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는 조카들과 무척이나 잘 놀아주는 삼촌이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0일도 안된 아기를 안아보겠다고 달려갈 정도였다.
친외가 형제많은 집에서 태어난 관계로 조카들은 끊김없이 태어났고 데리고 놀던 조카들은 비온 뒤 죽순처럼 금새 자라 콧수염이 거뭇해지고 제법 아가씨 태가 나곤 했다. 조카들에게 나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밥투정하고 생떼 잘 부리는 조카에겐 '의사 삼촌'으로, 개구장이 녀석들에겐 '군인삼촌'으로 역할을 달리하며 엄포를 놓기도 하고 같이 뒹굴었다.
녀석이 꼬마적에 정말 군인신분으로 휴가때마다 들렀던 누나 아들인 조카가 있다.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지금도 나를 '군인삼촌'으로 부르는 정이 많이 가고 살가운 조카다. 오늘 녀석과 아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직업상 만날 기회도 많았고, 친구,선후배 심지어 가족 중에도 의사들이 많다. 의사 파업이 있고부터는 일부러 그들과 일체 통화를 하지않다가 녀석은 지금 전공의 3년차인지라 전화를 했다. 수차례 전화를 했는데 받지않았다. '바쁜가? 출근한건가?'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전화가 왔다. "예. 삼촌. 죄송해요. 회의중이라 못받았어요" "집인줄 알았지. 회의였구나" "네. 좀전에 집행부가 사퇴를 해서..." 아직도 격앙됐던 분위기가 녀석의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왔다. "그랬구나. 니가 무슨 과라고 했지?" "외과요" "* * 이는? " "ㅇㅇ과요" 조카부부는 의과 동기생으로 만난 결혼한지 불과 1년 남짓 됐다.
1시간 15분 36초. 꽤 긴 통화였다. 현재 상황에서의 젊은 의사들 입장과 생각을 직접 듣고 싶어서 한 전화였는데 예상했던대로 일반 대중의 인식과 그들간의 간극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대부분 이미 주지하던 바였고 조카는 시중에서 나오는 얘기들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역시 예상했던대로다. 긴시간 동안 오갔던 많은 얘기들과 그들 내부 분위기를 다 옮길 수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정부와 의협에 대한 불신과 감정의 골이 깊고, 사태 인식에 있어서도 일반대중과는 간극이 넓다는 것. 그래서 의사가 소통과 교감 그리고 대화에 서투른 전형적인 전문 직업군이라는걸 재삼 확인했다는 정도로만 정리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 뒹구는 말이라고는 "삼촌. 저 아시잖아요. 애기때부터 지켜보셨잖아요. 저 사람 살리고 싶어서 의사됐어요. 정말... 그래서 외과를 택한거고..." '안다. 삼촌인데 알고 있지. 아니라고해도 그렇게 말해 줄 사람이 삼촌이잖니 그런데 말이다....' 사실 관계와 근거는 차고 넘치는데 무슨 얘기를 해도 별 소용없으리란 걸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철길처럼 평행선만 달릴 수 없어 소실점을 찾으려고 몇 가지 조언과 당부를 해줬다. "예. 삼촌 그래야 되는데... 쉽지가 않아요. 저희는 의사잖아요. 그런 데 익숙하지도 않고... 앞으로 어찌 될 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한층 누그러지자 내가 사랑하는 조카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녀석이 밝아진 음성으로 외치듯이 "아 .참 삼촌! * *이 애기 가졌어요"라고 한다. "그으래~ 몇 개월인데? 짜식 그렇게 바쁘다면서 할 건 다하네. 푸하하" "히히~ 삼촌도 좋으시죠. 딸이래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딸 조오치~ 크크...푸하핫...근데 그렇게 되면 이 삼촌이 어떻게 되는지가 알고나 떠들어라 이놈아" "왜요?" "내가 이제 또 손주가 생겨서 할애비가 되잖냐. 젊은 할애비" "아 그렇구나 하하핫" "그래 잘해줘라 이때 잘하지 않으면 평생....알지?" "예. 잘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 축하한다. * * 이 한테도 내가 축하한다고 전해주고..." "네. 삼촌"
전화를 끊고서 의자를 뒤로 제끼고 깍지를 낀채 몸을 깊숙히 묻었다. 그러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생각났다. 작년에 썼던 글을 뒤져서 찾아냈지만 다시 전화하지는 않았다. 벌써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서다. 그리고 지금은 영원한 군인 삼촌이 글로써 남겨놓는다.
