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by 문성훈

'ㅇㅇ빈'. 카드의 주인은 여학생이거나 아가씨 이름으로 짐작된다.
지갑을 줏었다. 어제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컬러의 카드크기여서 나 역시 지나칠 뻔 했는데 용케 발견했다. 행인이 많이 오가는 길인데도 밟힌 흔적이 없다.
신용카드 1장과 오만원권 2장, 만원짜리 2장이 여러번 접힌 채 꽂혀있다. 2장의 쿠폰과 로또복권도 1장이 들었다.

잠시 주인이 지갑을 잃어버리고 지나온 길을 되짚어 올까싶어 주변을 둘러보고, 머뭇거리길 5분 여...
번뜩 묘안이 떠올라 카드사에 전화를 했다. 업무는 마감했겠지만 분실신고는 받는다는 걸 떠올린거다. 상담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카드 주인에게 연락해서 찾아가라고 내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리고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점심을 걸렀더니 허기가 진다. 이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카드주인이다. 예상대로 어린 목소리다. 내가 있는 장소를 설명했는데 잘 모르는 눈치다. 아니 그렇게 꼭 찾아오려는 열의가 안보였다. 있는 장소가 어디냐고 내가 되물었다. 둘 사이 중간쯤에, 정확히는 그녀 가까이에 있는 빌딩 편의점을 알려주고 그리로 오라고 일렀다.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약속장소에 머리카락을 실버로 염색한 젊은 아가씨가 서성이고 있었다.
"지갑때문에..?"
"네"
"이름이...?" 틀림없어 보이지만, 신원 확인은 해야한다.
"ㅇㅇ빈 입니다"
"여기..."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전통시장 안에 있는 전집이다. 모듬전과 막걸리를 시켰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아이들..."
"네"
"그 친구. 딸아이 또래거나 좀 더 많을텐데... 저한테 전화를 걸었으니 번호도 알 것 아닙니까."
"그렇죠"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라고는 하지만, 고맙다는 문자 정도는 보내야하는 게 경우 아닐까 싶은데 그러질 않는군요"
"아이구. 요즘 친구들에게 그런 기대까지야..."
"그러게요. 아까 제가 여기 오면서 업무관계로 전화 여러 통 했잖습니까?"
"그러셨죠."
"실은 현장에서 ㅇㅇ작업자를 못구하고 있다고해서 아침에 여러군데에 연락을 해뒀더니 한 팀이 이번 주중에는 안되고 주말에 나올 수 있다고 해서 급한 김에 잡아뒀습니다. 그랬는데 오던 길에 후배를 통해 섭외한 또다른 팀이 주중에도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래서 주말에 약속잡은 팀에게 '취소하게 됐지만 고맙다. 잊지않겠다' 전화했습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말하자면 제가 '갑'인데도... 또 주중 팀 섭외해 준 후배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하느라 그런거였거든요"
"아... 그래서..."
"네. 그런 건 어디서 가르쳐주고 배우는 게 아니잖습니까. 요즘은 누군가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그렇죠. 근데 참 어제, 오늘 무척 바쁘시던데..."
"어제가 성적마감이라. 이제 저도 끝났습니다. 오늘은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한두명 있어서 메일로 답장보내느라... 그래서 이번엔 비대면이기도 해서 아예 평가방법과 채점결과, 산출 내역을 전부 공개해 버렸습니다. 이름만 가리고..."
"잘하셨습니다. 저는 아예 학기초에 나중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을 공지합니다. '이의가 있으면 상대평가이니 전원의 과제와 시험 전부를 무기명처리해서 직접 채점해야 한다'라고..."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진작 좀 알려주시지..."
"하하 그러게요. 깜빡했네요"
"그렇게하니 이의제기가 줄던가요?"
"네. 아무래도... '찔러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느낌 압니다."

이번 학기 중에 11번의 과제, 2편의 에세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대체한 과제. 총 15번에 31명의수강생이니 465개를 채점했다. 게다가 학점에 민감한 4,5학년이라 두번씩은 재검했으니 1000편 넘는 제법 긴 글의 과제물을 읽고 검토했다. 다른 때보다 과했다. 온라인 수업이라 그랬다. 그렇게라도 공부를 시키고 싶었고 생각을 멈추지말라 채근했다. 나로서는 고생을 자초한 셈이다. 그래도 어찌됐건, 좋은 학점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경우는 보지못했다고 그리 강조했어도 아직은 모를 나이인게 분명하다.

자신의 학점에 관해 정중한 글을 보내 온 학생이 있어 답장에 이런 글을 남겼다.
'...비밀인데... 나는 군입대 전 평점이 1.79인가 1.97인가 했었, F도 몇개 있었지.... 대학공부? 전공수업? 글쎄 정말 미치도록 배우고 싶은 걸 찾았을 때, 죽도록 파고들고 숨막히게 파고들어 봐.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그게 진짜 공부가 될거야...'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알람이 울린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저도 동감합니다. 하지만 성적에 대한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그랬던거니까 다른 오해는 하지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하나에 빠져서 살아볼 수 있는 날이 빠른시일내에 왔으면 좋겠네요. 한학기간 감사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ㅎㅎ'

막걸리 맛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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