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웨이(Sideways. 2004)

by 문성훈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고 쓰여 있다더니
나 역시 우물쭈물, 우왕좌왕 하다 언듯 적지않은 나이를 먹고 말았다.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며칠 전. 폭설이 내리던 날 무슨 마음이 동해서였는지 영화 <러브 스토리>와 <러브레터>를 봤다.
아직 심장은 말랑하다는 진단을 내렸는데 눈물이 많아진 건 아쉬웠다. 주책 맞다는 건 늙어간다는 부인할 수 없는 생체 신호다.
나이에 걸맞는 영화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있다면 지금의 내게는 앞의 두 영화보다 <사이드웨이>가 적격이었다.

잔잔하면서 깊고, 묵직한 걸 경쾌하게 만들기란 힘들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적당히 익었고 버겁지 않을 만큼의 무게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친구가 등장하고 한번 쯤은 경험했음직한 사건이 유머와 페이소스로 버무려져 있다.
뒤돌아보면 꽤 많이 걸었는데 아직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면 이 영화는 잠시 쉬어 갈 나무 그루터기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이 영화를 권했던 동생은 와인에 대해서 50%정도 알려줄 거라고 했는데 와인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나로서는 역시 <신의 물방울>만한 교재가 없다.
동생이 왜 나를 피노 누아(Pinot Noir)같다고 했는지, 내가 좋아할 영화라고 단정지어 말했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마일즈가 그토록 아끼던 1961년산 샤토 슈발블랑 (Chateau Cheval Blanc)가 실은 그가 경멸하던 메를로(Merlot)를 섞은 와인이라는 사실에서 보듯 나 역시 순수한 피노 누아(Pinot Noir)는 아니다. (마일즈는 “If anyone orders Merlot, I’m leaving, I am not drinking any f* Merlot!”라고 외친다.)
누구의 인생이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언제 그 귀한 와인을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안주삼아 숨겨가며 마셔야 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각본이 탄탄하다 했더니 렉스 피켓 (Rex Pickett)의 소설 ‘사이드웨이’의 원작이다. 그가 이혼, 파산, 작가로서의 실패등의 자전적 내용을 담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배팅한 작품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마일즈와 마야가 나누던 이 대사에 담겨 있지 않나 싶다.
마일즈가 묻는다. “왜 피노를 좋아하죠?"

"글쎄요... 재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껍질이 얇아 기온에 민감하고 금방 익어 버리죠.
카베르네는 튼튼한 품종이라 어디서나 뿌리를 내리고 방치해도 잘 자라지만 피노는 끊임없이 보살펴줘야 하죠. 토양을 많이 타는 아주 까다로운 품종이에요. 피노를 재배하려면 인내와 애정을 쏟아야만 하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줘야만 포도알이 굵어지고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줘요. 물론 카베르네도 그 나름대로 강렬하지만 피노와 비교했을 때 왠지 평범하게 느껴지죠."

이번에는 마일즈가 마야에게 묻는다. “당신은요?”

"와인을 마시면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죠….. 전 와인이 겪었을 삶을 생각하곤 해요. 와인은 살아있어요. 포도가 자라던 해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상상하곤 해요. 햇볕은 어땠을지, 비는 내렸는지... 포도를 기르고 수확했을 사람들 생각도 해보죠. 오래된 와인이라면 지금쯤 몇 명이나 저 세상 사람일지...
또 와인은 변화무쌍해요. 병을 따는 시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잖아요. 와인은 살아있으니까요. 끊임없이 발전하며 변화를 거듭하죠. 당신의 61년산 슈발 블랑처럼 절정을 찍고는 피할 수 없는 쇠퇴에 접어들어요. 그리고 맛도 정말 끝내주고요."

두 사람의 피노 누아적 사랑이 어떻게 익어갈 지는 모르겠다.
다만 와인과 사랑이 그러하듯 인생도 절정을 찍고 난 후 쇠퇴기에 접어들 즈음에 오묘한 향과 최고의 맛을 낼 거라는 위안이 마일즈의 손에 포갠 마야의 온기처럼 퍼져서 행복했다.
사이드웨이는 옆길로 새라는 말이 아니다. 와인을 보관할 때 눕히는 것처럼 힘들고 지쳤다면 잠시 쉬어가라는 다정한 권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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