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골프에 심취해 있을 때 들었던 오래된 이야기다. 국내에 골프장을 가진 모회장이 친구들과 태국으로 골프여행을 떠났다. 스코어가 별로 만족스럽지않아 뜨듯미지근한 가운데 라운딩이 진행됐던 모양이다. 그러다 회장이 어느 홀에서 홀인원을 하게 됐다. 오랜 구력에도 불구하고 비록 해외이기는 했지만 생애 첫 홀인원을 한 그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친구들도 제 일처럼 축하해줬다. 이윽고 한껏 들뜬 회장이 마련한 거한 술자리로 이어졌는데.... 술이 몇 순배 돌고 다들 취기가 오르다보니 한 친구가 안했으면 좋았을 말을 하고야 말았다. "어이 O회장 그 홀인원 진짠줄 알지? 푸하하" 그랬다. 친구들이 작당을 하고서 그린이 잘 보이지않는 홀에서 미리 대기시켜둔 사람을 시켜 홀컵에 회장 공을 넣어두도록 시킨 것이었다. 한층 무르익었던 술판은 깨졌고 화가 오를대로 오른 회장은 남은 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혼자 귀국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자신의 골프장을 폐장시키고 파3홀에서 천 번 넘는 샷을 날렸다. 될듯 말듯 어둑해질 때까지 어깨가 빠져라 공을 날렸지만 홀인원은 할 수가 없었다. 이후 어찌됐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가끔 이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평생 해보지 못한 친구를 위해 가짜 홀인원 이벤트를 마련한 친구들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하지말았어야 할 어쩌면 영원히 묻어둬도 상관없을 얘기를 하고 만 친구의 섣부른 발설이 더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친구들의 장난(어쩌면 선심이었을지도 모를)을 웃음으로 넘기지 못한 회장의 옹졸한 처신을 탓해야 할까. 그런데 그 일로 인해 영문도 모르고 예약된 라운딩이 취소된 애꿎은 고객들은 어찌되었을까? 회장의 대책없는 화풀이로 하루 일감을 놓친 캐디들은....
홀인원 확률은 아마츄어의 경우 1/12,000 이라고 한다. 약 1/ 8,140,000 인 로또 1등 당첨보다는 680배 가량 높은 확률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고 갖기 어려운 행운이다.
일생에 단 한번도 어렵다는 홀인원을 세 번 기록한 선배를 안다. 그에게는 확률이 1/4,000 에 불과하지만 한번도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로또 당첨만큼이나 요원한 바램이다. 그와 여러번 라운딩을 한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는 언제나 신중하다. 누구보다 멀리보내거나 위기를 극복하는 쇼잉보다는 정확한 샷을 구사하는 플레이어다. 간혹 실수가 있을 때도 있지만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않고 곧 만회하는 스타일이다보니 스코어는 늘 일정하다. 항상 실수를 줄이고 전략에 의해 홀을 공략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로 임한다. 그리고 마침내 라운딩을 마쳤을 때에야 비로소 긴장을 풀고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이니 동반자들로서는 재미없는 사람이긴하다.
스포츠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룰이 적용되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고 생명력을 지닌다. 정치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불공정과 부정 혹은 우격다짐으로 이룬 성과가 영원히 지속되는 경우는 없다. 나는 검찰 개혁과 사법 정의가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우 어렵고 힘든 과제라는 것도 알만한 나이에 이르렀다. 분명한 것은 편법과 요행, 무리수로 이 난제를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극적인 반전도 없고 무료해 보일 망정 신중하고 차분하게 확률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에 맡기려 하지말고 실력부터 키우고 마음가짐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내가 지나간 옛 이야기를 떠올린 건 지금의 우리 사회 현상이, 검찰 개혁이 그리고 사법정의를 세우려는 과정이 홀인원만큼이나 지난(至難)해보여서다.
나는 여전히 지금 상황에서 누가 티박스에 올라가 있는지 회장은 누구이며 친구 역할을 누가 맡고 있는지 그리고 홀컵에 공을 넣어둔 자가 궁금하고 그 피해는 누가 보고있는지 자문해 보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