"ㅇㅇ아! 부디 너는 의사가 되지말고 의사 '선생님'이 되렴. 그럴거라고 믿어 삼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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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짜탐구 /2019.5.18
결혼 적령기에 이르면 마담 뚜의 집중 공략을 받는 이들이 있다. 소위 '사'짜를 붙은 직업군이다.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회계사등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요하고 희소성을 가진 대체로 고소득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교사, 요리사, 운전기사 심지어 장의사는 '사'짜 직업에 속하지 않는 것인가? 누군가는 '사'짜라고 해서 다같은 '사'짜는 아니라고 항변할 지 모른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검사(檢事), 의사(醫師), 변호사(辯護士) 역시 각기 다른 사(事,師,士)짜를 쓰고 있다. 왜 그럴까 궁금해졌다.
일 사(事)를 쓰는 직업에는 판사(判事), 검사(檢事), 집사(執事) 등이 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소위 '영감님'으로 우대받는 판,검사들이지만, 실은 주인 곁을 지키면서 잡일을 도맡거나 교회에서 봉사하는 직분을 맡는 집사(執事)와 같은 사(事)짜를 쓴다. 한마디로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그야말로 전문 기술직인 셈이다. 법과 원칙을 우선시하고 개인의 판단보다는 주인의 판단이 우선이다. 판,검사는 국민을 위해, 집사는 주인을 위해 일을 하는 직원인 것이다.
선비 사(士)짜에는 변호사(辯護士), 회계사(會計士), 세무사(稅務士)가 있다. 대체적으로 서류에 묻혀 지내는 사람들이다. 공통된 점은 '돈'과 연관되어있다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의 신조어와 관련된 변호사가 그러하고, 재무와 관련된 회계사, 세무사에게 선비 사(士)가 붙는다. 말하자면 선비(士)의 의미처럼 벼슬이나 명예는 없지만 지식(학식)은 있어야 밥벌이가 되는 직업인 셈이다. 다만 시대의 변천으로 지금은 돈이 된다. 그래서 같은 고시를 패스해도 판,검사는 국민의 세금으로 비교적 적은 봉급을 받고, 변호사는 의뢰인에게서 성과에 따른 높은 수임료로 부(富)를 축적한다. 판,검사(事)를 그만두고 변호사(士)가 되는 순간 '영감님'에서 '변호사 양반(士)'으로 호칭이 바뀌고 '명예'를 놓고 '돈'을 쫓기 마련이다.
스승 사(師)짜가 흥미롭다. 의사(醫師)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발사(理髮師)와 요리사(料理師), 장의사(葬儀師)가 이 사(師)짜를 쓴다. 당연히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敎師)도 있다. 이 사(師)짜는 되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사가 되려면 누구보다 오랜 교육과 숙련과정을 거친다. 어느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처우가 형편없다. 이발사, 요리사 역시 고된 견습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사제지간, 사수와 조수의 관계가 그 어느 직업보다 돈독한 반면 엄격하다. 그래서 스승 사(師)를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판,검사나 회계사와는 달리 도제식(徒弟式)교육으로 몸으로 감각으로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직업인 셈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다. 이발소 표시등이 붕대를 의미하는 백색, 동맥의 빨강, 정맥의 파랑띠로 돌아가는 이유다. 이 사(師)짜를 가진 직업군은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 메스와 면도칼을 들고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의사와 이발사, 육체를 먹여살리는 요리사와 정신을 먹여살리는 교사.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의사(葬儀師). 그들의 일에는 신(神)을 대신하는 경건함이 있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사명이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