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입구 안내판에 적힌 600년 역사가 무색하게 일요일 저녁의 남대문 시장은 을씨년스러웠다. 오랜만에 갈치조림을 먹으러 갔다. 저녁 7시를 향해가고 있을 뿐인데 왠만한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그나마 나와있던 노점상은 고단한 하루를 접는 중이다. 그 손길이 느릿한데 오늘 매상은 신통찮은게 분명하다.
혹시나 염려했는데 갈치골목에 불 켜진 가게들이 제법 있다. 매콤한 갈치조림에 서비스로 나온 계란찜으로 속을 채우니 허기와 힘께 잠시나마 침울했던 기분이 가신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식당을 나오는데 주인장이 "좋은 시간 되십시요. 또 오십시요"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하루가 얼마남지 않았는데 더 길어질 것만 같았다. 돌아오는 길. 노점상이 철시한 자리에는 단단히 엮은 짐무더기 놓여있다. 내일 다시 노점은 펼쳐질 것이고 그들은 앞으로 펼쳐질 600년의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친구의 메일은 읽는데 마포대교가 '자살 1번지'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한강을 잇는 다리는 철교까지 31개다. 연간 500명 정도가 뛰어내린다. 얼마전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 나들이를 나와 서강대교가 보이는 카페에 앉았는데 119차량이 싸이렌을 울리며 질주하더란다. 무슨일인가 했더니 다리 난간에서 자살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단다. 누구는 죽겠다면서 난간에 매달려있는데, 자기 손에는 따려다 만 맥주캔이 들려있어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서강대교도 한강대교 중 투신자살율 수위를 다툰다. 왜 하필 마포대교와 서강대교일까. 두 다리를 건너면 여의도다. 여의도는 섬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여의도가 섬인란 걸 망각한다. 여의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과 증권가의 휘황한 불빛이 꺼지지 않는 맨하탄이다. 전경련 본부와 국회의사당이 있는 한국이 이룬 경제와 정치를 대변하고 축약해놓은 모델하우스다.
오랫동안 이웃사촌으로 가깝게 지내던 한 가족이 10여년 전 여의도로 이사를 갔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매년 불꽃놀이를 편하게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전 다시 우리 집 근처로 돌아왔다. 왜냐고 물었다. "거긴 진짜 섬이에요. 저도 들어가기 전엔 몰랐는데...부자도 많고 시설들도 좋은데 왠지 갇혀있는듯한... 어디서건 사람들 눈을 의식하게 되고... 식당에서도 헬스장에서도 거기 주민이면 거의 만났던, 알만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아닌데 뭔가 제가 자꾸 부족하고 작아보이기도... 여하튼 나오고 싶었어요"
나는 여의도에서 살아보질 못했다. 5년 채안되는 기간동안 거기서 직장생활을 해봤을 뿐이다. 그래서 내게 여의도는 SF영화의 떠다니는 차로 출퇴근하는 미래의 가상 업무도시같은 이미지다. 아마 비슷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거지도 빈민도 없고 전원주택하나 없지만 으리으리한 빌딩 숲과 어깨를 견주는 타워같은 아파트를 오가며 기계적인 출퇴근을 하게되는 트루먼 쇼의 촬영장소가 아닐까싶기도 하다. 영혼이 깃들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고 미소를 머금은 친절한 이웃들의 연기는 훌륭하며 부족함을 모르는 충족한 삶. 현대를 사는 우리는 늘 그 쪽을 바라보며 사는 지도 모른다.
마포대교가 자살률로 악명을 떨치게 된데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 증권가가 있는 동여의도 지역에 연결되어 있는 교량이기 때문에 주식에 실패한 개미투자자나, 투자상품 판매에 실패하여 배상책임을 물게 된 증권사 직원들이 여기로 많이 갔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든 동경하던 세계 그 섬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좌절하고 절망해서 그 경계지점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근거없는 생각이 들었다.
좌절과 절망 그리고 단절은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우울증은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주요한 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 국면에서 우울감을 줄일 수 있는 3가지를 제안했다. 뉴스 시청을 줄이고 특정 시간에만 업데이트하라는 조언이다. 그리고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긍정적이고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좋은 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유했다. 모르긴해도 뉴스시청에는 각종 매체 예컨대 SNS도 포함될 게 분명하다.
나는 거기에 더해 저렴하고 직면한 행복을 찾는 지혜를 권하고 싶다. 9000원짜리 갈치 조림, 책으로 만나는 저자와의 대화, 영화로 떠나는 세계여행,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맥주 한 캔이다. 그리고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실은 모두 여기 있다고 당신이 모를 뿐이라고 서로에게 말해주길 바란다. 강 건너편 불빛이 아름다워보일지는 모르지만 따뜻하지는 않다고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시 건너오는 중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