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재미있는 동네에 서식지를 마련한 게 분명하다. 주 6일을 근무하던 청년기를 보내고 토,일 이틀간의 휴일이 몸에 밴 지도 오래다. 이제는 주당 48시간이니 38시간이니 시간단위로 재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우리 삶이 연, 월. 주로 좁혀들고 세꼬시되더니 이제는 마침내 촌각을 다투는 지경에 이르렀나싶어 씁쓸하다. 고맙게도 인간의 탐욕이 부메랑되어 돌아오는 기후변화가 아직은 걸음이 더뎌 바람은 선선해지고 은행은 익어가니 감사기도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만 세상을 거꾸로 사는 지 주말 출근이 예사가 된 요즘. 설마 세상이 내 장단에 추임새를 넣는 건 아니겠지만 월요일이면 문닫는 점포가 많은 동네다보니 일요일이 더 활기찬 거리를 걷는다.
얼마 전부터 눈에 띄길래 예사로 보아넘겼었다. 설마했는데 가로수 베어 낸 자리에 무언가 싶은 것이 분명하다. "무럭무럭 자라는 중. 밟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고맙습니다" 띠를 두른 색연필 그림으로 짐작컨대 파아란 꽃을 품은 듯 하다. 고맙다는 인사는 지나는 사람들이 건네야 하지싶다. 몸을 일으켜 뒤돌아보니 꽃가게 앞이다. 한 발치 옆에서 작은 화분에 물을 주는 앞치마 두른 처자가 그리한 것도 싶은데 일부러 무슨 꽃인지 묻지 않았다. 지나다니면서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고 지켜볼 양이다. 꽃 모종 하나를 본 것만으로 일요일 늦은 출근의 이유는 충분하다.
고등학생때였는지 갓 대학을 들어갔을 때였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어머니 다니시던 절에 송광사 주지를 지내신 노승이 계셨다. 일흔을 훨씬 넘기셨는데 뵐 때마다 등신불이 생각나는 마른 몸에 항상 미소만 만개하신 분이셨다. 하도 철모르는 질문을 해대는 아이라 여기셔서인지 언제나 인자하게 받아주셨다. 그 질문과 대답이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시국을 정확히 짚으시고 예상하셨다. 이미 산책도 버거운 허약한 노구셨던데다 나들이도 하지않으시는데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문도 TV도 없는 절간에서 세상으로 열린 창이라고는 탁자에 놓인 구식 라디오밖에 없으셨는데 그나마 켜져 있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같지 않아서 몇해 전 건너편 남도에서 들리는 흉흉한 소문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고, 율 부리너 닮은 대통령의 사나운 눈빛이 형형하던 시절이었다. 어디서 드셨는지 불콰해서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뉴스에 나온 그 사람 욕이라도 하실때면 어머니는 그 말이 밖으로 새어나갈까봐 안방문 단속부터 하던 때였다.
그러고보면 어느 시대나 그런 눈 밝은 분들이 계셨고 그 분들의 세상을 읽는 지혜가 있어 아직도 세상은 썩어 문드러지지 않는 모양이다. 박경리 선생의 시집을 들춘다. 울쩍할 때도 기운이 빠지는 날에도 처진 어깨를 보듬는 당신의 손길을 느낀다. 십여년전 작고하셨으니 언제 쓰신 시인지 모르겠으나 2020년 오늘 쓴 시라 해도 어찌 이리 딱 들어맞을까. 가로수 베어 낸 자리에 꽃모종을 심은 꽃집 아가씨의 심정으로 커가는 꽃대에 희망을 키우며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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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 박경리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는 내게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문은 있었다 소문이란 본시 믿을 것이 못되고 호의적인 것도 아니어서 덕될 것이 없다 살기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그러거나 말거나 알 바 아니지만 놀고 먹는 사람들에게는 생광스런 소일거리
사실은 그것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 옛날에는 바람 따라 왔던 소문이 이제는 전파에 실리어 오고 양적으로나 속도로 보아 실로 엄청나다 뿐이겠는가 불 떈 굴뚝에 연기가 아니 나고 불 안 떈 굴뚝에 연기가 나는 마술같은 일들이 진행중이다
소위 자본주의 방식의 하나이며 정치가들 뒤질세라 편승하는 열차편 거대한 산업 어디로 가나 세상 구석구석 광고의 싸락눈 안 내리는 곳이 없다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 붓고 인력을 쏟아 붓고 시간을 쏟아 붓고 그것으로 먹고산다 그것으로 돈 벌어 부자가 된다 그것은 정치전략의 요체가 되었다
그것으로 먹고사는 함정에서 사람들은 빠져나갈 수가 없다 소비가 왕인 정경 합작의 괴물을 그 누가 퇴치할 것인가 천하무적의 폭군이 지나간 자리엔 영세민의 수만 늘어나고 얽히고설킨 이른 봄 연못을 맹꽁이 알처럼 파산자가 떠돈다
옛날에 내가 꽃을 심었을 때 옷 나오나 밥 나오나 하면서 어머니는 꽃모종을 뽑아 버리고 상추씨를 뿌렸다 그떈 내가 울었지만 옷 나오지도 않고 밥 나오지도 않는 좁쌀 알갱이 한톨 떨구어 주지 않는 광고는 그러면 꽃인가, 종이꽃이다 자본주의의 요염한 종이꽃이다 씨앗도 없는 단절과 절망의 종이꽃 ᆞᆞᆞᆞᆞᆞᆞᆞᆞᆞᆞᆞᆞᆞ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