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밀어낸 여름

by 문성훈

몸으로 맞는 가을은 일기예보보다 빠르다.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다 쓰고 ,12시간 지속이라는 독한 캡슐을 두번이나 털어넣고, 졸음병 걸린 닭처럼 이틀을 허송하고서야 깨어났다.
나의 가을은 언제나 알러지 비염을 동반하고 발작적 재채기로 시작을 알린다. 몸이 으슬하다 싶으면 가을이 노크도 없이 찾아 온 것이고 눈 앞에 먼지가 떠다닌다 싶으면 어느새 봄이다. 매년 겪는 두 번의 환절기는 노쇠의 징후처럼 비염을 앓게하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사계절을 지내면 생기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더 단단하게 여물기를, 더덕이나 산삼의 뇌두가 겹치듯 지혜가 쌓이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수백년을 사는 나무도 왕성한 성장을 하는 30년을 넘기면 성장 속도가 느려져 탄소흡수율과 생산성이 현격하게 떨어진다고 했다. 고작 100년 남짓하게 사는 인간의 왕성한 성장기는 언제까지일까? 아마도 20대까지가 아닐까 싶다.
격정적이던 20대 젊은 날을 함께 한 친구들이 50대 중반에 이른 지금. 나는 그들이 훨씬 더 세련되고 부유해졌으며 높은 자리에 올랐을지언정 인격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깊어진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기적이었던 친구는 실은 더 이기적이 됐지만 교묘하게 감추는 방법을 터득했고, 약삭빨랐던 친구는 세상과 타협하는 기술이 더 능란해졌을 뿐이다. 정의롭던 이는 무뎌지거나 더 극렬해졌지만 여전히 속에 불덩이를 감추지 못하고, 언제나 정이 넘쳤던 이는 나눠 줄 것이 부족한 현재의 모습에 회한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 이미 인격체로서의 성장점을 지나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시베리아 산불은 꺼지지 않고, 북극의 빙하는 녹고 있으며 이 순간에도 아마존 우림은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 인간은 서로를 죽이는데 혈안이 되고 있고, 서방에서는 비만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데도, 아프리카 난민들은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며 미이라가 되어간다.
민간기업이 우주에 로켓을 쏘아올리는 과학의 발전에도 발밑에서 언제 꺼질지 모르는 씽크홀의 위험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참담하다. 그 로켓의 탑승권은 세계 부호들의 관심으로 매진됐고, 씽크홀로 사라지는 버스와 자동차에는 새벽을 밝히는 고단한 하루살이 인생들이 타고 있다.

우리는 희망과 절망,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현재를 살고 있다. 희망과 절망의 눈금자 어디쯤에선가 흔들리는 나침반을 들고 서성이는 자신를 보고, 미래와 과거를 잇는 용접 불똥에 눈이 부셔 잠시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들며 살고있다.
슬랙이 울린다. 디자인 경영과 데이터 분석을 하는 교수 친구가 강의 자료를 준비하며 예의 관심사인 EPL 토트넘의 "All or Noting"다큐멘터리를 몰아서 봤다는 소식을 올렸다.
일화도 소개해줬다. 조제 무리뉴는 토트넘의 키플레이어 델리 알리를 불러서 1:1 면담을 한다.
"난 너의 아버지가 아니다. 넌 아버지가 있으니까. 난 너의 삼촌이나 큰 형처럼 행동하지 않을 거다. 나는 그저 너의 감독으로 대할 것이다. 난 내 마음 속에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다. 넌 현재 영국축구 선수 중에서 가장 최상위 잠재성을 가진 선수이다. 하지만 넌 고점과 저점을 너무 자주 찍는다(so many ups and downs). 한때 영국 최고의 선수들이 22살에 가장 놀라운 잠재력을 보이고 국가대표가 되었다가 사라진 경우를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너 스스로 자신을 분석해보라. 난 너의 사생활에 대해서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직 너 스스로 분석해보라. 너는 알 것이다."
내가 아는 그는 한 사람의 훌륭한 감독이 젊은 선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키고 팀을 이끌어 성과를 내는지를 분석해 한 편의 강의 자료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수업에 들어 온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에게 분명 의미있는 강의를 들려 줄 것이다.
우연히도 그 문자를 열어 본 순간 나는 EPL의 또 다른 스타에 꽂혀 검색에 열중하던 중이었다. 세네갈 출신의 EPL 리버풀의 스타 플레이어 사디오 마네다. 연봉 1000만불을 받는 그의 깨어진 아이폰이 화제가 됐는데 그의 답변이 놀랍다.
"내가 왜 10대의 페라리, 20개의 다이아몬드 시계 두대의 전용기를 가져야 하나요? 그게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과거에 나는 배고팠고, 농장에서 일했고 맨발로 뛰어 놀았고 학교에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나는 학교를 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을 나누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 동안 여러 학교를 지었고 경기장도 하나 지었습니다. 우리는 극도의 가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옷과 신발 그리고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매달 70유로(약10만원)씩을 매우 가난한 세네갈 사람들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생활비 지원 차원에서 주고 있습니다. 나는 값 비싼 고급차들과 고급 저택과 여행 그리고 심지어 비행기 까지 떠벌리고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내 나라 사람들이 삶이 내게 준 것들 가운데 조금이라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마네는 1992년생이고 학교 대신 7시간이 걸리는 축구클럽을 다니며 꿈을 키운 아프리카 세네갈 젊은이다. 델리 알리는 1996년생의 백만장자 아버지를 둔 영국 청년이다.
모르긴 해도 교수 친구는 무리뉴의 리더쉽과 델리 알리의 그 이전과 이후 성적을 추적할테고 , 나는 사디오 마네의 출중한 플레이보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의 꿈을 향한 도전 정신과 화려한 성공 뒤에 보여주는 그의 언행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 할 것이다.
관점이 어디에 있든 우리 두 사람은 다가올 미래, 우리가 머물다간 세상에 남을 다음 세대에 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 성장이 더딘 50대를 지나 60대를 향해가고 있지만 우리 세대가 드리운 그늘로 어린 나무가 햇빛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닌지, 극심한 가뭄에도 우리의 넓게 뻗은 뿌리로 그들의 잔뿌리에 수분을 공급하려는 노력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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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오 마네의 깨진 아이폰에 눈길을 거두지 못한 건 지금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젊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절망감과 한 장의 사진이 가져 온 충격 때문이었다.
공부대신 축구를 택한 아프리카 청년 사디오 마네의 말, 전교1등을 훈장으로 여기는 한국 젊은 의사의 파업, 그리고 인권탄압을 부르짖는 정치 지망생이 올린 사진. 그들은 모두 20대다.
환경 재앙을 불러오는 지구온난화를 막는 방법 중에는 성장이 더딘 수령 30년 이상의 나무를 베어나고 조림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아마도 넓은 이파리만 무성해 어린 나무가 받을 햇빛만 차단하고 산소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늙은 나무들을 솎아내듯 인간사에서도 그런 벌목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땔감으로라도 쓰일 수 있게....
앓고 난 뒷끝이라선지 머릿 속이 뿌연데다 무겁다. 두서도 없고 맥락이 맞는 지도 모를 글인데 놓쳐버린 이틀이 아까워서 무언가 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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