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군집하는 무대가 정치판이라면 등장할 주,조연으로 발탁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와 기만으로 점철돼 온 선거판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불과 40여일 남겨둔 총선이지만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킨 'COVID 19'라는 괴물의 등장으로 정국은 되려 조용한 감마저 없지 않다.
정치 이슈에 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는데 오늘은 작심하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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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이 제작한 영화 중에 <모털 엔진 (2018)>이라는 망작(亡作)이 있다.
60분 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한 이후의 미래세계를 다뤘는데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인 영화다.
그런데 지금의 정국과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문명이 사라진 지구에서 원초적인 약육강식의 방식으로 생존하려는 소위 '견인도시'로 불리는 움직이는 도시 사람들과 반견인도시주의자들인 정착민 간의 대립구도가 주축을 이룬다.
견인도시중 가장 거대하고 막강한 '런던'시의 시장과 실세 과학자는 지구를 멸망시켰던 과거의 무기를 살려내 반견인도시민이 일군 성을 무너뜨리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군소 견인도시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유물이 된 가공할 무기 메두사의 핵심부품을 찾아다니는 거대 견인도시 '런던'은 개명을 거듭하면서도 '반공 이데올로기'과 '친일''친미'의 과거 유물을 금과옥조로 그 세를 불리려는 거대 수구정당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박았다.
잡목조차 자라잡지 않는 허허벌판을 종횡무진 누비며 집어삼키는 군소 견인도시는 잠시 떨어져 나왔다 다시 흡수된 떨거지 정당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런던시민들은 나름의 평화롭고 만족한 생활을 영위한다.
철저한 계급사회의 헤택을 누리면서 거대도시를 움직이게 하는 하층민의 헐벗은 삶과 약탈이라는 범죄행위는 생존이라는 명제로 덮어버리거나 눈을 감는다.
어쨌거나 나만 잘 살면 그만이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지금 우리 중 일부의 모습이다.
가공할 무기 메두사가 완성되고 그 폭격으로 반견인도시민의 성벽이 무너지는 굉음과 화염은 그들에게 간만에 즐기는 '불꽃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환한 미소에 악마와 백치의 모습이 중첩된다. 무너지는 성벽 아래 깔린 그들과 같은 모습을 한 인간에게는 무심하고 그들이 피땀 흘려 일군 터전은 곧 내 것이 될 거라는 희망에만 들떠있다.
그들은 60분 전쟁의 교훈을 잊었다.
그 전쟁의 참상이 결국은 그들조차 온전하게 놔두질 않고 차지하는 건 시체와 폐허뿐일 거라는 사실조차 잊은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연료와 식량이 바닥이 나고 있으니 시장과 집권층이 무슨 짓을 벌이든 성원하고 지지하기만 하면 된다.
반면 정착해서 그들의 세계를 일구고 있는 반견인도시민의 성은 견고해 보이지만 움직일 수 없으니 피할 수도 없고 메두사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다.
런던처럼 계급사회가 지닌 강력한 리더쉽도 도시민을 하나로 묶을 쾨쾨한 이데올로기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이대로 터전을 일구고 다같이 배곯지 않는 공평한 시민사회를 만들고 싶은데 거대 견인도시 '런던'의 존재는 언제나 위협적이다.
속수무책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은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나비처럼 여린 날개짓으로 날아오르는 비행선들만이 마지막 희망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유로운 영혼이 될 지언정 속박당하는 삶은 살지 않겠다는 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메두사는 꺼지고 런던의 무모한 진격은 멈춘다.
그리고 반파한 성곽에 선 반견인도시의 지도자는 피난민 신세가 된 런던 시민의 손을 잡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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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에는 현실이 투영된다.
인간의 선한의지, 등대같은 지혜, 따스한 인류애가 가져다 주는 희망뿐만 아니라 음습한 욕망과 알수 없는 두려움,무모한 공격성, 어리석은 선택 그것이 가져다줄 어두운 그림자까지 일러준다.
