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의 눈-1

by 문성훈

예정에 없던 발걸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사옥 마련을 위해 부지나 건물을 알아보는 중이라며 물망에 오른 몇 군데 후보지에 대한 내 생각을 듣고싶어했다.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내 의견을 개진했다. 묵묵히 내 얘기를 듣던 후배가 "형님 지금 말씀하신 지역 한번 같이 가볼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오후 별다른 약속이 없어 따라 나섰다.

주변을 둘러보다 한 부동산컨설팅 회사에 들렀다. 실장 명함을 건네 준 이가 묻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택이나 사무실 임대를 알아보시는 중이십니까?"
"아뇨. 사옥으로 쓸 건물을 매입할까합니다"
"아...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요. 차는 아이스커피 어떠신지요?"
"네. 좋습니다"

이내 대표 명함을 건네는 이가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는다. 실장이 아이스커피 두 잔을 내어온다. 잠시잠깐사이에 대표가 상대하는 V.I.P로 승격됐다. 후배는 면티에 청바지차림이고 나는 그와 서스럼없이 만나는 사이라 끈으로 허리를 줄여매는 펑퍼짐한 칠부바지에 린넨 티, 거기에 벙거리모자와 샌달차림이었다.
그런 사람이 건물을 매입하러 들렀으리라고는 쉽사리 예상하기 어렵다. 대표는 달변이었다. 대여섯군데 물건을 설명해주는데 막힘이 없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서비스를 이토록 유용하게 쓰는 이를 진작에 본 적이 없었다.

중간에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이후로 윤기흐르듯 거침없던 대표의 말투에 조심성이 묻어났다. 간혹 "형님께서 건축을 잘 아시겠지만...."이란 조사가 붙는다.
부동산 중개의 속성을 아는지라 장점만을 부각하고 단점은 감추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안다. 깊이 알아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취약점을 계약이 성사된 후에야 발견하는 경우도 봤었다.
그런 거추장스런 겉치레와 간보기를 건너뛰고 싶고 상담시간을 줄이려고 화장실에서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에 대한 언질을 살짝 하라고 말이다.

내가 이제껏 보여 준 물건 중에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되는 건물을 권해달라고 했다. 그가 한 건물을 지목해 좀 더 상세한 도면까지 건네준다. 역시 "형님께서는 도면이 더 편하시겠지만..."수식이 붙는다. 내친 김에 몇 가지 전문적인 질문을 했다. 임대현황, 용적율 그리고 현 건물주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과 더불어 올 장마에 누수가 있어 방수공사까지 마무리했음을 덧붙인다. 그리고 인사를 나누고 다음 약속 시간을 정하고 헤어졌다.



그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이나 오간 대화는 지금 우리 사회 현상의 축소판이다.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인 지위(status)는 '신분'이라는 뜻의 라틴어 statum에서 파생됐다. 좁은 의미에서 이 말은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을 나타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가리킨다.
높은 학벌을 쌓고 특정한 집단의 일원이 되려하고 많은 부를 가지려는 건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록 더 큰 권력을 행사하고 독점적 정보를 제공받을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 그 지위를 연장하는데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때로는 그 지위를 대물림까지 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런데 현대 사회 특히 급격하고 짧은 근대화 과정을 거쳐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지위가 주어지는 것이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다. 사람 됨됨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판단의 근거 역시 저열하다. 무슨 차를 몰고 다니며, 어디에 살며, 어떤 옷을 걸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인품을 지녔고, 무슨 생각과 말을 하며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는 뒷전이다.
그럼 점에서 본다면 세상이 계급사회였던 그 옛날보다 오히려 더 퇴보됐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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