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by 문성훈

마리우치 교수는 그의 과제를 다보지도 않고 욕설과 함께 내동댕이 치곤 했다. 그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몇시간씩 정성드려 제출한 것들이다.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어느날 그 70대의 버럭교수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처음으로 칭찬 비슷한 걸 한다.
"넌 더 잘할 수 있잖아? 요즘 왜 이래?"
그 한마디에 그의 심장은 다시 뛰었고 이후로도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인간적으로 대해준다. 그는 한국에서는 으레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포토샵이나 스케치가 그곳에서는 빈약한 아이디어를 포장하는 사기쯤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면 인사도 없이 매정하게 돌아서는 미국에서 그의 감사카드를 받은 노교수는 교직 20년만에 처음 받아보는 것이라며 놀란다.
<광고천재 이제석 / 이제석>에 나오는 미국 유학시절의 에피소드다.

<아홉살 인생 / 위기철>에 나오는 담임선생님은 대단히 신경질적이고 혐오스러운 모습이다. 우울한 표정으로 틈만 나면 자습을 시킨다. 그는 학생들보다는 학부모에게 더 관심이 많았고, 아이들에게는 짜증만 낼 뿐이다.
그가 못사는 산동네 아이들인 기종이와 여민이를 체벌하는 장면은 섬뜩하기조차하다. 교실은 싸늘하고 고요하며 평화롭기까지 하다. 그는 그저 조용히 시계를 풀고 반지를 뺀 주먹으로 아이의 뺨과 머리를 마구 후려갈 길 뿐이다.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는 초등학교 3학년짜리에겐 잔인한 매타작이 끝나면 그가 입을 연다. "네 자리로 들어가." 그는 태연하게 하던 일에 열중한다. 마치 성가신 파리 한 마리 탁 때려잡고 하던 일을 계속하듯이... 기종이는 그 선생님의 별명을 '월급기계'라고 지어준다.
그가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인 것은 우연한 여민이의 미술대회 입상으로 교장선생님 앞에 같이 불려갔을 때다. 교장선생님의 공치사에 그는 "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며 상사에게만 충실한 '월급기계'임을 증명한다. 그는 아이가 정작 무엇을 그렸는지 모른다. 지금 학교에서 촌지와 체벌은 사라졌다.

광주선생님은 친구의 은사이자 지금은 나의 선생님이 되셨다.
국어를 가르치시는데 오래전에 학원가로 나와 정년을 넘긴 연세임에도 현역이시다. 뵙게 되면 학생들 이야기 한 두 꼭지를 듣게 된다. 찾아온 학생에게는 시험부터 치르게 하고 유심히 지켜보신다고 했다. 그리고나서 어떤 학생에게는 매번 연필부터 깎게 하고, 또 다른 학생에게는 한자 한자 글씨 쓰는 것부터 시킨다고 하셨다. 언뜻 당장의 성적 향상이 목적인 학원에서 그리고 실제 시험에서는 무용한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선생님은 학생의 심리, 성격부터 파악하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지부터 가르치신다. 언젠가는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의 진로를 바꿔 준 얘기도 듣게 됐다. 학생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당신이 부모를 설득하셨다고 했다. 그 학생의 부모는 의사였고 형도 의대생이었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께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는 여건임에도 왜 일을 그만두지 못하시는지. 왜 아직도 학부모들이 선생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지 알것 같았다. 규모를 줄였다지만 그래도 버거우신지 최근에는 은퇴 얘기를 꺼내셨다.

이 시대의 '선생님'을 생각한다. 일반인조차도 선생으로 불리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대우한다는 의미이니 높고 무거우며 귀한 호칭이다.
나는 교수, 교사, 강사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타인을 가르치는 직업인이자 스승으로 불리우는 선생님을 말하려는 것이다. 일정한 지적 수준, 자격 요건만 갖추면 교사나 교수는 될 수있다. 선생님은 거기에 윤리, 사랑, 지혜같은 고귀한 가치들이 더해진 개념이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그래서 마리우치교수와 광주선생님은 스승인 선생님이다. 기종의 담임선생님은 교사라는 직업의 직장인에 불과하다. 학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없는데 지식과 정보 전달이라는 최소한의 의무 또한 충실히 이행했을리 만무하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방식의 연구나 논문쓰기는 도움이 안된다. 강의? 나 스스로 공허한데 강의만 다를 수는 없다. 나는 연구든 강의든 새롭게 정의하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미 40대 중반에 명문대학에서 테뉴어를 받은 교수이자 여러 편의 훌륭한 논문을 쓴 손꼽히는 연구자다. 그의 글 때문에 상념에 잠겼다. 호형호제하는 사이인지라 지근거리에서 지켜 본 지도 오래됐다. 하루의 몇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생활인으로서의 자세도 본받을만하지만 진정으로 학생을 위하는 교수자이자 치열하게 자신을 몰아부치는 학자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흘려듣질 못한다.

감사하게도 주변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다. 선배이자 형으로 그리고 친구와 동생으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이다.
한결같이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긴다든지 더 나은 교수법이나 새로운 연구주제에 골몰하는 것 등이다.
그들과 만나면 나는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의 고민을 쾌도난마로 풀어주는 싱겁고 유쾌한 사람이 된다. 내가 그나마 잘하고 그들보다 조금 나은 종목이라서다. 날로 드물어지고 힘들어하는 선생님들을 위로하는 나의 진심도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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