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그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문성훈

추운 겨울은 건너뛰고 봄이 왔으면 하는 바램에서일까.
아이는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않는지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원하는 그림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는 꽃이 이뻐서 찍고 나는 아이의 그런 모습이 이뻐서 찍었다.
몸을 수그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언제나처럼 세상은 시끄럽고 부산스럽다.
어른들이 지금보다 솔직하고 당당하면 좋겠다. 궁금하면 더 깊숙히 바짝 다가서는 겸손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성으로 하는 말처럼 쉬운게 없다. 그럴듯한 주장에 자신의 생각을 타서 제 것인양 내어놓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야기들로 세상은 또다시 북새통을 이룬다.

한 예능프로에서 60년이 넘게 운영한다는 냉면집을 방문했다.
개점한 지 60년이냐 아니면 사업자등록을 한 날부터 따져 48년이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다 주인장을 불러 물어보기로 했다. 3대째라고했고 60년이 넘었다고 했다.
내 귀를 붙든 건 일행중 한 코메디언이 진반농반으로 던진 말들이었다.
"봐요 60년 맞다니까요. 사장님 시계도 롤렉스잖아요..." 여주인은 민망한듯 등 뒤로 손을 숨겼다. 웃으며 던진 그의 다음 말이 압권이었다.
"자제분은 유학보내셨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흘려지나쳤을 이 장면이 뇌리에 박혔다. 우리는 늘 현실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엉겹결에 한 말에 진심이 담겨있는 경우가 더 많다.
외식업으로 성공한 식당주인의 악세서리는 가짜가 없다. 우리 가족이 가던 큰 식당의 남자 주인장도 금팔찌에 굵은 금반지, 금목걸이 그리고 금장시계를 차고서 카운터를 지킨다. 주인이 비우는 가게가 번성하는 법은 없다. 잘 될수록 쉴 수가 없었을테니 여태 이룬 부를 과시할 수 있는 방법도 제한적이고 딱히 그런 자리를 가질 기회도 적었을 것이다. 항상 머무는 가게에서 손님이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싶다. 나는 혼자서 그리 해석하고 단정짓고는 했다.
어쨌든 그 부는 선대부터였건 자신의 대에서 이룬 것이든 밤잠을 설치며 노력한 결과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들은 자녀를 유학보내는 경우가 많다. 젊은 날 자식에게 쏟을 정성을 고객에게 돌렸으니 이제라도 그 혜택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일 수도 있고 부는 물려주되 고생스러웠을 자신의 업종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적지않은 경우에 성공한 외식업계의 자녀들이 유학을 가거나 돈이 수월찮게 드는 예체능으로 빠지는 경향을 주변에서 자주 봤다.
하루매출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성공한 어느 식당의 사장은 아들을 미국에 유학보냈다. 다행히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는 않아서 유명 대학에서 MBA까지 마치고 귀국을 했다. 지금은 시내 중심가의 분점 카운터를 지킨다. 우수한 머리로 가늠해봤을 때 취업보다는 더 안정적이고 수익이 훨씬 낫다는 판단에서 선택한 길일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세태를 반영하고 업종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변화했음을 알게 해준다. 그 또한 외국에서 공부하고 MBA를 마치지 않았으면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렇듯 우리 눈높이의 이웃들이 부를 일군 모습은 유치할망정 솔직담백하고 돌아가기보다는 직진한다. 표현이 서투르지만 우직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애교스럽고 우리를 불쾌하게 하지는 않는다. 단선적이고 직설적이지만 적어도 복선을 깔거나 음습하지는 않다. 한 시대를 공유하는 서민들을 눈속임하거나 이용하는 법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히 그 성공을 축하하고 같이 기뻐할 아량을 가지게 된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금붙이나 유학이라는 고정된 인식을 심어줄 망정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최소한 그들은 바닥을 딛고 올라 선 사람들이다.

정작 우리가 경계를 게을리하면 안되고 유심히 들여다봐야할 성공과 대상은 따로 있다.
쉽사리 드러나지 않거나 그럴듯하게 윤색된 삶을 사는 사람들. 뭇 사람의 눈길이 머물기에는 안개 낀듯 묘연하고 손길이 닿기에는 너무 먼것같은 지상의 선계(仙界)를 노니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행태다.
그들은 어설픈 지식과 부족한 정보로는 공박하기 힘들만큼 지적이고 너그러워보인다. 그들이 쌓아올린 부와 명성은 지탄받지 않도록 체계적이고 교활하게 쌓아올린 것이다. 그들의 권력은 부정한 것임에도 오히려 법의 보호를 받을 정도로 막강하고 그 영향력은 오래 지속된다.

