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멈춰서는 안된다

by 문성훈

'양심 냉장고'를 아는지 모르는지로써 세대를 구분할 수 있다. 그만큼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건널목 정지선에 서는 차 운전자에서 냉장고를 선물하는 이 단순한 포맷의 예능에서 우리는 의외로 선량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드문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나는 또렷히 기억한다. 한밤중 홀로 정지선에 멈춰 선 첫 주인공이 '지체장애우'였음을...
그런데 이를 다른 각도에서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어디에서 어디일까? 정답은 머리에서 가슴이다.
관념적인 이 퀴즈는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으로 증명된다.
우리 몸에는 '미주 신경'이란 게 있다. 뇌에서 심장을 지나는 가장 긴 신경이다. 이 신경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배려를 돕는 신경이다. 이 얼마나 기막힌 우연이고 발견인가?
그런데 학자들이 부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 미주신경에 반응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공감'을 담당하는 뇌 부분의 스위치가 꺼지는 것이다. 자기 기준에서만 생각하고 자신의 만족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시하면서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그런데 공감능력 저하, 이기주의, 충동적 행동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지면 그 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한국 사회를 반분하고 격론에 휘말리게 한 '의사들의 파업'같은 사태가 그것이다.

미국의 감정심리학자인 UC버클리의 캘트너 교수가 재미있는 연구를 했다. "부와 특권으로 법망을 피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에 관한 연구"다.
그 연구 방법이 일종의 '양심냉장고 미국판'인 것이다.
보행자우선 구역인 교차로에서 미리 온 보행자가 기다리고 있을 때 정지선을 어떤 차량들이 잘 지키고, 지키지 않는지 조사한 것이다.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고급차들일 수록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차량 가격과 교통신호 준수는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미국에서 흔히 보는 구형 콜트는 위반율이 0%인데 반해 메르세데스 벤츠는 무려 46% 였던 것이다.

부와 특권을 가진 사람일 수록 규정과 법규를 어길 가능성이 높고, 그런 사람들은 굳이 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규정과 법규를 어기더라도 범칙금 정도는 부담이 안되고, 설사 인명사고를 내더라도 든든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설사 자신이 부상을 당했더라도 오히려 병원 특실에서의 예기치않은 휴가를 즐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니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피해를 당하거나 신호를 무시하고 달린 자신의 차량에 놀란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깃들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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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부와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 특히 교육열 높은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밟고 그 위치에 오른 오른 사시출신, 의사들이 때로는 고등교육 받은 일반 시민보다 못한 궤변과 억지를 늘어놓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는 연구가 있다.
" 캐나다와 미국의 연구진은 2017년에 교육 수준이 높으면서 정치적 견해가 각기 다른 성인들을 대상으로 쟁점이 되는 현안들에 관한 각자의 믿음을 지지하는 주장이 담긴 글을 읽도록 했다. 그런 뒤에 반대되는 견해의 글을 읽으면 보상을 주겠다고 하자, 3분의 2는 반론을 아예 “보지 않겠다“고, 진지하게 고려할 생각조차 없다고 했다.
반대 견해를 회피하는 것은 단순히 어리석음이나 무지의 산물이 아니다.

예일대 법학 및 심리학 교수인 댄 칸(Dan Kahan)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치적으로 양극화한 주제에 “더” 교조적인 견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
브렉시트 투표를 놓고 논쟁이 격화되고 있던 시기에 유럽연합 잔류파와 탈퇴파의 주류를 대상으로 소규모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피부 발진을 치료한다는 피부 크림의 효능에 관한 가짜 통계는 올바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똑같은 통계 자료를 이민자의 범죄율이 증가하거나 낮아진다는 것을 시사하는 자료라고 제시했을 때, 갑자기 그들은 수학을 모르는 사람이 된 양 자신의 정치 신념에 맞지 않는 통계를 잘못 해석했다.

칸은 같은 통계 자료를 피부 크림과 총기 규제에 관한 자료라고 미국인들에게 지시했을 때에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또 칸은 성격에는 특정한 성향에 맞서 싸우는 요소도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바로 과학적 호기심이었다.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 “호기심” 말이다.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 데이비드 엡스타인)"

나는 아직 우리나라가 느리지만 앞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비록 갈짓자 걸음일지라도 잠시 쉬어가더라도 뒷걸음치고 있지는 않다는 믿음말이다.
그런데 영어권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엘리트(Elite)란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부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쯤으로 여겨지는 현상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신문의 지면을 장식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들이 우리의 힘겨운 발걸음을 붙잡기도 뒤에서 잡아당기기도 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간만의_취타

<사진은 도로 하나를 두고 이웃한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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