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아빠...정말 궁금해서 묻는건데.... 아빠는 언제 자?"
새벽3시가 다 되어가는데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려던 딸이 내게로 와서 물었다. 아마도 좀전에 했던 꾸중 섞인 잔소리가 내심 걸렸나 보다.
근 1년 동안 이어진 온라인 수업으로 장대같은 대학생 두 명이 집안에서 뒹군다.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밤낮이 바뀐 아이들의 생활 패턴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을 하는지 새벽 3~4시를 넘기기 일쑤고 동이 터오는 무렵에 자서 다음날 오후께 일어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 두번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작심하고 정색하며 야단을 쳤다.
"할 게 있으면 차라리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
"밤에 더 잘되는데...."
"그러면 잠을 줄이든지. 너희들 생활패턴이 다 무너졌잖아. 어떻게 다시 정상적인 학교 생활 하려고 해"
"네...."
내가 유달리 잠이 적은 편이긴 하다. 그러니 아이들이 눈 뜨고 있는 동안에는 아빠가 잠들어 있는 걸 볼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쭉 봐 온 모습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온 식구가 집안에서 복작거리다 보니 서로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드러난다.
딸아이까지 제 방으로 들어가고 여느 때처럼 혼자 깨어있는데 문득 '내가 잘 한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주행성이다. 그렇다고 배웠고 당연하게 여기며 산다. 그런데 나조차도 밤에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글을 쓴다. 책도 밤에 읽을 때 더 집중이 잘된다. 다만 출근을 위해서 잠을 자 둘 뿐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ㅇ교수는 철저한 아침형 인간이다. 하루도 어김없이 새벽 5시30분 첫 차로 출근한다. 11시 전에 반드시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새벽 시간을 그처럼 밀도있게 쓰는 사람을 별로 보지못했다. 책을 읽고 강의자료를 준비하고 그 시간에 어제 일기를 쓴다.
나는 야행성의 저녁형 인간이다. 밤이 주는 안락함을 충분하고 느긋하게 즐긴다. 그 고요하고 적막한 시간이 고맙다. 소름 돋듯 감각이 바늘처럼 서고, 타이핑 속도가 상념을 쫒아가지 못하는 시간이어서다.
저녁형 인간이 게으르다는 통념은 이미 과학이 깨뜨렸다. 그런데도 나는 성장호르몬이 나온다는 11시전에 재워야 할 어린 아이들도 아닌 다 큰 자식에게 아침형 인간이 되길 강요하고 있는 고지식한 아빠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주로 낮에 활동한다. 밤은 자야 할 시간이다. 어떤 동물은 야행성이다. 천적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할 약한 개체들은 대개 야행성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천척은 이제 없다. 인간이 천적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이 당당히 낮에 활보하게 된 것은 아닐까?
아주 오래전 약하디 약한 몸뚱아리 하나로 살아 남아야 했던 인류의 조상들은 야행성이었을지도 모른다. 큰 뇌로 도구를 만들고 불을 쓰게 되는 먹이사슬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밤눈은 어두워지고 근육은 쪼그라드는 진화를 겪었을 수도 있다.
하루의 절반은 밤이다. 문득 어둠을 켜서 밤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이라는 장막을 걷어야 어둠이 켜지고 세상이 열린다. 숨죽이고 잠들었던 낮을 어둠이 깨우는 것이다.
우주의 98%는 어둠에 싸여있다고 했다 .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은 극히 미소하다. 그러니 우주라는 무대에서는 어둠이 주연이고, 빛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인간만이 이런 자연법칙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 지동설을 철석같이 믿었던 인간이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잔소리는 이만 관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