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인사

by 문성훈

저를 알고계신 분들 그리고 제가 잊고 지내는 분들까지 모든 분들이 한가위 보름달처럼 늙지 않고 나이드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중견기업 대표님이 계십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 경영일선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언젠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늙었구나 느껴질 때가 언제인지 아니?"
"아직 한창인데 무슨 말씀이세요. 언제인데요?"
"예전에는 듣기 거북한 직언을 들어도 '이 사람이 일에 열심이구나. 가까이 두고 귀담아들어야겠다' 했거든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그런 얘기를 듣는게 그리 편치않아. 그런 사람을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거든... '아... 이래서 늙은 회장들이나 높은 사람들이 주변에 아첨하는 사람들만 두게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되지. 내가 요즘 그래"

늙는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봅니다.

늙는다는 건 면역성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안의 저항력이 약해지니 사소한 오해에도 큰 상처를 받습니다. 쉽게 좌절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점점 내 편과 다른 편을 구분하고 내 의견과 다르면 터부시합니다.

늙는다는 건 굳어지는 걸 의미합니다. 말랑말랑했던 사고나 인식이 딱딱해지고 마침내 껍질처럼 단단해집니다.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니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를 못합니다. 완충력이 사라져 나와 다른 의견이나 주장은 쳐내기 일쑤입니다. 고집스럽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늙는다는 건 느려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활동력이 떨어져 안주하는데 현재에 만족하게 됩니다. 새로운 정보나 문물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귀찮아합니다. 호기심보다는 자족감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직접 찾아가고 확인하기보다 기존의 사고틀 속에서 모든 걸 파악하고 결정하려 듭니다. 그래서 실수가 잦아집니다.

또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너희는 늙어봤느냐... 나는 젊어봤느니..."
많은 의미를 함축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경륜과 지혜는 거저 가질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받드시 옳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대마다 젊은 날은 다른 시대였고 환경이었을테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인간사라는 게 몇십년 몇백년만에 천지개벽할 수준으로 바뀌지는 않았으니 삶의 정수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십만년 전 현생인류의 뇌와 지금 우리의 뇌는 용량도 기능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한 건 문명이고 문화이지 인간이고 삶 자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늙어봤느냐'란 말은 '나이 들어봤느냐' 혹은 '오래 살아봤느냐'로 바꾸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늙는 것과 나이를 먹는 것은 다릅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 둘 숫자는 더해가지만 생각은 젊어지고 행동과 몸가짐은 올바르고 사려깊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보다 시력은 떨어졌지만 눈동자는 더 맑아지고 주름은 더 깊이 패였지만 머금은 미소는 어린 아이의 그것과 같습니다.
그런 분들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늙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의 노화가 생명을 단축할 수는 있겠지만 생각을 가두고 마음을 무디게 하지는 않습니다. 죽는 날까지 사멸과 생성을 반복하지 않는 세포는 뇌세포가 유일하다지요. 아시다시피 심장은 멎는 순간까지 따뜻합니다.

모든 분들이 늙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위안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나이를 더해가듯 경륜과 지혜는 쌓고 늙는 것은 거부해야겠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들뜬 마음으로 이번 한가위를 맞으시고 젊은 날의 휴가처럼 느긋한 휴식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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