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by 문성훈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말을 듣고 싶을 때, 한참을 온 것 같은데 어디쯤에 와 있는 지 막막해질 때 그리고 혼자이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을 때
갑작스런 약속이라도 잡히길 바라고, 공연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고, 아직 내가 누군가의 시선 안에 머물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있다. 몇날 며칠을 벼르다 찾아간 식당인데 내 차례에서 재료가 다 소진됐다는 말을 듣게 되거나, 몇 년을 다니는 이발소를 찾았는데 하필 휴무일인 날 말이다. 단 한번도 휴무일이 바뀐 적도 없거니와 이미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워하지도 않은 나를 발견한다. 이제는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들지않는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놀라운 사실이다.

또 이런 날도 있다. 오래 전 약속도 아닌데, 딱히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는데 슬리퍼 끌고 마실 가듯 들렀다가 하루를 다 보내고 새벽이 되어서야 일어서는 날 말이다.
오전 11시 반 약속이었다. 교정에 들어선건 11시였는데 20여분 예정에 없던 산책을 했다. 분명 책이 대부분인 이삿짐을 날라주느라 이전에 들렀었는데 어느 건물인지를 몰라 헤매고 다녔다. 내가 길치라는 것을 모르는 주변사람은 이제 없다.

약속시간까지는 충분한 여유가 있으니 오르락 내리락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가다가 안내판이 보이면 잠깐 멈춰서서 내 위치를 파악했다.
서울 시내에 수많은 대학들이 생일케잌에 박힌 내 나이만큼의 초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게다가 분명 언덕이나 산이었음이 분명하니 지도상의 평면적인 거리와 위치는 눈 앞의 실사와 멀어도 한참 멀다.
북유럽 여행중에 우연히 들렀던 대학이 떠올랐다. 한적한 동네였는데 넓은 대학 캠퍼스 입구에 있던 외딴 섬 분교같은 교사 한동이 인상깊었다. 설립 당시에 있던 교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데 그곳에서도 강의가 이루어진다고 했었다. 갑자기 학교를 다니고 싶어졌었다.

이 대학 교수인 S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랑하는 동생이다. 언제나 날이 서 있긴 한데 넘치는 재기가 드물게보는 수재형 인간이다. 그의 연구실에서 커피 반잔쯤을 남겼을 때 친구 K가 왔다. 들고 있는 비닐 봉투가 한 보따리다. 나와 자주 가던 무교동의 북어국집에서 포장해 온 점심거리다.
식사를 하는 중에도 천변 공원을 따라 산책을 하면서도 그리고 벤치에서 잠시 쉬던 중에도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우리 셋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잠시 들렀다가 갔다.
이성복, 한강, 신형철, 김이듬, 김민정 작가가 그랬고 멀리서는 마콜 스콜세지, 세이모어 번스타인, 빔 벤더스 심지어는 칼 융과 비트켄슈타인, 세르반테스가 살아돌아오기도 했다. 가끔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프랜 리보위츠가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우리들 머리 속에서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빨리 되감기와 멈춤을 반복하며 상영되기도 했다.

밤이 이슥할 무렵 술을 못하는 K가 맥주 한 캔을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혼자서도 충분한데 사내 셋이서 동네 젊은 패거리처럼 몰려다니듯 편의점과 치킨집을 둘렀다 왔다.
이쯤되면 서로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 귀가가 많이 늦어질 것이다. 하기야 우리 셋은 이미 콘도에 틀어박혀 2박3일 동안을 이런 식으로 뜬 눈으로 보냈던 전력이 있던 터였다.

이만 일어서자고 할 때는 새벽 3시가 다 됐을 무렵이다. 택시를 기다리며 올려다보니 건물의 불은 모두 꺼졌다. 우리가 있던 S의 연구실만 불이 켜져 있다. S는 너무 늦어 그냥 연구실에서 자겠다고 했다.

한동안 글쓰기를 못했다. 안한게 아니라 못했다.
그럴 때는 레몬 착즙기에 눌러 짜듯 써야 할 때도 있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떤 글은 놓칠까봐 자다가 깨서도 쓰지만 또 어떤 글은 순전히 나만의 기록을 위해서도 쓴다. 이 글은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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