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부러지게 그러마하지는 않았지만 카센터를 찾았습니다. 엔진 오일을 갈아야하고 정기 검사도 받아야 합니다. 차는 아내가 타고 다닙니다. 지긋지긋하고 신경쓰이던 운전을 하지읺으려고 제 차는 처분한 지 오래입니다. 아내는 오일을 벌써 갈아야 했었는데 3000 Km를 더 탔다고 했습니다. 정기 검사 시한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제가 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선뜻 그러마 하지도, 언제 해달라는 말도 없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오늘이 그날이 됐습니다. 아내가 차를 두고 나간 겁니다. 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은근히 부아가 나기는 합니다. 조금 멀지만 아내는 엔진오일조차도 직영 정비사업소에서 갑니다. 제가 그리 시켰습니다. 작은 접촉사고에도 보험사에 전화부터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정비사업소를 향하다 핸들을 꺾었습니다. 굳이 저조차 거기까지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아서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내를 위해 집에서 가깝고 믿을만한 카센터를 섭외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도시의 어디쯤에 카센터들이 몰려있는 지도 압니다. 자동차가 많이 입고된 데를 찾았습니다. 전국망을 가진 체인업체입니다. 수리할 차들이 밀려있어 점심시간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내일 다시 들르겠다고 하고서 골목을 빠져나오려는데 작고 깔끔한 카센터가 눈에 띕니다.
정비중인 차는 한 대도 없습니다.역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경정비 프랜차이즈입니다. 젊은 주인은 제 몸무게 두배는 됨직한 거구입니다. 트럭을 정비해도 거뜬해 보입니다. 으레 수리를 맡기거나 행정처리를 해야돼서 시간이 걸리게되면 작업자와 대화를 나누는 게 버릇이 됐습니다. "자동차 정비는 그래도 코로나와 상관 없죠?" "왜요. 잘 안돼죠. 사람들이 잘 나오지도 않고, 소모품교체도 자꾸 늦추니까..." "그래도 차는 굴려야 할텐데도 그렇습니까? " "네.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전문지식이 없어 건성으로 볼 수 밖에 없지만 일처리도 날렵하고 마무리도 깔끔합니다. 다른 부위에 이상은 없나 부품교체가 필요한 건 없는 지 살펴줍니다. "브레이크 패드가 앞 뒤 다 닳았네요. 가실 때가 됐는대요" 육안으로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 참에 갈아줘야겠다 싶어 마저 작업해달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죠? 근처 괜찮은 식당이 어딥니까? 점심을 먹어야겠는데..." 설렁탕집과 냉면집을 소개해줬습니다. "근데 사장님 식사는 어쩝니까? 어디 시켜 드시는데 있으면 같이 드시죠. 제가 사드리고 싶은데..." "아닙니다. 저는 좀 있다 누가 오기로 해서요.."
설렁탕은 맛있었습니다. 그 사이 주인은 서비스로 엔진룸 세척과 에어컨 청소까지 끝내놨습니다. "설렁탕 맛 괜찮으시죠? 잘하는 덴데..." "네 덕분에... 맛있더라구요." "직접 끊여내기도 하지만 뭐 다른 걸 집어넣지도 않아서..." "네 그런거 같던대요. 제가 알던 데는 저어기...." 그렇게 우리는 자동차 정비얘기 대신 인근 설렁탕집들 품평을 했습니다.
"근데 사장님 라이트 LED로 교체 했으면 하는데 이거 불법이죠. 밤길이 너무 어두워서..." "네. 아직은요. 저도 그래서 교체해서 쓰는데... 곧 풀릴 겁니다. 지금 이 차량에 쓰인 라이트만 남았거든요. 하나씩 다 풀리고..." "거 참...이런 건 왜 이리 늦는지..." "그러게요. 저는 강화도를 자주 가는데 시골길이라 보이질 않아서 다 교체했습니다. 제가 77년생인데 또래들이 다 그렇던데요. 딱 노안이 올 시기라서인지 친구들도 와서 바꿔달라 그러더군요.하하하" 저는 지난 주 책과 노트북용 안경을 맞췄습니다. 헤드라이트는 정식으로 교체 가능할 때 바꾸겠노라 하고서 헤어졌습니다.
반나절동안 매일 반복되고 평생토록 하게 될 일들을 다 한 셈입니다. 전구 하나를 못 가는 아내보다 조금 나은 남자인 제가 자동차 정비를 다녀오는 게 사리에도 맞고 현명한 일입니다. 실상 부아가 나는 것은 평소를 차를 누가 사용하느냐에서 비롯된 불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서 이유를 찾습니다. 간단한 소모품조차 대형 정비사업소를 찾고, 작은 사고에도 보험사부터 찾으라는 건 세상이 아직 여자로 살아가기에 버겁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자 의심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런데도 엔진오일 가는 건 귀찮아합니다. 처음 찾은 카센터 주인에게 다음날 찾겠다는 빈말을 하게 된 건 세상을 사는 요령을 그나마 깨쳐서일지 모릅니다. 무시로 하고 사니 괘념치않고 스칩니다. 아무런 정보가 없은데 굳이 대기업의 체인인 카센터를 찾은 건 부질없는 선입견에 젖어있어서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는 한 가지 편견과 하나의 속단을 내립니다. 순간적으로나마 외모로 자질을 가늠했고, 사회적 현상과 내가 모르는 분야와의 연관성을 예단한 겁니다,
하지만 생존 본능인지 경험의 축적인지 모르겠지만 카센터 주인이 일러준 데서 식사를 함으로써 만족했고, 잠시의 대화에서 그를 신뢰하게 됐기에 굳이 정비를 지켜보지 않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나와 그 주인은 불법이라 망설이거나 불편해서 법을 어깁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같은 불편을 겪고 불합리한 법에 불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법은 항상 뒤쫒아오지 앞서가는 일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둘은 동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세대인데 노안에서 공통점을 찾고 동질감을 느낍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용케도 서로를 부비면서 견디고 또 내일을 맞습니다. 소통과 배려, 신뢰와 교감이라는 인간만이 지닌 수단을 통해서 말입니다. "살았다는 것. 살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는 살았다는 흔적이 없다. 그냥 그날이 있었을 뿐. 잘 견디어내는 것은 오로지 권태뿐이야" 박경리선생님의 '토지'에 나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