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재능을 지녔지만 갱단의 총격으로 형을 잃고 학교에는 정을 붙이지 못하는 흑인 십대 마일스에게 세상은 두려움 그 자체고 두려움은 폭력을 부르기 마련이다.
학교와 거리 어디에도 자신을 위해 비워 진 자리는 없어보였고 부조리하고 거친 세상은 유약한 그를 마약과 총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한다.
동네 이웃 아저씨로만 알고 지내던 전직 정보요원 로버트가 갱단의 소굴에서 그를 데리고 나오려 하지만 마일스는 그리 고맙지가 않다. 그런 마일스에게 로버트는 갱단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인지 묻고 총구를 들이대 죽음의 공포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려고 한다.
"너는 선택할 수 있다. 재능과 기회가 있으니 살아 있을 때 이용하라"고 충고하는 로버트에게 마일스는 "왜 하필 나냐?"고 묻는다. 로버트는 함께 알아보자면서 데리고 나온다.
마음이 연 마일스는 로버트의 집을 찾아갔다가 금이 간 부엌의 벽을 칠해야겠다고 한다. 로버트는 마일스가 제시한 115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책 한 권을 건네며 그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다.
그 책이 '세상과 나 사이'다.
낮은 코에 두툼한 입술이 연상되는 전형적인 흑인과는 다른 미국형 미남 배우인 덴젤 워싱턴의 전작 '이퀄라이저 1'을 봤던 터라 자연스럽게 이 영화 '이퀄라이저 2'를 보게 됐다.
덴젤 워싱턴이 분한 전직 정보요원 로버트는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다. 레스토랑에서건 집에서건 책을 읽는다.
그런 그가 비록 영화에서지만 인생의 갈림길에 서있는 흑인 십대에게 건낸 책이라서 책 제목을 기억했다가 곧바로 주문했었다.
그러니 꽤 오랫동안 서가에 꽂혀있었다.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강렬한 흑백의 표지디자인이 뭘 말하려는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일부러 찾아서 오늘에서야 읽었다.
"역사라는 신은 무신론자이고, 신의 세계에선 그 어떤 것도 의도된 것이 없다. 그러니 너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명심해야 한다. 깨지지 않는 약속은 없다는 것을 . 특히나 아침에 눈을 뜬다는 약속은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 이건 절망이 아니야. 우주는 본래부터 이런 것들을 선호하지. 명사보다 동사를, 상태보다 운동을, 희망보다 투쟁을 말이다. -p 113"
"자신이 이 나라에서 꼭 필요한 아래쪽이라고 이해한다는 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우리 삶에 관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해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람에 관해 생각하고 싶어하는 모습 가운데 너무 많은 부분을 부숴 버린다. 이해하기 위한 투쟁은 이 광기에 맞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강점이야 -p 164"
백인이 견고하게 구축한 미국 사회에서 공포와 불안을 안고 인종차별 속에 살아온 흑인 저자가 15세 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껍데기는 벗겨지고 도사린 인종차별은 팝콘처럼 사방으로 튄다. 짐작했던대로 불편하고 기분은 우중충해진다. 메시지는 무겁고 희망은 어둠을 비집고 들어오질 못한다.
그런데 이것이 차가운 현실이고, 아무리 노출을 해도 까맣다면 그대로를 현상하는 게 문학이라면 토를 달 수가 없다.
피부색은 한 가지지만 한국사회에 지역과 출신에 따른 차별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음을 믿는다면,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사회를 경험했으며 넘나들지 못하는 계층간의 두텁고 높은 벽 앞에 좌절한 적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손가락질하고 경멸하면서도 그 벽 너머를 동경하고 진입하려고 애쓰는 백인이길 원하는 흑인의 모습을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본 것도 같다.
아무런 가능성도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 불친절하고 우울한 이 책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비상구는 이 구절이 아닐까.
"괜찮아질 거라고는 절대 믿지 않았으니까. 대신에 내가 너에게 한 말은 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 나에게 하셨던 바로 그 말씀이었어
'이것이 너의 나라다. 이것이 네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너의 몸이다. 너는 이 모든 것 안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검은 몸을 하고 <꿈>속을 헤매는 나라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에겐 평생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쫓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 질문의 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 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