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돌아왔다

by 문성훈

"아들~! 엄마 좀 도와줘. 엄마 짐 좀 날라야 해"
늦게 들어 온 아내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린다. 아마 내가 들어와있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이럴 때는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아무래도 힘 쓰는 건 젊은 녀석이 낫지 않은가.
잠시 후 안방 문이 열린다.
"어~ 당신 들어왔었어?"
"응. 좀 됐어."
안방에 들어서다 다시 나가더니 무언가를 수줍게 건넨다. 석사 학위 논문이다. 까만 표지에 금박글씨가 빛난다.
"와~ 이제 끝난거야?"
"응. 오늘 연구실에서 짐 뺐어" (아~ 그 짐이 그 짐이었구나)
"축해해. 고생했어. 이제 돌아온거네 ( 휴~ 이렇게 기쁠 수가...)"
"응. 이제 맘껏 놀아야지. 당분간...."
"뭐? 왜 당분간이야? 박사라도 하려고?"
"아니... 뭐 일단... 아무튼... 좀 맘껏 쉬었다가..."
"안한다며... 질려서. 하지마 이제... ( 또 이걸 한다고? )"
검은 색 논문 표지가 잠시 노란색 카드로 보이는듯 했다.
안방 문을 열고 아들이 축하인사를 건넨다.
"와~ 우리 집이 이렇게 학구적인 집안인거야? 왜 이래? ㅎㅎ"

이 작은 녀석이 중1 때 아내는 직장을 그만뒀다. 두번째 경단녀가 된 거다. 어렵게 구한 자리였고 출퇴근 조건도 좋았으며 무척 즐거워했었다.
"엄마. 제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집에 계시면 안돼요?" 작은 녀석이 한 말에 한 달 정도를 고민하다 그만뒀다. 내게 조언을 구했지만 난들 뭐라고 딱 부러진 답을 못했다.
그렇게 직장을 그만둔 뒤 아내는 지역사회에서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봉사활동을 다녔다. 또래 중년여성들이 카페에서의 브런치와 취미 여가활동을 즐기는 삶이 자신의 체질과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다문화 가정 자녀와 이주 여성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더니 차츰 평생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덧 작은 녀석이 고3이 되자 같이 공부하겠다며 아내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심심찮게 매년 "나 공부하고 싶어. 나 공부하면 안돼?"라며 내 의중을 살폈던 그녀다. 나는 아이들과 늦은 나이를 들어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다) 지긋이 눌러 왔었다.
그런데 마침내 아이들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를 지났고, 경단녀로 구한 직장도 그만 둔 아픔이 있던데다,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지는 않지만 마그마같은 배움의 열정이 식지는 않겠다 싶었다. 더구나 전공까지 정하고서 소신까지 뚜렷하니 말릴 엄두가 안났다.
남자인 나로서는 여자의 생을 잘 모르지만 여지껏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로 '누구의 아내', '누구 엄마'로 불리다 비로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데 힘이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막아서도, 막을 수도 없다는 걸 느꼈다.

"하려면 제대로 해. 그 나이에 간판 따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라며 찬성했다.
아내는 특수대학원이 아닌 일반대학원을 지원했다. 대학원 면접에서 교수가 "일반대학원은 공부 따라가기 힘들텐데요. 그렇게 지원하셨다가 대부분 그만두는데..."라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고 들었다.
아내는 학부에서 너무 앞서 미래를 내다 본 장인의 권유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다. 대만까지 다녀오고 영어도 유창했었지만 아내로 엄마로 묻혀지내는동안 먼지가 쌓이고 차츰 도태되어가는 자신을 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데 그런 학부 전공과 무관한 교육학을 택한데다가 아들 딸 뻘인 동기들과 타이트한 수업을 해야하는 예견된 고난이기도 했다.

곁에서 지켜보기에 지난 2년은 아내에게 달콤쌉싸름한 시간이었다. 쉬흔이 넘어 만끽하는 캠퍼스 공기에 한없이 행복해했고, 원서에 파묻혀 잠든 모습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매일 쏟아지는 과제와 매주 발제 준비에 허덕였다. 아내의 학구열과 실력을 눈여겨 본 지도교수의 배려로 박사과정 연구실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차츰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연구실에 간이 침대를 가져다놓게 되면서 아내 얼굴 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가끔 밤늦게 옷가지라도 챙기러 들어오면 나는 "어서오세요. 이게 얼마만이세요? 잘 지내시죠?"라고 농을 건넸고,
아내는 "아...네. 덕분에... 그런데 가끔 청소는 하고 지내시는지요. 집안이 좀 지저분해 보이는대요"라고 받았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집에 머무는 휴일이면 밀린 빨래며, 집안 일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자신이 설립한 사회적 협동조합 일도 해야했으니 촌음을 아껴 써야만 했다. 엄마의 올 A+성적표에 우리집 두 대학생은 성적표 내밀기를 주저했다.

집밥을 좋아하고 냉장고에는 아내가 재어 놓은 반찬이 있음에도 나의 외식은 잦아졌고, 아이들이 배달시켜 먹은 음식 그릇은 차츰 늘어만 갔다. 나와 아이들이 아무리 한다고 한들 아내의 빈자리는 그만큼 컸다. 하지만 아무도 불만은 없었고 내 유일한 불만은 코로나로 커다란 청년 둘이 집안에 머물게 되면서 집안을 더 어지럽힌다는 정도였다.
4학기에 접어들어 논문을 쓰면서 아내는 나와 아이들에게 선전 포고하듯 "한 학기동안 나는 이 집에 없다고 생각하기 바래. 설겆이 서로 미루지 말고, 음식쓰레기 항상 비우고, 매일 잠들기 전에 청소기 돌려!" 라고 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인데 그런 결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다.
아내는 4학기째에는 통과하기 어렵다는, 석사 논문에서는 하지 않는다는 '질적 연구'방법을 택했다. 그만큼 시간도 촉박했고, 힘들어 하는 걸 지켜봤다. 부쩍 수척해진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잠드는 날보다 못보거나 먼저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데 마침내 해냈다. 별반 도움이 못된 남편이지만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낯 가리고, 소심했던 50대 주부가 자신이 하고싶은 공부를. 쉬운 길 마다하고 어렵지만 정공법으로 헤쳐나가 마침내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질적연구 논문으로는 혼자 통과했단다.

잠들기 전. 오랜만에 마음이 가뿐해져인지 한결 환해진 아내 얼굴을 마주했다.
"이제 맘껏 좀 놀겠네?"
"응. 연말 송년회까지 미뤄뒀던 스케쥴이 꽉 찼어."
"와~ 좋겠다. 그래 맘껏 놀아. 쉬어~ 이제 돌아와야지. 공부한단 말 하지 말고..."
"사람들이 나더러 좀 쉬다보면 또 할거 같다던데...아무튼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쉬려고..."
"한동안은 무슨... 그냥 하던 일 하고... 또 박사논문 쓴다고 하면 얼마나... (자주 못보게 될지... 지켜보는 나도 힘들지...)"
"아무튼 지금은 아무 생각 안하려고..."
"하지 마. 하지마라 그랬어..... 난 몰라 이제....." 중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늪에 빠져서 잠기듯이.... 아내가 파놓은 늪인지도 모른다. 막아야 될텐데...이러면 안되는데.....

아무튼 일단 축하해. 고생했어. 잘~해쓰! 중앙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평생교육전공 임ㅇㅇ씨!

vasily-koloda-8CqDvPuo_kI-unsplash.jpg
작가의 이전글요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