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을 낳고 본 아들에게 조기 등쪽을 발라주던 남편, 가시많은 부위 차지가 된 셋째딸과 남동생의 다툼, 이를 묵묵히 지켜보던 큰 딸 그리고 이 장면이 가시로 박혀 아직도 가슴 한 켠이 결리고 미안한 또 사람. 이제는 할머니가 된 엄마의 잔잔한 글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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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집안 종부인 장모님이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본 후 다시 아들 하나를 기대해서 낳게 된 막내딸이다. 태어나던 날 아내를 안아 든 할머니가 사타구니부터 살피고는 그대로 내려놓고 방을 나가셨다 들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의사인 집안이라 부족함 없이 자랐는데 할머니가 유별나신 분이셨던 모양이다.
어느날 상에 올라온 자반에 셋째 언니 젓가락이 가자 할머니가 그 젓가락을 치셨단다 "어디서....기지배가!" 그리고선 귀한 장손부터 먼저 먹을 수 있게 챙기셨단다. 섭섭한 막내 손녀였던 아내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와 한 방을 써서인지 지금은 애뜻해한다.
아내는 외할머니 얘기에는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여장부셨다는데 친할머니조차도 어쩌지 못할만큼 당차고 거침이 없으셨단다. 장모님은 친정에서 아들 많은 집의 하나뿐인 귀한 딸이다.그 외할머니가 한번은 딸네 집에 들러 팔을 걷어부치고 세간살이을 다 옮기게 하셨단다. 오래전 처가집은 2층구조의 일본식 관사였는데 그래서 방은 많아도 방음이 잘 안되는 구조였다. 부부만의 대화도 속삭여야했고, 장모님은 혼자 되신 시어머니 기침소리에도 화들짝 깨기 일쑤였다. 깊은 밤에 노크도 없이 아들부부 방문을 열어제끼셨다니 시집살이가 녹록치 않았다.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딸네집을 둘러보고는 장롱이며 피아노를 옮겨 부부침실을 철옹성으로 만들어 놓고 가셨다는 얘기다. 당시로는 어려운 사돈간에 쉬운 일이 아니었을게 분명하다. 나는 이 얘기를 죽겠다면서 트럭 앞에 드러누웠다는 장인의 구혼 해프닝과 더불어 몇 번을 들었는데 그때마다 장모님 눈에는 그리움이 묻어나고, 아내 얼굴에는 생기가 돈다.
아내는 순종적이고 배려심 깊고 편안한 사람이다. 어릴 적에는 땅을 밞아 본 기억이 없을만큼 장인 품에 안겨 자라서인지 사랑도 넘친다. 큰언니와 띠동갑이니 장인이 늦게 본 막내딸을 얼마나 이뻐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런 사람이 나긋한 데라고 찾아볼 수 없는데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나를 만나 마음고생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내는 시집와서 묘한 데자뷰를 경험한다. 선물같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첫 딸이었지만 천상 옛날 사람인 선친께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나보다. 막 출산한 며느리에게 "수고했다." "고맙다" 대신 "다음번에는 아들 낳아야지"라는 말을 먼저 하셨다. 태어날 때 자신이 여자아이임을 알고 조용히 내려놓으셨다는 친할머니, 첫 손녀를 보고 다음번에는 아들을 낳으라시던 시아버지.
그런 그녀에게 누구든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고 삼가해야 할 행동이 있다. 남자가 하는 "어디서 여자가..."투의 말과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행동 따위다. 당연히 우리 가정에서는 금기사항이다. 아마도 어릴 적 친할머니의 기억때문인 것도 같고, 언제나 든든한 보호막이었고 다정했던 아빠의 영향인 것도 같다. 신혼 초 무심코 "어디서 여자가..."란 말을 뱉었다가 유순한 아내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는 걸 보고 내심 놀랐다. 그 때도 지난 어린시절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 얘기를 하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조곤하지만 결기가 서렸있다. '내 집에서... 우리 아이들만큼은...'이 들린다.
나로서는 피해야 할 몇 안되는 지뢰이니 어려울 게 없다. 제멋대로고 대차고 자유분방한 남편을 이해하고 살아주는 것만해도 고마운데 그 까짓게 무슨 대수일까. 더구나 여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나온다는 중년을 넘기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아내는 내가 수다를 떠는 그 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