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와 휴대폰

by 문성훈

#변기와_휴대폰

기생충에서 기택의 반지하 화장실이 보여주는 모습은 무척 사실적이다.
방바닥보다 높은 데 설치된 변기는 그 존재만으로 반지하의 핍진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양변기 그 위에 자리잡은 창문에는 노상방뇨하는 사내의 다리가 보인다. 땅보다 낮은 변기 그리고 변기보다 낮은 방바닥이 기택의 가족이 생존 피라미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다.

그들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이 유일하게 평등을 부르짖는 21세기. 같은 시대를 살고있다는 호패와 같은 것인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파마저 차별적이다.
스마트 폰을 치켜들고 와이파이 수신을 잡으려고 애쓰는 남매의 모습은 왠지 웃프고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최초의 변기는 16세기 여왕을 위해 만들어졌다. 귀족의 사치품이 서민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건 20세기이후다.
거듭되는 발명과 개선으로 오늘 이르는데 지금과 같은 유약바른 도자기관은 1846년 돌턴이 만들었지만 정작 유명세를 떨친 건 1884년 조니 제니 제닝스가 발명한 받침대 단지(좌변기)다.
당시 수세능력을 강조한 광고의 표현은 이렇다. "2갤런의 물로 사과 열알과 납작한 해면을 씼어내렸다".

그런데 우리는 사과 열알과 납작한 해면이 어디로 흘러들어갈지에는 무관심하고, 그것들을 쓸어내릴 2갤런의 물이 수십킬로를 걸어서 길어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절박한 생명수인지를 잊고 산다.
작은 양변기 하나를 위해 얼마나 큰 정화조가 땅에 묻혀있는지, 그 오물을 걸러내기위해 얼마나 더 많은 물과 약품 그리고 시설을 갖춰야 하는지 그리고 제대로 되고는 있는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정작 우리가 유심히 봐야할 장면은 양변기 뚜껑을 치받으며 솟구치는 오물이고, 침수된 집안에서 허우적대는 기택 가족의 모습이다.
환경 파괴와 물질 문명과 무관하지 않은 코로나19 창궐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현 인류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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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전화기는 1886년 그레이엄 벨이 발명했다고 알려져 왔지만 오늘날 전화기의 최초 발명자는 '안토니오 무치'라는 게 정설이다.벨이 시험용 전화기로 조수인 토머스 왓슨에게 "왓슨 이리로 좀 오게'라고 한게 역사상 최초의 통화다.
벨은 이후 1925년에 지금도 유명한 'A&T벨 연구소'를 설립한다.1973년 4월 3일 그 연구소로 한 통의 전화가 간다.
“네, 벨연구소 조엘 엥겔입니다.”
“조엘? 나 마틴이야.”
“반갑네, 마틴.”
“알려줄 게 있어서 연락했어. 지금 말이지. 자네하고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거야.”
모토로라 선임연구원인 마틴 쿠퍼가 손에 들고있던 물건이 현대 스마트폰의 시초인 벽돌만큼 묵직한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다. 그의 친구였던 조엘은 유력한 경쟁사였던 'A&T벨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었다.

마틴은 당시 전화기너머로 조엘의 이를 가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다고 했고 정작 조엘은 이 통화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쟁자였지만 친구이기도 했던 마틴과 조엘이 이후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는 기록에 나와있지 않지만 결코 예전의 친분을 유지했을리는 만무하다.

그래서일까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깝게 이어주고 쉽게 소통하게 해줬다는 이 문명의 이기가 정작 현대에 이르러서는 인간관계를 더 소원하게 하고 보이지않는 벽을 만들고 있다.
한달음에 달려갔을 일도 전화 한통으로 해결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빌어야 할 경우에도 인터넷부터 뒤진다. 그마저 귀찮으면 문자로 대화를 이어가며 혹시나 오해의 여지를 남길까봐 열심히 다양한 표정의 이모티콘을 찍어대면서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생각을 전파로는 날릴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이미 벨의 통화상대였던 조수가 있던 바로 옆방과 마틴이 뉴욕에서 날렸던 전파가 달렸던 뉴저지 연구소까지의 거리 차이만큼이나 멀어져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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