위별 자재와 컬러등 집주인 눈 앞에 여러 종류의 샘플을 제시하며 선택권을 준다. 별다른 추가사항이나 이견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대로 완공까지 이르게 된다.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나는 인테리어 회사나 업체라고 하지않고 '가게'라는 표현을 썼고 디자이너라고 하지않고 사장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번째로 인테리어 가게 사장은 집주인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시골출신인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지, 지향하는 삶이 어떤 것이며 마련한 집이 가족에게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 얼마동안 거주할 예정인지 어떤 직업, 자녀들의 나이와 성별, 가족들의 성향이 궁금하지 않다. 더우기 미처 얘기하지 못했거나 스스로도 몰랐던 공간에 대한 여망과 한계를 끄집어내고 풀어내는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데 대부분 인색하다.
그저 자신의 가게에 진열된 상품(?)이 채택되길 바라고 그 판단을 빨리 내릴 수 있도록 성심성의를 다할 뿐이다. (실제로 나는  근 1년동안을 만나서 대화나누고 상의해서 계약한 적이 있다)

둘째 그 집의 디자이너는 실질적으로 집주인이 됐다.
인테리어가게 사장은 잘된 예를 보여줬을 뿐 자연스럽게 공사 범위와 설계,자재선택까지 집주인이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생각과 바램을 읽어내려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량과 경험을 살려 최선의 디자인 안을 제시하고 적절하고 정확한 견적을 산출하려 하지 않는다.
그로인해 인테리어가게 사장은 디자인이나 공사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고 집주인은 거의 모든 결정을 자신이 했다는 이유때문에 불만을 제기하기 어렵게 된다.
집주인이 눈 앞에 펼쳐진 결과물을 두고 사진과 입체. 상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있다. (최소한 선택의 폭을 줄여줘야하는 책임이 디자이너에게 있다)

나는 이 예를 들며 '의뢰인'이라 하지 않고 '집주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것도 이유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의뢰인은 자신이 비전문가임을 인정하고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할 줄 알아야하지만 반면 응당한 댓가를 지불한(지적재산에 대한 이해가 수반된) 의뢰인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인테리어를 의뢰하는데있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의 평소 생각, 바램을 얘기하면 된다. 그것을 현실화시키고 조정해주길 원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찾은 것이다.
작업을 맡겼다면 전문가의 의견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는 그것이 비록 사소한 것이라도 질문을 해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결국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감각과 아이디어를 파는 사람이다.
상품을 파는 영업사원이나 기술자가 아니다. 아무리 오랜 경험을 가진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각 공정 즉 목공, 도장, 전기등 다양한 분야의 숙련된 기술자를 능가하지 못한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각기 다른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의 실력을 빌어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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