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by 문성훈

최근 의협에서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와 명분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의사가 있다. 오래전부터 '기레기'중 한 사람임을 자처하며 언론과 기자의 행태에 신랄한 비판과 각성을 촉구하는 기자도 있다.
적어도 우리사회의 주류에 속한 직종이면서 비주류의 삶을 사는 사람들, 다수가 가는 평탄한 길을 거부하고 가시밭길 험난한 오솔길를 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경외심'을 느낀다.

'경외심'은 인간만이 갖는 감정이다.
놀람, 두려움 그리고 대상을 우러러보는 복합적인 감정상태이니 인간이외의 대뇌피질이 발달하지 않은 포유류 이하 동물에게서는 나타날 수 없는 심리상태다.
'경외심'은 압도당할 만큼의 경관 즉 고봉을 품은 산,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넓은 바다, 우주선에서 내려다 본 지구 등 자연에서 느낄 수 있지만 인간이 만든 건축물에서는 보로부두르 사원, 아야 소피아 모스크(옛 성소피아 성당), 바티칸 성당과 같은 종교시설물에서 흔히 체감하게 된다.
대부분 엄청난 규모와 높이 그리고 가늠하기 힘든 예술성이나 완성도가 인간으로 하여금 경외심을 갖게한다.

그런데 인간에게서 느끼는 경외심은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 것일까?
요한 바오로 교황보다는 아프리카 오지의 신부에게서, 십만 신도를 거느린 대형교회 목사가 아닌 개척교회의 농사짓는 젊은 목사에게서, 노벨 의학상 수상자보다는 남도 섬의 의사에게서, 조선일보의 주필이 아닌 해직기자 출신에게서 경외심을 느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공무원 출신의 팔순 어르신을 뵈었었다. 9급으로 출발해 광역시의 부구청장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분이시다.
내가 그분에게서 '경외심'을 느낀 건 이런 사회적 성취때문이 아니다. 당시로는 한 몫 챙기는 건 물론 갑질을 할수 있는 황금 보직 위생과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은퇴 이후에 지금까지도 상인들에게서 존경과 흠모를 받는 걸 목격해서이고 현직의 후배공무원들이 귀감으로 삼고 있는 현역이었을 때의 근무자세와 인생철학, 직업윤리를 후배들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부당한 위력에서 후배를 끝까지 보호한 선배, 부하 직원들에게 앵벌이를 시키지 않은 상사, 일선에서 수많은 제도 개선을 이뤄 낸 직업인이자 상인들을 단속의 대상이 아닌 함께 하는 이웃으로 여긴 공무원이었다.
결혼 후 30년동안 집 마련을 못했던 무능한 남편, 직장생활동안 단 한번도 자녀들과 외식을 하지 못했던 부족한 아빠였음을 토로하는 그였지만 남편 손님을 대하는 부인의 모습에서, 의사인 큰 딸이 직접 들고 온 구찌뽕 효소를 마시면서 그가 결코 남편이자 아빠로서도 그리 허투루 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현역인 후배 공무원이자 옛 부하직원이었던 이가 휴일임에도 기꺼이 찾아와 그의 전설적인 일화와 그조차도 모르고 있던 숨겨진 뒷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 세대였지만 공무원 중에 이런 훌륭한 분도 계셨었구나' 감탄했는데 정작 내가 '경외심'을 가지게 된 건 자리가 파할 즈음 그 분과 나눈 대화에서였다.

" 당시로는 그렇게 좋은 보직. 위세를 부릴만한 위치에서 청탁이나 뇌물도 많았을텐데 어떻게 뿌리치셨습니까?"
" 허허...왜 안받았겠어. 받을 때도 있었지. 집에 안가져왔을 뿐이지. 일하다보면 다 보여.... 돈 잘 버는 부자가 주는.... 받을 만 하고 뒷 탈 없는 돈이면 눈감고 받을 때도 있었단 말이지. 그럴 때면 밑에 계장이 여섯명이었는데 다 불렀어 그리고 다들 보는 앞에서 그 돈을 서무보는 직원에게 줘서 공금으로 쓰게 했어. 다들 어려운 시대였고 힘들고 고달팠으니.... 당시에는 아이 업고 먹고 살려고 나온 아줌마 돈까지 갈취하는 놈들이 허다했는데 다 미친 놈들이고 나쁜 놈들이야. 나는 한번도 내 돈 안내고 밥먹고 술 먹은 적이 없어"

"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로는 다 그런 시대였고, 어쩌면 당연하다시피 했는데 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영향을 주신 분이 계셨습니까?"
" 나를 아껴서지. 내가 소중하니까 지키고 싶어서... 64년도에 공무원이 됐는데 그 때는 별의별.... 다 그랬지.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 겠다. 그렇게 안되어야겠다 싶었지. 영향이라면...그때 느끼고 겪은 것들이 영향을 준거겠지"

차라리 밝은 빛 아래에서 털어도 먼지 하나 날 것이 없다고 했으면, 티클만한 오점도 남기지 않았다고 자부했다면, 멘토로 삼을 만한 사람들이 있어 그리 되었다고 했다면 존경심은 생겼으되 '경외심'은 일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 역시 흠 많고 부족한 사람임을 숨기지 않는 겸손한 태도에서, 잘못된 점에서조차 배울 것을 찾고 대세를 따르고 영달을 꾀하기보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며 옳다싶으면 굽히지 않았던 지혜와 용기가 나를 경탄하게 하고 그를 거인으로 보게 만들었다.

ᆞᆞ

쉽게 살기보다는 바르게 살려는, 남이 닦아놓은 평탄한 길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다수를 따르기보다 소신을 지키는 소수의 삶은 언제나 낮고 어두운 데서 빛을 발한다.
청정지역의 반딧불이는 형광등만큼 밝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작은 불빛을 귀하게 여겨 험난한 산길과 차가운 계곡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그제서야 그들은 질흑같은 밤 하늘에 뿌려진 별들이 한 낮의 태양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여의도 강변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놀이가 아무리 강렬한들 짧았던 축제가 끝나면 교통 체증과 화약냄새만 남길 뿐이다.
'경외심'이 인간에 있어 밝기와 크기, 화려함에 비례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나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비주류의 소수를 흠모하고 응원하는 소시민이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alex-loup-QqNy-z01AqE-unsplash.jpg
작가의 이전글내가 바라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