외국에서 유학한 교수들이나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대개 미국이나 일본 혹은 유럽의 어느 나라든 자신이 유학하거나 정착한 나라에 대해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고 우호적이다. 이해 안되는 바가 아니다. 나 또한 같은 과정을 밟았다면 그러했을지 모른다. 뜻한 바를 성취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들이 머물던 곳은 대개 그 나라에서 이성적이고 상위계층에 속한 사회였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설사 접시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생활을 했더라도 바라보는 지점과 최소한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지적이고 인격적으로 훌륭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 중 미국의 어두침침한 할렘가에서 축축한 바닥을 긁으며 생활한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아직 없다. 분명 있겠지만 정작 그런 사람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으며 그럴 겨를도 없이 지금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일 것이다.
나는 남의 나라 일에 관심을 넘어서서 애정을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의 말을 한번쯤은 걸러서 듣는다. 그 나라를 우리나라와 비교대상에 올려놓는 경우가 진심어린 충정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않은 경우도 있어서다. 내가 아는 그들의 자녀 상당수는 유학중이거나 최소한 강남의 좋은 학군에서 학교를 다닌다. 외국에 살면서 가정에서조차 한국어를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치, 사회, 경제, 법 여러 방면에서 한국을 비판할 때 사려깊게 말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부지불식간에 그 나라를 사대하고 있지는 아닌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자식들은 유학을 보내고 대치동에서 학원순례를 시키면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는 않을 정도의 양식은 갖춰야 한다.

몇 천만, 몇 억처럼 쉽사리 가늠할 수 있는 액수에는 민감한데 몇 천억, 조 단위로 넘어가면 자신과는 상관없는 얘기처럼 들린다.
식당이나 카페같은 가게를 10년이상 유지하는 확률은 채 20%가 되지 않는다. 서울 중심상권이라고 할 홍대주변에서 5년 이상 남아있는 가게를 조사했더니 약 10%였다. 그외 시내 중심가에서 20%가 넘는 경우를 보기는 했다. 그 중에서도 남은 여생을 보내는데 충족할만한 부를 쌓거나 자식에게 물려줄만큼 사업을 성공시킨 경우는 더 드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몇 백억단위를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랏돈으로 혹은 서민이 예금한 은행 돈으로 부를 챙긴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IMF로 한국 곤경에 처했을 때 나라의 부를 반출시키면서 이득을 취한 검은 머리 외국인들, 돈에 환장한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이 부당하게 챙긴 돈의 액수는 수천억, 수조원에 달한다. 서민의 세금으로 부실한 경영 적자를 메꾸고 부를 일군 기업들은 여전히 건승하고 있으며 그들과 결탁한 부정한 관료들의 뒷주머니에는 얼마가 쟁겨져 있을지 모른다.
불과 2~3년 사이 투자액의 서너배를 착복하고도 한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외국계 사모펀드는 조 단위의 배상액을 청구했다. 이미 그 펀드의 이익금 중 몇 천억은 원화로 환전됐다. 감히 서민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금액이다. 이 십여명에 달하는 검은머리 외국인의 정체는 UFO의 외계인처럼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될 확률이 높다.
드러나지 않는 이들에게 분개해야하고 눈이 충열되도록 지켜봐야하며 정작 소리높여 사회정의를 외쳐서 깨부숴야할 대상들이다. 잊고 지내기 쉽지만 묵과해서는 안되는 범죄고 반드시 처단해야할 사회악이다.

그런데 결코 쉽지만은 않다. 법과 원칙은 가지고 누리는 자들 편인 것만 같고 기울어진 운동장은 좀체 평형을 찾지 못한다.
배고픔에 빵 몇 조각을 훔친 죄를 몇 백억 횡령한 것보다 더 엄하게 묻고 부자와 권력자들은 병원과 독방을 오가며 고작 몇 년을 살다 나오거나 사면으로 풀려나는 걸 반복적으로 지켜본다.
한국 최고의 로펌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고 기생한다. 검찰의 칼날은 조직을 위해서 휘두를 때만 예리하다. 공평무사해야할 사법정의는 법대의 높이만큼이나 윗 공기에 익숙해 있다. 이것이 안타깝지만 내가 체감하는 냉엄한 현실이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고, 읽을 거리는 넘치는데 담거나 새길 글을 찾기란 어렵다.
남의 입을 빌어 뽐내기란 쉬운데 제 머릿속 생각을 풀어내는 건 난감하다. 남을 향한 손가락질은 자주하는데 정작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외면한다. 보여지는대로라면 당당한데 진짜 제 모습에 거리낌없기란 힘들다.
나는 결코 지나쳐서는 안되는 것들을 챙기는 박식한 사람들을 많아지길 바란다. 인기에 영합해서 주목받을 거리에 집착하고 알랑한 식견을 드러내는 유치한 자랑질은 그만뒀으면 좋겠다. 자신만이 이 세상 도덕과 상식의 기준인냥 남을 비난하며 잘난 체 하는 못났고 이기적인 지식인들이 자취를 감추기를 바란다.
차라리 그보다는 싱거운 유머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별스럽지 않지만 별스런 이웃들의 이야기가 소중하고 애뜻하다. 우리를 미소짖게 하고 잠시 쉬어가는 그루터기가 되어준다.

머리와 가슴은 되도록 멀리 두고 입으로는 고상을 떨면서 실은 천박하기 그지없는 위선이 더이상 용납되지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파트 화단의 꽃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그런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몸을 수그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제대로 봐야 아름다운 것들이 있고 오랫동안 지켜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이도 아는 것을 어른들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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