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으로

by 문성훈

나는 아직 엄마라고 부른다. 아니 영원히 그렇게 부를 것이다. 한동안 쓰던 할매라는 애칭은 거둬들였다. 정말 할머니가 되셨다는 걸 느끼면서부터 쓰기 싫어졌다.

며칠동안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 전화를 드렸다. 백신을 맞는 게 좋을지 아니면 좀 더 지켜봐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마냥 늦추기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다.
연세 때문이면 걱정이 덜 했을텐데 어머니는 3년전 폐암수술로 폐의 일부를 절단하셨다. 어느 만큼인지는 알지 못한다. 솔직히는 잘려 나간만큼 수명이 짧아진 것은 아닐까 겁이 나서 묻지도 않았다. 그런데 하필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장기가 폐라고 하니 고민이 안될 수 없었다.

어머니도 나름 생각한 바가 있으셨다. 이미 맞으시겠다고 신청을 하셨단다. 오랜 연금생활을 더 지속하는 것도 못할 짓이고 무엇보다 옮을까 전전긍긍하느니 차라리 백신을 맞는 편이 낫겠다고 하셨다. 의사인 친구에게 한번 물어볼까 여쭤보니 말리신다. 그렇지않아도 동생에게 당신의 담당의사 소견을 받아보라고 이르셨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의사 역시 전공분야가 아니면 일반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을테고 예전에 없던 질병에 무애 그리 해박하겠냐고 하신다. 게다가 아무리 의사지만 당신의 경험상 이런 생명이 오가는 문제는 확답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게 그들로서는 당연할 거라고 하신다. 그러니 당신의 성정상 맞으실테고 담당의의 소견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셨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생각을 정할 수 없어 여쭤 본 게 됐고 어머니의 결정을 통보받은 셈이 돼버렸다.

고종사촌형의 아들 결혼식에 관한 얘기로 마무리를 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나니 왠지 헛헛한게 살짝 한기가 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당신마저 돌아가시면 나는 천상 고아가 되는구나 싶기도 하고, 매일 뵙지는 못해도 이렇게 전화하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니 무서워진다. 부모는 자식이 노인이어도 애취급을 한다더니 자식 역시 부모 앞에서는 어린애가 되고만다.

언제부턴가 지인들의 부친상 모친상 그리고 형제와 친구들의 자식 결혼 소식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선배들의 이른 부고가 날아오기도 한다. 언뜻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 다음은 동년배의 부고에도 덤덤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왠지 어머니의 부재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일어나지 않을 일인 것만 같다. 두려움과 소망이 뒤엉켜 현실감각이 무뎌진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있어 엄마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큰 바위 같은 존재다.
아래로 동생 둘만 있어 일찌감치 어른 행세를 했지만 아직까지 어리광을 피우고 젖을 떼지 못한 것은 정작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자식중에 젖만 때면 울던 게 나였다고 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면 어두운 방구석 홀로 버려진 아이처럼 두려워지고, 가위에 눌린 것처럼 한동안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아직 덜 자란 것인지 모자라고 부족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엄마와 죽음을 한번에 떠올리는 것조차 싫다.
내가 덜자라고 부족한 아이여서 엄마가 곁에 계실 수만 있다면 영원힐 철부지로 남고 싶다.

20210320_140309.jpg
이전 10화몰입의 후유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