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맞는 휴일 아침이다. 게다가 연휴 사이에 낀 일요일은 뭐랄까 오랜만에 꺼내 입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오만원권 지폐 한 장을 발견한 기분이 된다.
그렇게 침대를 떠나지 못하고 뭉기적대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그 녀석이다. 주기적이지는 않지만 뭔가 나름의 패턴이 있는 것같은, 말하자면 '잊을만 하면...' 오는 그런 전화다. "어...그래. 왠일이냐?" "교수님 안녕하시죠? ... 그냥요" 녀석은 4년 전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인데 지금은 취직해서 직장인이 됐다. 그는 내 강의를 두 번 연속으로 들은 몇 안되는 학생중 한명이다. 내가 맡은 실내건축학은 '전공선택'이니 한번은 청강을 들었다는 결론인데 그런 케이스의 첫번째 학생이다.
나는 청강 조건에 출석 체크를 할 것이며 과제도 어김없이 제출할 것을 주문하는 까탈스런 사람이다. 물론 미달하거나 불성실하면 청강 불허다. 그는 으레 그 나이 또래면 홍역처럼 겪게되는 '전공에 대한 회의' '현실에 대한 불만''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4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던 중에 들을 만한 수업을 찾아 강의실들을 기웃거리다 내 강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한 학기동안 내 한 과목만을 들으러 그것도 청강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녔으니 한편 고맙기도 한데 다음 학기 출석부에 오른 녀석의 이름을 발견하고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 덕분에 나로서는 이전 학기 수업 내용과 중첩되는 상당 부분을 교체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시쳇말로 쎔쎔(same same)이 된 셈이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망설이던 유학을 충동질해서 독일로 보냈더니 유학중에도 뜬금없이 전화가 왔었다. "그래. 어디냐?" "집앞 카페에 왔어요. 혼자서요. 갑자기 전화드리고 싶어져서요. 제가 원래 그렇잖아요. ㅎㅎ" "ㅎㅎ 니가 그렇긴 하지. 회사 잘 다니지? 뭔 고민있냐?" "아...아뇨. 그냥 이런저런 생각 좀 하느라고... 저는 늘 교수님께 감사해요." "뭐가?" "뭐랄까...스승....저는 학교다니면서 '은사'라고 여길 만한 분을 못뵈었거든요. 근데 교수님을 뵙게 돼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늘 듣고싶은 얘기였었고... 교수님 좀 특이하시잖아요 ㅎㅎ" "별 소리를 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 척추를 곧추세웠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도 같았다. "은사". 이 얼마나 무겁고 시린 말인가. 한겨울 처마끝에 매달렸던 예리한 고드름 하나가 발 앞에 툭 떨어져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심상을 눈치 채지 못했을 녀석은 팬데믹 이후 펼쳐질 미래 사회에 대해 그리고 건축과 디자인은 어떻게 변모하게 될까를 궁금해했고 그런 대화가 이어졌다. "늘 책을 가까이 해라" 늘 강조하던 얘기로 끝맺음을 하려했다. "네. 잊지않고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교수님 책 좀 권해주세요" "ㅇㅇㅇ의 'ㅇㅇㅇㅇ' 챙겨볼만 하더라. 그리고 ㅇㅇㅇ의 ㅇㅇㅇㅇ,ㅇㅇㅇ도..." "네. 또 전화드릴게요" "그래라"
전화를 끊고서도 고드름이 발치에서 깨지던 소리가 들리고 두근거림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달리 말하면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여기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표현과 전달 방식도 상대를 배려하기보다 내 위주다. 일방적이고 독선적이라해도 변명할 수가 없다. 내 부족한 능력을 알기에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곁에 있어주고, 그가 하고싶은 얘기를 듣고 내 생각을 말해 줄 뿐이다. 그런데 의도하지않고 느끼지도 못하는 중에 내가 어쩌지 못하는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처럼 소름이 돋고 두려워진다.
실내건축학을 강의하며 언뜻 무관해보이는 문학의 한 구절을 읊고 나조차 어려운 철학과 인간의 심리 연구를 소개한다. 감히 정답이라 말할 수 없으니 의문부호로 끝맺음하는 경우도 많고, 오히려 질문을 해서 궁금증만 일으키는 수업방식 또한 철저한 내 위주다. 리포트도 시험문제에도 늘 빠지지않는 주의사항은 "당신의 생각을 써라"다. 우리를 고민하게 하거나 방황하게 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자신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주목하고 끊임없는 질문을 하다보면 반드시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다. 사제지간보다는 그렇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동료, 조금 앞서 걸었던 선배로서 어깨 높이를 맞추려고 했는데 어느새 선생으로 자리매김 되어있었고, 감당하기 힘든 '은사'로까지 불려질 수도 있다면 두려워하고 스스로 더욱 경계해야겠다.
용감한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어떤 때는 부럽기도 하다. 세상을 계몽하겠다는 야망, 남을 깨우치겠다는 선의는 어지간한 자신감과 용기없이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들 중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신에게 꺼리낌없이 그런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할 따름이다.
자기계발서를 내기 전에 자신을 겸허하고 냉철하게 평가하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타인의 능력을 고양시켜준다는 강좌를 여는 사람치고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다. 뛰어난 인물이 한 얘기 혹은 그들의 성공사례이거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아닌 타인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도 평생이 모자랄 판인데 책 한권으로 혹은 몇 시간의 강의로 대중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기란 역부족이다. 그들의 용기나 선의가 스스로를 과신해서이거나 세속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