지금 한국의 모습은 어떤가?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저열하고 비위 상하는 작태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뻔한 거짓말과 공정은 커녕 이해득실애 따라 사실조차 과장,축소,은폐하길 거듭하는 기성 언론은 '언론의 자유'를 방패삼아 득세한다.
심판을 봐야 할 사법부는 자신의 더러운 치부를 감추려고 '사법부의 독립성'만 주절댄다.
검찰은 그동안 누리던 비정상적인 기득권을 잃을까봐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쥔 칼날을 선택적으로 휘두르는 양아치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고 당연한 얘기라도 이미 화석이 된 가치관과 내 이익에 반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고한 세력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사회다.
그들이 구역질나는 정치인들의 작태에 환호하고, 부패한 언론 보도를 병균처럼 퍼뜨리고 세계에 낯부끄러운 사법부와 검찰을 옹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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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사회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 한 왕조가 500년을 유지한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외세의 침탈은 제쳐놓더라도 무능하고 부패한 임금과 기득권 세력의 부패로 백성이 헐벗고 고통에 신음하더라도 설사 그로인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울 지경까지 몰렸어도 역사를 뒤바꾼 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국가다.
그만큼 보수지향적이고 완고한 사고방식이 뿌리박혀 있다.
100년 전의 친일 세력이 대를 이어 번성하고, 이미 유령이 된 반공이데올로기로 굿판을 열어도 구경꾼이 몰린다.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군부독재자가 골프장을 드나들고 300명의 어린 생명들이 수장되는 7시간동안 종적이 묘연했던 전직대통령의 하명을 기다리는 이들이 사면을 주장한다.
그래도 실정법의 한계라면서 친일의 부당한 유산과 독재자의 부정축재를 환수하는 건 요원하기만 하고 그 추종자들의 주장과 집회는 오히려 보호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다.
성조기를 든 광장의 무지하고 독선적인 노인이나 수많은 신도에게 테러를 부추키는 목사나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지성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1표만 행사할 수 있는 선거로만 권력이 이동하는 우리나라는 민주국가임이 틀림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진 그 1표가 족쇄고 희망이다.
이 나라를 좀먹고 썩어들게 하는 세력을 역사의 단두대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세계 유래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군부독재에 절뚝거렸고 모리배와 껍데기뿐인 대통령을 연이어 당선시켰지만 촛불로 새로운 희망을 지핀 국민이다.
이제야 저능한 정치인들이 국민의 의식수준에 내심 놀라고 눈치를 보고 있지만 보수를 가장한 수구정당은 여전히 권토중래를 꿈꾼다.
부당한 유산과 부정 부패로 이룬 지금의 권력과 부가 흔들릴까 불안한 자들은 그들에게 후원을 아끼지않는다.
학계와 종교계, 언론, 법조계와 검찰, 경제계와 관료조직에 포진한 그들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사실을 왜곡하고 통계를 조작하며 역사를 호도한다.
집요하고 은밀하며 광범위한 그들의 모략과 책동은 보수와 수구를 구분하지 못하고, 지난 날의 교훈을 잊은 국민들의 광신적이고 맹목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한달 보름이 채 남지 않았다. 60분 전쟁이 가져 온 참상을 잊은 넋 나간 견인도시의 시민이 되어서는 안된다.
60년의 과거 역사가 들려 준 교훈을 잊어서는 미래도 없다. 얼마나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명심해야 한다.
허장성세하는 수구정치 세력은 언젠가는 쓸려나갈 혼탁한 구정물이고 뿌리부터 썩고있는 나무다.
진보를 내세우든 보수를 가장했든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까지 올라 온 정치인은 드물고 귀하다. 한번에 만족할 결과를 바라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그렇더라도 지나온 길로 뒷걸음치는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
보수를 위장한 수구정당, 성장으로 현혹하는 기득권층 옹호정당, 미래를 암담하게 할 과거회귀정당. 자유를 부르짖는 계급사회 지향정당의 후보만큼은 찍어서는 안된다. 가증스런 그 위성정당도 마찬가지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미래를 명판으로 내세운 정당에게 미래가 없다는 사실만 명심하자.
더불어 잘사는 세상이 우리가 꿈꿔야 할 미래의 진정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