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선 언제나 거름 냄새가 났다. 농부처럼 부지런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순박했으니까.
안동이 고향인 그는 젊은 시절을 트럭 운전기사로 새벽 고속도로에서 보냈다고 했다. 그의 가족이 내가 입주한 빌딩 1층에서 식당을 하게 된 건 먼저 맨손으로 상경해 식당과 카페로 자리를 잡은 막내동생의 권유 때문이다. 그렇게 스파게티와 돈까스가 즐비한 골목에 '소고기 국밥집'을 차렸다. 직접 김치를 담그느라 배추 포기를 가르고, 국밥에는 토란줄기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면서 손톱밑이 까매지도록 다듬었다. 정성과 맛이 알려지고 자리가 잡힐 즈음에는 인기 TV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쓰였다.
자주 들렀다. 별다른 메뉴가 생각나지 않을 때, 비가 오는 날이면 육전과 국밥이었다. 그는 자주 벽에 걸린 소고기 구입 영수증을 보여주곤 했다. A등급만 쓴다는 자랑이었다. 초원을 마음껏 달리던 야생마를 목장에 가두면 그리 될지도 모른다. 전국을 누비던 그도 갑갑한 식당에 고삐가 매여서인지 가끔은 울화를 참지 못하고 주사를 부리곤 했다. 평소 말수가 없고 순한 사람인데 속상한 일이 있어 술이 들어가면 누구도 말리지 못할 지경이 됐다. 그런 그에게서 구리스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언제나 그런 날이면 아주머니가 3층 내 사무실로 쫓아 올라왔다. 진정시켜달라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늘 남편이 상경해서 유일하게 흉금을 터놓고 편하게 대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고 했다. 그런 날은 예정에 없던 술을 마시게 된다. 부서진 집기들 사이에서 흐트러진 옷무매새에 가끔은 손과 발에 피가 맺혀있는 그와 대작을 해야 했다. "에헤~ 또 왜 이러십니까? 무슨 속상한 일이 있으셔서...." "아 오셨십니꺼... 사장님. 내 말 좀 보이소. 예~" 그렇게 한참을 속풀이하도록 얘기를 들어주면서 술잔을 나눴다. 어느 정도 하소연 반, 신세타령 반을 들어주다보면 마침내 끓어오르던 용암은 식고, 천전히 김이 피어오르듯 중얼거리다 잠이 들었다. "아주머니! 사장님 속이 많이 상하셨네... 한 잠 푹 주무시게 두세요. 저는 이제 올라갑니다." "고맙십니더. 매번.... 저 양반이 3층 사장님 말만 들으니 죄송해도 어쩔 수 없어예" "괜찮습니다. 언제든 부르세요. 오늘은 가게 청소하시기 힘드시겠네. 갑니다. 저는..."
그랬던 그가 어느날 아무런 조짐도 없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죽은 것이다. 건강검진을 받다 운좋게 초기 위암을 발견했다. 그리고 수술을 마치고 다시 건강한 모습을 보인지 며칠만에 죽고 만 것이다. "어 이제 괜찮아지셨나봅니다. 건강해 보이세요" "그까껏 초기라 안합니까. 거뜬합니더. 걱정마이소." 씨익 웃는 그의 고른 이가 햇볕에 화사했었는데....
장례식에서 그의 막내동생과 아주머니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단다. 원래도 건강체질이라 며칠만에 퇴원해서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없어 가족들도 안도했는데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어 재입원을 했더란다. 병명도 없이 갖은 처방을 다해도 차도가 없더니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병명은 '불명열' 말 그대로 원인도 이름도 없는 열을 동반한 질병이란 건데 멱살을 잡고 울부짖는 유가족에게 당황했던 레지던트인지 젊은 담당의사가 불쑥 하지말았어야 할 언질을 하고 말았다. "수술실에서... 감염...." 그 단서로 병원에 항의도 하고 살려내라 생떼도 부려봤지만 중과부적이었다고 했다. 변호사도 찾아가봤지만 유명 대학병원을 상대로 해서 승산이 없을거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슈퍼 박테리아" 사방을 쫓아다녔던 그의 막내동생은 의료사고를 단언했다. 수술실에서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이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었노라고....
장례를 치른 후. 오가며 마주치는 가게 문간에 기대 선 아주머니의 시선은 늘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소고기 국밥집은 문을 닫았다. 아주머니가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나를 찾았다. "이제 어쩌시려구요?" "당분간은 딸네집에 가서 좀 쉴랍니다. 인자 서울이라카모 엉글징이 나서(정나미가 떨어져서)...." "예. 그래도 마음 추스리셔야죠. 아직 장가보낼 아들도 있는데..." "글케 그래야되는데.... 우찌 되겠지예"
나는 지금도 그 병원을 멀리 한다. '며느리밥풀꽃'에는 밥알을 물고 쓰러진 채 죽은 여인 전설이 묻어있어 꽃말이 '여인의 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