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 화장대 그리고...1

by 문성훈

사람을 두고 '개상'인지 '고양이 상'인지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무래도 얼굴의 윤곽으로 판가름하게 마련인데 성격도 어느정도 반영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거북이'가 되고 싶다고 했고, 젊은 날은 '고슴도치'였음을 단정짓곤 했다. 그래서 처음 낸 에세이의 제목이 '거북이가 된 고슴도치'였다. 타고난 성정(性情)을 동물에 빗댄 말이었다.

식물이나 과일이라면 어떨까?
나는 '호두'이고 '호두나무'가 되고 싶다. 호두의 한자인 호도(胡桃)는 흔히 '호주머니'나 '호떡'처럼 북쪽땅에서 넘어온 ''오랑캐(胡) 복숭아(桃)'란 뜻인데 우리가 먹는 부위는 씨의 속살에 해당한다. 초록 매실같은 겉껄질을 벗기면 울퉁불퉁 야문 씨가 나타나는데 흔히 지압을 위해 손에 끼고 있는 물건이 이것이다. 이마저 깨뜨려야 고소하고 기름진 과육을 먹을 수 있다. 과육 또한 씁쓰름한 맛이 나는 얇은 막으로 쌓여있다. 지구상 과일 중에 가장 영양분이 높다는 '피칸'도 호두의 일종이고 보면 참으로 유용한 작물이다.

기억은 가물한데 언젠가 가까운 지인이 나를 두고 '호두 같다'고 했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들킨 기분이긴 했는데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겉껍질인 녹색과육은 세상에 드러난 내 모습이다. 이 껍질은 밤송이 까듯 발로 밟아서 볏겨내곤 하는데 이때 튄 물은 오래도록 안지워져서 난감하다. 그래서 땅속에 묻어두는 데 시간이 지나면 썩어서 자연스럽게 벗겨진다. 나 역시 제 자리에 두고 오래도록 지켜보면 제 스스로 알맹이를 드러내는데 누군가 억지로 속을 헤집으면 낭패를 보게 마련이다.

드러난 씨앗은 단단하고 울퉁불퉁하다. 벌레도 파고들지 못할만큼 좀체 깨뜨리기 힘들어 여러도구를 사용하고 그 중에 하나가 '호두까기 인형'이다. 그런데 호두 두 개를 손아귀에 쥐고 살짝만 힘을 주면 의외로 잘 깨진다. 이 야문 껍질은 갑각류의 그것처럼 부드러운 속살을 보호하고 있다. 실상 여리고 모질지못한 심상(心想)을 가지고 세파를 견뎌야하니 나 역시 단호하고 때로는 까칠한 면을 보이는데 호두의 생긴 모양이 그러하다. 희안하게도 비슷한 성격의 사람은 남보다 먼저 알아보고 친해지니 손아귀의 호두 두 알처럼 쉽게 마음을 연다.
과육을 감싸고 있고 쓴 맛이 느껴지는 얇은 마지막 껍질은 겉과 속의 경계다. 마치 내 속내를 다 드러내기 전 통과의례처럼 간혹 쓴 소리나 돌발적인 행동을 보였던 젊은 날의 나를 보는 듯 하다.

그렇게 한 입 베어물면 그만인 사과나 쉽게 벗겨지는 바나나와 달리 꽤나 성가신 과정을 밟아서 꺼낸 속살은 고소하고 기름지며 영양까지 겸비했다. 감히 내가 그러하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최소한 독성을 지니지도 않았고 뱉어 낼만큼 쓸모없는 존재도 아니거니와 눈물도, 인정도 많은데다 마음까지 약하니 그 또한 내 생긴 그대로이다.
호두나무(Walnut Tree)는 단단해서 고급 목재로 쓰이는데다 그 결이 아름답고 커피처럼 진하다. 흔히 월넛(Walnut)이라고 부르는 수종이다. 단단한 껍질은 잘게 부수어 미끄럼 방지를 위한 도료에 첨가하는 재료로 쓰인다.
그야말로 버릴 게 없는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