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감히 누구더러...

by 문성훈

미물이 어쩌고 저쩌고, 할 수 없다느니 하는 사람을 보면 우습기도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망고는 다 커서 우리 집에 온 유기견이다.
큰 남자어른만 보면 꼼짝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던 게 엊그제같은데 이제는 고개를 들고 지나칠 수 있다. 가끔 어디서 쿵하는 소리만 들리면 몸을 웅크리지만...

새끼 때 모습은 보지못했지만 지금을 봐도 아마 이뻤을 거다.
순하디 순해서 집안에선 까만 녀석이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가끔 사고를 치긴 하는데 딸아이가 휴지 속에 간식을 숨겨놓고 찾는 훈련을 몇번 시켰더니 식구들이 없는 사이 휴지통에서 휴지를 꺼내놓는 정도가 고작이다.

망고는 제 녀석을 데려 온 딸아이에게 지극 정성이고 의리파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지가 제일 좋아하는 산책도 가장 자주 시켜주는 사람은 나인데 딸아이가 집에 있으면 다른 식구는 안중에도 없다. 다른 식구가 부르면 쫓아오긴 하는데 잠시 머물다 이내 딸아이 꽁무니에 붙는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매일 새벽 사료 달라며 보채기를 안방 문 앞에서만 한다는 것이다.
기껏 딸아이 방에서 같이 자 놓고서는 딸아이 깨울까봐 무단히 우리 부부한테만 보챈다. 이제 우리 부부는 녀석의 낑낑대는 소리를 알람으로 여기고 스마트폰도 꺼두고 잔다. 깨어나 열린 방 문틈으로 새근대는 딸 얼굴 한번 보고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녀석 눈과 마주치면 기가차서 웃고 만다.

산책 나가자면 득달같이 현관앞으로 달려와 꼬리를 흔드는데 그것도 집안에 딸아이가 있다면 마다한다.
산책가자고 부르면 쫓아오긴하는데 돌아서서 딸아이 얼굴만 쳐다본다. 꼬리는 여전히 흔들면서 같이 나가자고 조른다. 그래도 딸아이가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산책을 포기하는 녀석이 기특하기도 용하다 싶기도 하다.



동물병원에선 이빨을 보고 4살쯤 됐다고 하는데 녀석은 여전히 어린애고 앞으로도 어린애일 거다.
망고는 철이 든 어린애다.
아무리 놀고 싶어해도 피곤하다 밀치면 그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아 눈망울만 말똥거릴 뿐이다.
휴지를 어질러놓은 날은 귀가를 반기다가도 암말없이 휴지를 줏어 담으면 고개를 푹 숙이고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스스로 반성한다. 그럴때면 시근이 들었구나 싶은데 괜찮다고 부르면 벌떡 뛰쳐나와 쫄랑거리는 품이 영락없는 어린애다.

가끔 패드 밖으로 오줌을 싸놓기도 하는데 수컷이라 겨냥을 잘 못해서라고 그때는 아들녀석이 변호인을 자처한다. 아무래도 누나보다는 자기가 그 심정은 더 잘 안다는 투다.
패드와 마루바닥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증거가 신빙성을 더해 무죄방면되기 일쑤다.
그래도 내 판결이 날 때까지 망고는 피고석인 소파에 엎드려 재판 결과를 기다린다.
하기야 검사겸 판사인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변호인들이니 뻔한 판결이 날텐데도 망고는 어른스럽게 재판정의 숭고한 분위기를 읽는다.
제 편이 많다고 의기양양해하지도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하는 법은 없다.

망고에게도 천적이 있는데 아이들의 할머니들이시다.
그래도 어머니는 선친 제사나 명절에만 뵈니 덜한데, 장모님은 한번 머무시면 족히 한 달은 계셔서 망고에게는 시련의 시기다.

어머니는 나 어릴적 키우던 삐삐를 쥐약으로 품안에서 잃으신 상심이 워낙 크셨던 분이고, 장모님은 정원 넓은 저택에서 아이 다섯과 개와 고양이를 한번에 키우셨던 분이라 동물 사랑이 남다르신데도 망고의 빠진 털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망고야~!" 말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간다.

목소리 톤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망고는 언제나 두 분 곁을 슬금슬금 지나다닌다. 와보라고 손짓해도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다가간다. 어르신으로 알아모시긴 하는데 항상 조심스럽다. 배를 드러내고 품으로 파고드는 재롱도 부리지 않는다.
망고는 예의를 아는 동방예의지국의 강아지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지만 빠진 털이 제 것인 것 만은 부인할 수 없다.
두 분이 청소하느라 밀대를 잡으면 일치감치 딸아이 방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다. 어김없이 부직포에 제 털이 엉겨붙으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망고야~~~!"소리를 멀찌감치에서 들으려는 심산이다.
이럴때 망고는 현명하다.

망고는 누울 자리, 피할 자리를 분별한다.
아무리 배가 고픈 아침이어도 낑낑대기만 하지 짖는 법은 없다. 설사 안방문이 열려있어도 침대 맡에서만 부르지 침대로 올라오지 않는다. 아내가 집안의 침대만큼은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내려서다.
망고는 분명 다 큰 녀석이다.

망고는 욕심이 없다.
제 몫에 만족하고,넘치면 물린다. 사료를 수북히 쌓아놔도 한꺼번에 다 먹지를 않는다. 식탁에서 고기를 떨어뜨려도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 줏어서 줘야 먹고, 주지 않아도 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일은 없다.
공원에서 제 친구들을 만나고 그 주인들이 간식을 나눠줘도 다른 녀석들처럼 으러렁대고 먼저 먹겠다고 실랑이하고 다 먹겠다고 욕심부리는 걸 못봤다.
사람들은 참 순하다고 칭찬해주는데 실은 착해서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배가 나오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다이어트는 필요없을 것 같다.
욕심부리않는 녀석의 복이다.

망고는 자기로 인해 다른 이가 피해를 보게 하지 않는다.
산책하고 흙 묻은 발을 씻겨 줄 때도 늘 조용하다. 목욕 후 녀석이 제일 싫어하는 드라이기 소음 앞에서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고있자면 기특하다. 딸아이가 발톱을 자르다 피가 났을 때에도 원망하지 않았다.

제 녀석이 데워놓은 쇼파 좌석에 누군가 앉으려 할 때는 언제든 제 자리를 내어준다.
개로서는 불편한 자세일텐데도 아이들이 팔 벼개를 하고 눕혀도 그대로 있고주고, 귀찮게 자주 불러도 외면하는 법이 없다.
망고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강아지다.

오늘도 딸아이가 외출했다. 망고는 늘 하던대로 쇼파의 좁은 팔걸이에 올라앉아 현관문을 바라보는 망주견( 望主犬)이 된다.

누가 누구더러 개라고 뭐라 할까?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천지에 깔렸는데...

#유기견_망고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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