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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l 26. 2020

지하로 뻗는 나무

나무를 찾아나섰다. 그런 나무를 찾아내서 심고 싶었다. 건조하고 단단해서 물 한방울 스미지 않는 콘크리트에서 자라 뻗어나가는 나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 자신있는 작업도,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일말의 가능성에 배팅하는 설레임과 입마름은 온전히 내 것이고, 희열이란 걸 알고 있다. 뜻이 있다면 길은 그리로 나기 마련이다. 후배가 주선해 준 수도권 어느 허름한 비닐하우스 창고에서 나무 무더기를 발견했다.

가끔은 인테리어를 의뢰받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싶은 작업의 후원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때가 있다.
명성을 얻고 돈이 되는 일은 따로 있다. 젊은 시절 한동안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건 업계에 이름을 알리고 잡지사에서 취재를 오는 일을 했었다. 무료하고 따분하지만 돈이 되는 작업들을 외면하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대개는 반복적이며 의뢰자의 구미에 맞춰야하지만 규모있는 작업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책임과 권한을 갖게되면서부터 그리고 그 공과를 내가 감당하게 되면서부터 디자인에 대해서는 완고해지고 시도는 과감해졌다. 자연히 돈과는 멀어졌다. 그래도 굶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나조차 신기해 할 때가 있다.

한 해전에 작은 빌딩의 리모델링을 했다. 정확히는 그 작업을 하기 1년전쯤부터 건축주와는 만나왔다.
잊을만하면 찾아왔고, 잊혀질 때쯤 다시 이 작업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1년이 흘렀다. 주변에서는 그런 만남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로서는 즐거웠다. 그렇게 심사숙고하고 신중한 성격이라면 차라리 편하다. 어찌됐건 그로인해  나는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고 세심하게 챙길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됐다.
건축주는 결과에 만족스러워했고 내게 고마워했다. 나 역시 어려운 여건에서 끝까지 믿고 맡겨준 것이 고마웠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그 빌딩의 지하층에 대한 논의가 불거져나왔다. 마땅한 임차인을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아직 자녀들이 어린데 그들이 사는 건물 지하에 노래방이나 주점이 들어오는 걸 꺼려하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건물에 대한 애착이 지극하니 식당도 탐탁할 리 만무했다.
마침내 직접 해 볼만한 업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만류했다. 지하층의 여건과 상태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기도 했지만, 작은 가게라도 사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오랜 논의와 우여곡절끝에 최근 각광를 받고있는 무인'스터디 카페'의 성인버전을 업종으로 선정했다.
무척 조심스럽게 네게 인테리어를 의뢰해도 실례가 되지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승락했다. 작은 규모에다 상황도 열악했지만 내게는 신선한 도전이고, 무엇보다 그 부부의 사람됨됨이와 삶의 자세를 잘 알고 있어서다.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재주를 아낌없이 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게 영감이 떠오를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주고, 그들 스스로도 부단히 고심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쫓기듯 살아왔다. 디자인 영역이 그러하듯 내가 몸담은 인테리어에서도 모방과 표절, 아이디어 도용은 다반사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적용하기 위해 들인 오랜 시간이 무색하게 단 기간에 그 아류가 번지는 걸 지켜봐왔다.
오죽하면 내가 인테리어한 가게의 주인이 손님으로 위장해 실내를 몰래 촬영하던 동종업계 직원을  붙잡아놓고 소송하자는 연락까지 왔을까. 오히려 내가 주인을 누그러뜨렸다. 별무 소용없다는 걸, 오히려 그런 송사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더 손해라는 걸 이미 경험한 뒤였기도 했다.
그래서 근 30년동안 한번도 같은 컨셉과 디자인을 시도하지 않았다. 도망다녔고 되돌아보지않는 게 한국에서 내가 디자이너로 살아남는 방법이란 걸 깨달은 지는 무척 오래됐다. 어차피 따라한들 내 아이디어 그대로를 끄집어내고, 그 느낌 그대로를 살리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위안으로 삼았다. 영혼이 살아있지 않은 공간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 맞다면서 마침내 그들 눈 앞에 보여줄 때의 희열은 남다르다. 지하 공간의 정 중앙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을 감싸는 6m에 달하는 라운드형태의 콘크리트 테이블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처음 시도하는 공법, 시공의 어려움, 하자의 우려를 들어 직원과 작업자들은 난색을 표했다. 사장이 되어서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다. 모든 책임과 손실은 내 몫이니 밀어부쳤다.
그동안에도 나는 기둥 사이에 심을 나무를 찾아다녔다. 아무도 내 꿍꿍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로서는 눈 앞의 문제만도 버거운데 엎친데 덮친 격일테니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게 도와주는 일이었다. 아름답게 뒤틀리고 세월이 무늬로 새겨진 나무여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머릿속에 있던 최종적인 모습을 스케치로 제시했을 때 또다시 의견이 나뉘었다. 테이블이 완성되고서 나무를 세우자고 했다. 나 역시 그 방법이 편하고 손쉽다는 걸 안다. 하지만 견고한 콘크리트 땅에서 자라나는 나무를 표현하기엔 미흡하다. 위로 뻗어가는 가지이기도 했지만 지하를 뚫고 뻗는 뿌리기도 했다.
다시한번 고집을 피웠다. 새벽에 먼길을 달려 나무를 싣고 왔다. 그리고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구도에 맞춰 세우고 작업을 독려하느라 하루를 보냈다. 피곤이 몰려왔지만 탄산이 터지는 카타르시스에 비할 수는 없다.
언제나 깨어있고 머릿속 기어가 멈추지 않길 바라며 내가 영원한 현역이고 싶은 이유다.

#ALEX_c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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