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남짓한데 최근에 알고 지내는 이가 있다. 대화를 나누다 무슨 얘기 끝에 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200개쯤 된다고 했다. 매년 연락처 삭제를 한 결과라고 했다. 1년간 자신이 연락한 기록이 없는 번호라면 다 지운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늘 200개 안팎만 남더라고 했다. '이런 신박한 방법이....' 무릎을 칠 뻔 했다. "좋군요. 하나 배웠습니다" 우리는 150이라는 임계치에 익숙하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인간관계의 한도다. 거기에는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도 있다. 50명의 구성원간에는 1255개의 일대일 관계가 성립한다. 단순히 150명이라고 해서 3배의 관계가 아니다. 더 복잡한 조합이 나오고 최소한 3제곱은 넘을게 확실하다. 어쨌든 150이라는 연구 결과와 200이라는 그의 임상 데이터는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최근에 '정리'가 화두다. 사업으로 책으로도 나온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거짓이다. '새로 장만하려면 버려라' 혹은 '누군가에게 팔 수 있을 때 내놔라'임을 말한 이가 행동으로 보였다. 제 눈앞에 안보인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집보다는 마음, 짐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다. 차라리 "절실하지 않다면 잊어라"나 "찾지않은 사람의 번호는 지워라"가 일상 정리에 있어 더 현실적이고 유용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창회를 안나간지 4년정도 됐다. 작은 소도시 출신인지라 대학이후의 삶은 낯선 만남의 연속이다. 인구 10만이 안되는데 대대로 살아왔으니 초, 중,고를 구분하지 않아도 알만한 집 자손이고 동창인 셈이다. 어느날 동창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발걸음을 끊었다. 언제 또 나가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갑작스런 사건이나 우발적인 충동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소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어서였다. 뭐든 반복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식상하면 재미가 없다. 새로운 인물이 출현할 수 없는 모임에 나누는 얘기도, 순서도, 마무리까지 비슷했다. 왠만해선 마지막까지 자리를 함께 하는데 일찍 자리를 파하고 싶을 때가 있다. 지난 학창시절이 주제가 돼서 누군가에게 추억이고 자랑거리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고 놀림거리가 되는 얘기가 오가는 경우다.
반복되는 명화극장의 서부극처럼 그 당시로 채널을 돌리는 이는 늘 정해져있다. 학창시절에 잘 나가던 말하자면 과거의 영광을 소환하고 싶은 친구다. 속없이 입담만 좋은 친구가 거든다. 타킷은 그 시절에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공한 친구다. 현실이 풍족하면 웃음에 너그러워지는 법이고 오랜 사이라 다툼이 되는 일은 없지만 지켜보는게 즐겁지만은 않다. 새로운 얘기거리나 즐거움은 없으면서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보다는 매번 지나간 신문을 찾아 읽는것만 같은 모임이 반가울리 없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좁은 취업관문을 통과해 높은 연봉을 받게 된 건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과는 다른 과정을 거쳤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고 쉽사리 신분이 같아진다고 여겨 불쾌해한다면 옹졸하고 이기적이다. 학벌과 취업 과정은 이미 지나간 과거다. 차라리 왜 그들과 달리 2배의 연봉과 안정된 신분이 보장됐어야 하는지 능력과 성과로 증명하려는 편이 더 현명하다. 아니라면 직장 동료로서 열악한 환경과 근무조건에서 벗어난 걸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것이 더 배우고 좋은 학교를 다닌 이유란 걸 깨닫지 못한다면 졸업장은 종이에 불과하고, 자신이 거친 입사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나를 깨우치고 독려하는 건 대부분 낯설다. 최근 알게 된 사람에게서 친근함을 느끼고 오래된 친구에게서 실망하기도 한다. 익숙한 관행보다 새로운 기준을 받아들이는 일은 늘 낯설다. 잘 알고 지내온 사이에 못하던 말도 서스럼없이 건넬 수 있는 건 오히려 서로 아는 게 별로 없어서다. 굳이 몰라도 된다면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늘 그 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