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친묵 이제사 내리는 비 그리고...

by 문성훈


"나도 울었어. 어느새 울고 있더라구" 노회찬을 추억하는 멘트에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볼펜을 만지작거리던 손석희의 길고 긴 침묵. 그 장면에서 울었다는 지인들이 많다.
정작 그는 눈시울만 붉혔지만 많은 사람을 울렸다. 그 사람들이 울음을 그치고 다시 한번 침묵의 장중한 무게를 실감하고 있을 때 정작 본인은 그제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김훈선생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상대 정치인의 공격에 물타기로 오염도를 평균화시키는 여의도 정치를 통렬하게 꼬집는다.
"민주주의는 말로 하는 거다. 말이 병들면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중략)....이슬람 경전 코란을 봤더니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말라고 했어.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걷지도 말라고 하고. 지금 우리는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1초도 안 참아. 생각을 통과해 나오지 않은 말들이지.”

더없이 유치찬란하고 저속한 말의 향연이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4.3보궐선거가 불쏘시개라도 된듯 화염을 더하더니, 고성산불에 이르러 정점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선거 결과에 아전인수격인 해석은 익히 들어왔던 바지만, 국가재난에 무속적인 해석까지 곁들이는 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거센 광풍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불길도 '병든 민주주의의 산실' 여의도를 불태우지 못했다.

어디 정치뿐인가. 말과 글이 전부인, 가장 명료해야 할 '언론'의 최근 행태는 더 기가 막힌다.
정치권의 전문영역인 거짓말과 막말을 제대로 익혀 이제는 책상머리에서 미래를 예단하고, 천리 밖를 내다보는 기사를 써대는 신묘한 경지에 다달았다. 혀를 빨리 놀리는데 그치지 않고 먼저 말부터 뱉어 놓고 본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통탄스럽다.
아무리 '무관의 제왕'에서 내려온지 오래라고는 하지만, 난립하는 인터넷 보도매체와 사이비 기자의 양산이 한 몫 하고 있다지만 민주사회에서 여론이 가진 막강한 힘을 감안할 때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김훈선생 역시 유력 일간지 기자로 '밥벌이'를 하던 분이다. 손석희사장도, 잇단 산불에 무속적인 해석을 하던 정치인도 언론인 출신이다.
김훈은 스스로 과거 기자시절 살벌한 군부독재하였지만 진실에 눈감고 외면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회상했고, 손석희는 젊은 시절 양심을 따르다 수갑찬 모습을 보였다. 막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정치인 역시 저녁시간 뉴스에서 보던 이다.
뿌리는 같아도 어떤 나무는 아름드리 고목이 되고, 또 어떤 나무는 푸른 그늘을 드리워 사색하게 하는데, 때로는 나무를 옥죄고 숨막히게 하는 칡넝쿨이 되기도 한다,

비가 내린다. 붉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우리를 조바심나게하고 안타깝게 하던 큰불을 잠재우니 그제서야 하늘이 그 간절하고 고된 정성에 답하시듯 잔불마저 쓸어가시려는듯하다.
언젠가는 언론이라는 강 그 바닥에 오랜 세월동안 가라앉은 병들고 썩은 뻘마저 뒤집어 정화시키는 큰 비가 내리기를 바란다. 나무를 휘감은 칡넝쿨을 베어 낼 날이 멀지 않았음을 믿으려 한다.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으면 차라리 침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