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by 문성훈

최근에는 전원생활을 하시느라 자주 뵙지 못하지만 한 달에 두 번정도는 뵙던 분이 계신다. 대기업 한 회사에서만 30년 넘게 일하셨고 계열사 대표로 퇴직하셨다. 그 분 덕에 기업 현장이나 리조트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샐러리맨으로 최고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분이라는 사실 외에도 인격적으로나 인생관에 대해 배울 점이 많았다. 젊은 사람과의 소통에도 스스럼이 없었고 누구에게나 겸손하셨고 조크에도 알갱이가 씹혔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느 자리에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몸가짐은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누구나처럼 사표를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고, 부서장으로서 수모와 굴욕을 감내해야 할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상사와의 불화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리더로서 그 탓을 아랫사람에게 돌리지 않으셨던 드문 분이다. 상사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는 다른 계열사로 옮긴 탓에 고비를 넘겼다.
그 시기 상사의 방에서 나오면 부서원들이 당신의 안색을 살피며 어쩔 줄 몰라했는데 그때마다 책상 서랍을 열어서 꺼내 읽은 책이 '대학'이었다고 했다. 아직 '대학'을 깨치지 못한 나로서는 어느 대목으로 마음을 다스렸는지 짐작할 뿐이다.

지금도 반성하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직장생활의 애환을 얘기하던 중이었다. "샐러리맨은 마약쟁이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한 달에 한 번 월급이라는 마약을 맞고 그 약기운에 한 달을 견디는데 약기운이 점점 떨어져 갈 즈음에 다시 마약을 맞는 것처럼 월급이나 보너스를...." 나로서는 가볍게 한 말이었다.
"그건 아니죠...."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였고, 찰라였지만 불쾌한 기색이 스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다른 화제로 바뀌는 바람에 자리가 어색해지지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직도 나는 그 순간이 민망하다.

가깝든 멀든 우리는 수많은 타인을 대하며 살게 된다. 가까울 수록 편하게 대하고, 멀수록 함부로 재단하기 마련이다. 가까울 수록 어렵게 대하고, 멀수록 여지를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이 다가오는 일이다. 무겁고 두려워해야 마땅하다. 스스로를 알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타인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조심스럽게 대하고 천천히 알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현대인은 기본적으로 외롭다. 누군가가 알아주고 주목받기를 원한다. 쉽고 가벼운 관계을 원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만 비치기를 바란다. 그래서인지 관계를 단절하는데는 서슴없고, 단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조차 어려워진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관계를 찾아헤매길 반복한다.

SNS에 친숙한 사람들이라면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로 불러 마땅하다. 일과 관련되지 않았더라도 발전한 정보통신기술이 이미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있기 때문이다. 관계 맺기도 수월해졌고, 끊는 것도 클릭 한번이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이다. 사막을 유랑하면서도 누군가를 만나면 소중한 친구나 손님처럼 대하는 베두인의 문화도 같이 배여들었으면 한다. 목마른 이에게 자신의 물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길을 일러주는 친절에 감사해하면서도 그들의 풍습과 생활을 내가 머물던 세계와 견주어 예단하는 건 어리석고 무례한 짓이다.

현대 문명이 급속하게 발전할 수록 마음을 건네고, 천천히 다가가는 오래된 인간관계가 더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편리함이 깊이를 더해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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