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라는 감옥

by 문성훈

15년 작정하고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쓰겠다는 사람을 안다.
15년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기간이 아니다. 우리시대의 문인들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을 평균 낸 것이다. 그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등단 후 수상까지 걸린 기간을 계산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전공 관련해서는 수권의 책을 냈다. 항상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다면서 제대로 된 책 한권을 15년안에 작정하고 쓰겠다고 했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60대 후반쯤 출간될 것이다. 용맹정진하는 선승이거나 바위산 수도원에 스스로를 가둔 수사처럼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렇다고 세상으로 열려진 창을 닫고 살지도 않으며 산 아래의 삶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려고 한다. 어떻게하면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난장에 끼어들지 않으려 할 뿐이다.
생업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노련한 곡예사의 줄타기처럼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춘다. 언제나 새벽 첫 차로 출근하고 하루도 거르지않고 일기를 쓰며 한시도 허튼 시간을 보내는 법이 없다.
긴 여정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처럼 묵묵히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지나치지 않는 그를 보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곤 한다.

지난 일주일간 집을 떠나있었다.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려해서도 시간적 공백이 생겨서도 아니다. 날은 차가운데 심장의 미열은 가시지않고 걸음은 더딘데 갈 길은 아득해서다.
산다는 게 쉽지가 않다. 살아갈수록 능란해질만도 한데 그렇질 못하다. 세월의 더께가 쌓이고 생채기가 옹이로 박혔으니 둥치는 실팍해지고 고통에 무뎌질만도 한데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상처받는다.
젊어서는 몰라서 그랬다지만 어느정도 세상을 알게되고 후회도 하는 지금에 와서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고 심장은 더워지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몇 권의 책을 챙겨갔지만 겨우 한 권을 읽었을 뿐이다. 잠시 세상과 떠나있겠노라했지만 손에 쥔 스마트폰 전원은 여전히 켜져있었다.

폐지압축공 한탸는 정육점에서 나온 핏물 밴 포장용품과 상자, 흠뻑 젖은 종이 주위로 파리떼가 사납게 앵앵대며 필사적으로 날아든다고 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그가 으깨버릴 정육점 종이 더미 사이에 끼어 그 중 몇 마리는 죽을테고 살아남은 검정파리들은 마침내 어딘가로 숨어버릴 것이다. 어찌되었던 그 순간만큼은 가시덤불처럼 빼빽히 집결한 녀석들을 양손으로 물리친다는 건 기다란 바늘이나 철사와 싸우는 기분이라는 그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하는 동안 머릿속이 이삿짐 풀어놓은 집같기도 했고, 깊고 어두운 동굴같기도 했다.
이방인으로 낯선 곳에 있어서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아니다. 타국에서도 불면증 한번 겪지않던 내가 아닌가.
원인은 머물고있던 어둡고 쾌쾌한 지하실의 냄새에 익숙해져 바깥세상의 신선한 바람 냄새를 맡지 못해서였다.
축축한 폐지더미를 집으로 삼은 하수구에서 살던 쥐가 마뜩잖았고 파리떼의 날개짓 소리를 떨쳐내지 못했다.

15년 동안 글을 숙성시키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15분마다 성명서같은 글을 생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육점 고기를 싸는 종이로나 쓸 책을 내기도 하지만 폐지더미에 박혀있던 귀한 책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오물에 앉은 파리나 하수구의 쥐에 불과한데도 나비인줄 착각하고 사자처럼 포효하는 사람들이 있다. 알량한 지식에 기대고 시류에 편승해 비행하니 어지럽다.
풀썩거린 먼지에 일제히 날아올라 시끄럽게 구는 파리떼도 있다.

심해를 잠수하는 고래도 수면에서 호흡하지 못하면 죽는다.
지하 폐지압축장같은 SNS감옥에만 갇혀있으면 질식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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