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똑똑이

by 문성훈

가방끈이 짧다고는 차마 말못하는 입장이긴한데 남보다 더 배웠다는게 부끄럽고 시쳇말로 '쭉팔릴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전문직이랍시고 전문가라고 깝죽대는 이들을 보고있노라면 얼굴이 화끈거리기 일쑤다.

나는 건축과 인테리어 일을 한다. 평생 디자이너로서 현역에서 활동하고 싶은 사람이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이 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늘 후배이자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전문가라 자부하지도 그 말에 현혹되지도 마라. 일반인들이 더 잘 안다. 다만 그 느낌을, 이유를 정확히 집어내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할 뿐이다."
실제로 그렇다.
일반인 즉 소비자들은 현명하다. 왜 같은 커피가 나오는데 어느 카페에서는 오래 머물고, 또 다른 데는 한번 가고 가지 않는가? 왜 어느 매장에서는 비싼 가격을 주고도 제품을 구매하기 주저하지 않는데 싼 가격에도 왠지 들어가고 싶지 않는 매장이 있을까? 온갖 비싼 소재와 현란한 디테일로 치장한 집인데 불편하고, 별스럽지 않은 단순한 디자인의 집에 마음을 빼앗길까?
그 일만 하는 사람보다 일반인이 더 넓게 보고 선입견없이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 대해서는 이용하는 사람이 더 전문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예도 허다하다. 예컨데 주방 설계를 하면 전업주부만큼 배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어렵다. 병원 설계를 하면서 교과서대로 했다가 큰 낭패를 본다. 모두가 자신의 세계에 함몰되어 세상사에서조차 자신만이 옳고 잘 안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전문가의 영역은 사람마다의 고유한 경험, 성격 그리고 미세한 감정의 흐름까지 파악해서 해법을 찾아 제시하는데 있다.

왜 박사 학위자가 산골 암자의 고승을 찾는가? 정규 학교도 나오지 못한 고승의 알듯모를듯한 짧은 화두를 받아들고 깨달음을 얻는가 말이다.
왜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 사기를 더 잘 당하고 전전긍긍하는지 궁금해한다면 '자가당착'의 의미를 알게 된다.
국난에 준하는 코로나 사태에 의사들의 파업까지 겹쳐 시국이 하수상하다. 고질적인 한국 개신교의 병폐가 이번 8.15집회를 계기로 봇물처럼 터져나온다.
한번 생각해보라.
학교에서부터 지금까지 논문과 임상에 전념한 의사들과 국가 의료시책을 논한다는 게, 아는거라곤 수천년 된 성경만 파먹으며 제대로된 노동으로 돈 한번 번 적없는 목사들과 시국 대책을 협의한다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인지 말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배웠다는, 존경받는다는 의사와 목사들 그리고 이야기꾼들에게서 수 많은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럴듯한 논리, 깊이있어보이는 설교에 귀가 솔깃해진다. 때로 더 배웠다는 것, 전문적이라는 얘기는 더 많은 변명과 수사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불과하다.
무성한 숲 가운데 솟은 나무가 어떤 모양인지 알려면 잔 가지를 걷어내고 둥치와 큰 줄기를 봐야한다. 수없이 갈래 뻗친 잔 가지와 하늘을 덮은 이파리에 현혹되선 안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근원 그 뿌리가 어디까지 얼마나 굵게 뻗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일부 의사와 전공의들의 의사증원 반대파업, 그리고 목사들의 대정부 투쟁과 대면 예배 강행을 두고 '돈'을 빼놓고 무슨 대단한 근거와 논리가 동원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
'돈''기득권'이라는 큰 줄기, '친일''반공' '독재결탁'이라는 뿌리말고는 모두 잔 가지, 무성한 이파리에 불과하다.
거기다 일부 난체 하고픈 이야기꾼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도 아닌데 울긋불긋 장식과 반짝이는 꼬마전구로 눈길을 뺏으려든다.

일반 국민들은 안다. 그들보다 더 깊고 더 정확하게 느끼고 알고 있다. 다만 일일이 짚어내질 못하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숲 전체를 내려다 보고 있는 국민 앞에서 허튼 수작은 그만 부렸으면 싶다.

'무당 앞에서 요령 흔든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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