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정확하게는 정전이라 오늘 저녁까지 가동을 안한다. 나는 15층에 산다. 한참 계단을 내려가고서야 마스크를 쓰지않은 걸 알았다. 몇 개월째건만 아직 몸에 붙지 않았다. 계단 층수 안내판을 봤다. 7층과 8층 정확히 중간지대 계단참이다. '어쩌면 하필 딱 중간일까?" 내 앞에는 두가지 선택이 놓여있다. 다시 집으로 올라가 마스크를 챙겨오거나 아니면 이대로 내려가 편의점에서 마스크를 사서 쓰는 것. 마스크는 얼마 하지 않는다. 아마 엘리베이터가 작동됐다면 다시 올라가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올라가 마스크를 챙겨 왔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운동삼아 오르락 내리락거리던 때도 있었는데 뭘... 8층 정도야' 계단을 오르면서는 이런 말을 되뇌었다. '아침 출발은 상쾌한 걸... 예기치 않은 가벼운 운동으로 시작하니... 역시 계단은 무릎에 충격을 주는 내리막보다 오르막이 훨씬 유익해.... 종아리가 아닌 허벅지 근육에다 힘을 실어야지 하나...둘...' 나는 이로써 마스크를 깜빡하고 나온 건망증을 탓하지 않게 됐고 당연히 짜증도 나지 않았다. 가볍게 층계를 올랐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 난 왜 매번 잘 잊을까' 스스로를 탓하고 그랬다면 계단을 오르면서도 시간은 더 길고, 몸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짧고, 피하고 싶은 자리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과 체감하는 시간과는 괴리가 있다. 한층 심오해진 현대 물리학과 심리학에서는 이런 시간의 문제를 증명해내고 있다.
선택은 매 순간 우리를 멈칫거리게 하고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다. 중요한 선택이라면 살아 온 배경, 축적된 경험, 각자의 인생관과 철학이 반영되기 마련이지만 그 영향이 미미하고 선택의 결과에 편차가 크지 않을 때는 평소 습관과 성격에 좌우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순간의 선택으로 적은 금액이나마 새로 마스크를 구입할 돈을 굳혔고,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깨웠으며, 덤으로 글을 쓸 소재를 얻었다. 더 확대 해석하자면 지구 어딘가로 방출될 폐기물 하나를 줄였고 지향하는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잠시 멈칫해서 생각을 정렬하고 긍정적으로 돌려놓을 시간을 버는 습관,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작은 가치라도 부여하고 신뢰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면서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생활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