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을 해야 한다. 숱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닌데 좀더 빨리 자란다. 이발하던 간극이 벌어진 데는 목욕탕의 휴업 영향도 있다. 나는 목욕탕에서 이발을 한다. 미장원에서는 하지 못하는 빗을 대고 잔다듬을 하는 날랜 가위질에 신뢰가 가고, 마지막 면도후의 청량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외날 면도기가 피부에 닿을 때는 늘 털이 곤두서듯 서늘하다. 언젠가 간단한 수술을 해야돼서 부분마취를 하고 메스가 피부에 닿을 때도 그랬다.
이제 한국인라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이국종교수는 외과의사다. 과거 고대 중세시대에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다. 이발관의 빨강, 파랑, 흰색은 동맥, 정맥, 붕대를 의미한다. 아직도 영국에서는 외과의사를 미스터(Mister)라고 하고 내과의사를 닥터(Doctor)라고 부른다. 15~16세기 유럽에서 이발사가 겸직하는 외과의사는 지극히 낮은 노동자 계층에 속했다. 내과의사는 약초처방을 하는 학자로 분류됐다. 종기를 짜는 등 간단한 외과적 시술은 이발사의 면도 솜씨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였다.
현대에 이르러 큰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징후가 나타나 각광받는 분야가 정신과다. 중세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을 귀신이 들린 상태로 봤다. 마녀 사냥으로 이어졌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정신질환자들에게 채워진 쇠사슬과 고문에 가까운 치료가 금지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야만적인 외과적 수술까지 행해졌는데 뇌와 가까운 눈 안쪽에 쇠꼬챙이를 집어넣어 신경을 끊었다. 우리 뇌리에 각인된 허공을 주시하는 멍한 시선으로 기력을 잃어버린 정신질환 환자의 모습은 그때부터 전해져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조현병으로 대표되는 정신병과 정신병원을 꺼리는 데는 이런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코로나가 창궐하니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감염내과란 진료과목이 자주 눈에 띈다. 전염병중 역사가 기록한 최악의 참사는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다. 페스트균에 의해 열병을 동반하는 이 질병이 2억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갔다. 수많은 문학작품에도 등장하는 이 병의 원인균인 페스트균을 19세기 말에 발견했으니 그 긴 시간동안 산발적으로 발생한 흑사병 사망자까지 더하면 세계 인구의 감소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사병의 창궐은 인류사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특히 종교계가 대표적이다. 부당한 부를 축적하며 타락의 길을 걷던 캬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사제 지원자가 줄어 함량 미달자들이 사제가 되는 바람에 교회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졌다. 이 불신이 마침내 1517년의 종교개혁의 주요 원인이 됐다. 부의 축적과 교회 세습으로 비판받고 무뢰한 개신교 목사들과 무지몽매한 교인에 의해 코로나가 확산되는 한국을 돌아보게 한다. 2020년을 기화로 개신교단의 개혁이 이뤄질 지 궁금하다.
과거 유럽 중세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까지 사회적 신분이나 낮았던 의사들이 과학과 철학을 동반한 의학의 발전으로 치료율이 높아지면서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됐다. 사람들이 생명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의사에 대한 의존이 깊어질수록 부와 명성이 따랐다. 사회적 지위는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으로 매겨진다. 의사에게 그에 걸맞는 지위가 인정되는 이유다.
그런데 21세기 코로나 창궐을 맞아 유독 한국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 할만한 방역을 자랑했건만 의사들이 가운을 벗고 환자를 외면한다. 의사들이 사람들에게 진료를 위해 진료를 거부한다는 역설을 강요한다. 지금 의사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 존경은 환자를 대하는 과거 선배 의사들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류애와 고뇌하고 연구하며 치료했던 노력의 결과다.
또한 의학계가 그러한 성취를 거두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과거 세균에 대한 지식이 없어 소독되지 않은 메스에 감염되고, 의사의 오염된 손에 수많은 임산부들이 죽었다. 과거 임산부의 주 사망원인이던 산욕열이 병자나 시체를 만진 의사의 소독되지 않은 손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겨우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수많은 구설과 억측이 생성됐던 정신병원에서 실험대상이 되어 동물적인 상태에 이르거나 죽어 간 환자들이 있었다. 지금의 의학적 성과도 기초 과학자들을 비롯한 인문사회학자들의 연구 그리고 엔지니어들의 기술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온 인류가 희생하며 거둔 성취고 현대 문명의 소산이다.
지금 한국 의사들이 절대 놓칠 수 없다고 붙잡는 부와 지위는 그 모든 성과가 집약되고 의사에게 집중된 결과다. 결코 의사들이 거머쥐고 유지하려는 권력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그들을 지금에 이르게 해준 신뢰와 존경, 인류애같은 근원은 외면한 채 부와 명성, 희소성에 기반한 사회적 지위에만 탐닉하고 집착한다. 본말이 전도됐다. 뿌리없는 나무는 시들기 마련이다. 열매는 기대할 수도 없다. 어리석고 탐욕스런 자들이 지금 눈 앞에 매달린 열매를 따먹겠다고 뿌리를 캐서 넘어뜨리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