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일들이 수많은 곳에서 벌어진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종교 어느 한 영역에서 그 중 아주 협소한 분야라도 완벽히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경험과 상황을 축적해왔지만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특정한 사건 한가지를 두고서도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인 소수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해왔다. 요즘은 일반인조차 쉽게 접근하고 감각을 발휘하는 인테리어 분야라는 좁은 영역이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모세혈관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있고 그 한 가닥을 훑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근 30년을 매달렸지만 여전히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질문이 있다. " 무엇이 전문이신지요? 카페, 병원 아니면 오피스...?" 거기에 덧붙이는 말이 있다 . "저희 프로젝트와 유사한 것은 이전에 많이 해보셨나요?" 의사마다 전문 과목으로 세분화되어 있고 교수들도 전공마다 특화된 분야가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질문이 "외과 전문의신데 어느 부위를 주로 맡으시나요?" "수술은 많이 해보셨죠?"처럼 들린다. 그래서 두번째 질문에는 대답하려고 다양한 업종에 도전하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나마 두번째 질문은 어느 정도 극복했는데 새로운 시도와 기법이 끊임없이 나오니 자신할 수 없고 첫번째 질문은 여전히 대답하기 곤란해서 주저한다.
전시회라면 세계 명품브랜드부터 모터쇼까지 해봤고, 병원 역시 종합병원부터 의원급까지, 오피스는 사옥부터 사무실까지 주거시설은 신도시 마스터플랜부터 단독주택까지 두루 경험했지만 무엇이 전문인지도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그저 누구보다 더 파고들고 잘 해낼 자신이 있다는 정도만 피력할 뿐이다. 그런 자신감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애정, 체계화된 지식과 구조적인 작업틀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는 전시회라면 기획자의 의도, 병원이라면 진료과목마다의 특성, 오피스라면 업종의 성격, 주택이라면 가족 구성원의 연령과 생활패턴을 이해하는데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단적으로 주택의 인테리어를 맡게 되더라도 주방의 구조를 두고 여러 항목을 체크해야 한다. 주부의 동선을 고려할 때는 손길이 많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이 있는지 아니면 손님 초대가 많은지 그리고 주로 어떤 요리를 하는지, 오른손잡이인지 신장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아무리 주택 인테리어를 많이 진행했던 디자이너라도 실제 주방을 쓰게 될 주부의 경험과 노하우를 쫒아가지는 못한다. 병원을 하게되면 주로 수간호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가장 넓은 활동영역에서 많은 기자재를 다루며 의사와 환자의 중간지점에서 얘기해줄 수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간을 어떤 용도와 바램으로 쓰려고 하는가를 의뢰자만큼 잘 알 수 없다. 거기에 미처 고려하지 않은 사항들 예컨데 주어진 공간의 조건, 상태, 예산 그리고 디자인적인 측면을 반영해서 가장 효율적하고 아름다우며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다만 공간마다 다양한 용도와 여건 그리고 특성을 가졌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전혀 다뤄보지 않은 영역의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난감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의뢰자인 건축주의 요구와 의도를 이해하고 사용자나 소비자의 욕구를 추정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주어진 여건이나 법규를 감안한다는 것이다. 그외 필요한 기자재나 시설, 장치등은 또 다른 전문가가 존재하니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잃지않으면 된다.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는 있지만 실은 더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사람을(그 사람이 소비자인 경우도 많다.) 상대하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또다른 세부 전문가의 힘을 빌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전문가를 우대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무작정 추종하거나 만물박사로 착각하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전문가가 질 높은 교육과 오랜 연구나 경험을 통해 남다른 식견을 갖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 특화된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는 걸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다양한 관련정보를 수집하고 연구에 파고들고 경험이 쌓일 수록 식견은 깊어지지만 폭은 좁아진다. 잠드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연구실에서만 보내는 학자에게 주식 전망이나 시중 물가를 물어봐서는 안된다. 법전을 끼고 산더미처럼 쌓인 판례를 뒤져야 하는 판사에게 시중에 떠도는 연예스캔들이나 최신 과학에 대해 묻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고 수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데 저명한 의사에게 정치 사안이나 환경 보존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를 듣는 것은 넌센스다.
간혹 대중은 그들의 전문 영역에서의 높은 식견에 기대어 다른 분야에 관해서마저 그들의 견해에 턱 없는 권위를 부여하고 신뢰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더 나쁜 현상은 전문영역에 있는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이 다루던 분야에 대한 성과와 인지도에 도취된 나머지 스스로 세상 이치를 꿰뚫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다른 영역에서마저 단편적일지도 모르는 정보에 의존해 자신만이 바른 판단을 하고 있다고 자만한다. 그리고 대중에 설파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그로써 허명을 얻고자 한다. 본말이 전도되는 것은 그 순간부터다.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례와 사회 현상을 통해 전문 영역에 있어 저명하고 신뢰할만한 인물일 수록 다른 분야에는 문외한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나간 불행했던 시대의 화염속에 뛰어들 용기도 내지 못했으면서 치열하고 복잡한 현장에 몸을 담궈 본 적도 없으면서 함부로 역사와 현실을 평가하고 예단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본캐와 부캐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분야의 연구에 소홀해서는 안되는 교수가 변방의 북소리에 홀려 연구를 하지않겠다고 단언하는 것은 섣부르고 경박한 짓이다. 어쩌면 이들은 폭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두루 살피는 대중보다 편협하고 얕으며 경솔하다.
우리가 귀기울이고 신뢰할 만한 사람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묵직하고 행동은 경쾌할지언정 신중하다. 밖으로 향한 시선을 자신에게 돌릴 줄 알며 확신을 두려워하고 검증하기를 소홀히 하지않는 사람이다. 다 안다고 자만하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변하기보다는 모르는 부분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