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딱 좋다

by 문성훈

"어머니가 또 뭘 좀 싸주셔서 냉장고에 넣어뒀습니다. 혹시 제가 없더라도 챙겨드시죠"
"아 네... 그러죠"

사무실을 같이 쓰는 ㅇ교수는 일주일에 한번은 홀로 계시는 모친을 찾아뵙는다. 그렇게 식사도 하고 가끔은 밑반찬을 받아오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번 자식에게 손수 밥상 차려주시는 게 낙이신데 가는 길에 쥐어주는 반찬꾸러미를 마다할 수 없다했다. 집에서는 그리 환영받는 찬들이 아니다보니 반색하는 나와 함께 먹는다.

ㅇ교수는 새벽 첫 버스로 출근하는 철저한 '새벽형 인간'이고 나는 마지막 버스로 퇴근하고도 새벽에 잠드는 '저녁형 인간'이다.
그는 아침 출출할 때. 나는 저녁 때를 걸렀을 때 냉장고를 연다.
살뜰하게 밥까지 담아 주시는데 큰 찬합에서 번갈아가며 밥을 덜어서 축 내는 방식이다.
엄마의 손맛에 길들여진 우리 세대로서는 보물창고인 셈이다. 김치는 물론이고 나물이며 생선 거기다 젓갈까지 누구 엄마솜씨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는 고향이 전라도고 나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다. 그 지역에서도 촌놈들이다. 그런데도 굳이 식성이 비슷한 이유를 꼽자면 둘 다 남도 바닷가 출신이라는 점이다. 일부러 먼길을 나서 연탄으로 굽는 생선구이집을 찾는다거나 제대로 된 갈치조림을 먹으러 다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무실 누구도 따라나서지 않는데 이제는 그것도 익숙해졌다.
"아...그런데 소장님 '양태'아세요?"
"양태... 그거 우리 고향에서는 반쯤 말려서 먹기도 하고..."
"네. 맞습니다...... 이거요"
ㅇ교수가 스마트폰에 띄운 양태 사진을 내민다.
양태라는 생선이 있다. 장태, 낭태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조금씩 다른데 그리 잘생긴 생선은 아니다. 넙데데한 대가리며 못생긴게 등에 가시 돋은 메기같기도 한 놈이다. 주로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조리거나 구워먹기도 하고 탕으로 끓여먹기도 한다. 사진을 보니 그놈이 맞다.
"맞네요. 어릴 때 자주 먹었죠"
"냉장고에 미역국이 있는데 양태로 끓인겁니다"
"아... 그래요. 우리 고향에선 가자미나 도다리도 넣어서 미역국을 자주 끓였는데 양태는 처음 먹어보겠네요. 그거 맛나겠네요"
우리는 둘 다 서울에 와서 소고기가 든 미역국을 먹어본 사람들이다. 그 얘기를 하면서 마주보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저녁 다들 퇴근하고 혼자 저녁 먹으러 나가기도 뭐해서 냉장고를 열었다. 하나도 같은 병과 통이 없다. 그야말로 제각각인데 내용물도 저마다 다르다. 식은 밥과 미역국만 전자렌지에 돌리고 깍두기와 김치만 꺼냈다.
생선살만 발라서 넣어 둔 통도 보인다. 엄마가 아니면 이제 같이 늙어가는 아들을 이리 챙길까.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고선 빈 통은 설겆이해서 회의실 탁자에 마르게 엎어뒀다.
언젠가 생태탕을 먹고 오던 산책길에 그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무슨 얘기끝에 내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나이드는 게.... 이 나이가 된 게 별로 나쁘지 않습니다"
"왜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생각해보세요. 좀 더 늦게... 한 20년 정도만 늦게 태어났어도 저런 음식들 맛을 볼 수 있었겠어요. 스파게티나 포크로 말아서 먹고 있겠죠. 다행이죠. 다행..."
"그렇겠네요. 우리가 찾는 허름한 식당들도 남아있지 않겠죠. 10년 정도 지나면..."
"그럼요. 그나마 서울에서도 찾아갈 수 있는 식당들이 아직 남아있는 지금이 낫죠"

된장에 박힌 고추와 된장으로 무친 산나물, 손 많이 가는 고추잎, 고구마 줄기무침, 쌈싸름한 가지나물과 호박잎쌈, 시장에서 보기 힘든 생선, 갈치속젓과 아가미젓, 후추 대신 산초를 넣은 추어탕, 꼬릿한 냄새나는 청국장, 볏짚에 삭힌 홍어가 남아있는 지금이라서 그나마 숨통이 틘다.

나는 하느님이 한 사람에게 전부를 주시는 경우는 못봤어도 하나도 주시지 않는 걸 보지는 못했다. 그 말은 한 세대에게만 모든 축복을 내리시지는 않았다는 말이기고 하다.
분자요리에 연예인 쉐프가 넘쳐나는 지금이지만 옛 맛을 제대로 알고 원한다면 세계 음식도 맛 볼 수 있는 지금 나이가 딱 좋다.

"어이 젊은 사람들~ 늬들이 옛 맛을 알어? 그 깊숙하고 아련한 맛을 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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