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연휴 끄트머리에 와 있습니다. 무위도식은 이런 걸 말하는구나 싶을만큼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이틀정도를 보냈습니다.
결론은 아무쪼록 건강해야겠다였습니다. 혹시 아프기라도해서 며칠 누운 채로 보내야한다면 저는 욕창이 생기기도 전에 홧병부터 생기겠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평소 못해본 걸 했다는 위안을 삼는다면 눈여겨보지 않았던 영화들을 뒤적거려 본 겁니다. 아무리 B급이고 흥행에 실패했더라도 한편의 영화가 쉽사리 만들어질리 없으니 건질 것은 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압니다. 유명감독과 배우, 널리 알려진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에도 흥행에는 참패한 스파이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저로서는 뭐 그렇게 실망스럽지 않았는데 악질 고문기술자의 대사가 기억이 남습니다. "사람은 두가지에 의해 조종당해.... 바로 고통과 공포" 고통과 공포란 단어에 꽂혔습니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두 가지의 감정 고통과 공포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게 그가 비틀어진 성장과정에서 배운 교훈이라고 했습니다.
고통과 공포라는 감정을 떠올리면 테러를 떠올리게 됩니다. 좀더 멀리 내다본다면 핵이나 이상기후 그리고 환경파괴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테러가 확실히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으로 테러를 직면해 본 사람은 극히 드물겁니다. 다만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21세기를 살다보니 생동감있게 느낄 뿐입니다. 평범한 사람조차도 테러로 인한 참상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 데는 언론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되려 언론이 테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괴질로 세계인이 고통받고 공포에 떨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한국 상황은 아무리 비판적 시각으로 보더라도 다른 국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은데 끝없이 각종 통계를 왜곡하고 책임질 수 없는 주장으로 불안을 조장합니다. 수많은 언론 매체 중 한 둘은 긍정적인 보도를 할 만도 한데, 낙관적인 전망을 보여줄만도 한데 그렇지못한 걸 보면서 이렇게 서서히 고문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한마디로 참 못됐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바라는 바를 이루겠다는 심사가 괘씸하고 국민들을 업수히 여긴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받고 자존감이 낮은 성장과정을 보낸 사람이 고문기술자가 됐듯,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사주와 광고주에게 굽신거리는 일부 언론이 고문을 자행하는 것이 결코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걸러서 듣다보면, 잠시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면 지금의 우리는 분명히 예전보다 더 살만해졌고 비탄에 잠기기보다는 희망을 꿈꿔도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 언제 우리가 잘 사는 나라와 비교대상에 놓여진 적이 있었습니까. 외신에서 한국을 모범 사례로 들먹인 적이 있었으며 감히 미국과 일본을 대등한 위치에 두고 자잘못을 따진 적이 있었습니까. 언론이 지난 과거정권에 대해 이렇게 목소리 톤을 높이고 거침없이 비난했던 적을 저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진정 알아야할 것들도 가려주고 눈감더니 언제부터 이토록 집요하고 신랄했었던가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특정 사안과 사람에게만 몰두하는게 저는 더 의심스럽습니다. 신성불가침처럼 여겨지던 권력을 국민 눈높이에서 보고 나무라는 상황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진자들끼리 높은 사람들끼리 서로가 한 식구처럼 위해주고 보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오롯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안, 공포, 고통, 위험은 인간인 우리 안에 내재된 생존본능입니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운 본능을 과대평가하고 의도적으로 확장해서 목적한 바를 얻으려는 시도는 테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테러가 잠시는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지혜와 용기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끝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지나간 역사를 통해 수없이 증명한 위대한 대한국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