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이는 미하이 칙센트가 오랜 연구 끝에 발견한 사실이다.
그는 삶을 고양시키고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단순히 행복하다는 불확실한 감정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라고 말한다.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반면 몰입해 있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행복감을 느낄 겨를이 없다고도 했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정신을 끌어 올려 충만한 삶으로 이끄는 몰입은 때로 고통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도달하는 길은 즐겁고 보람된 경험임에는 분명하다.
최근 선거를 앞둔 일부 사람들은 과몰입된 상태거나 RPM이 치솟아 엔진에서 연기가 날 지경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몰입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언뜻 비슷해보이는 ‘집중’이나 ‘관심’과는 다른 ‘몰입’은 우리를 경이로운 경험과 찰라의 황홀경으로 이끈다. 그런 점에서 마약이나 육체적 쾌락에서 맛보지 못하는 개운함과 보람을 안겨준다.
우연히 오지않는 행복이라고 했으니 직접 찾아나섰다. 어머니는 몰입대신에 ‘넋이 나갔다’라는 표현을 쓰신다. 한동안 꽤 오랫동안 이 두 녀석을 보지 못했다. 괘씸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큰아빠와 눈에 넣어도 녹아버릴 듯한 이 꼬맹이들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하도 내가 애닯아하니까 어머니와 제수씨의 특사로 면회의 꿈을 이뤘다. 면회장소는 어머니 집이다.
그야 말로 몰입이다. 12월에 태어나 열흘 차이로 억울한 5살이 된 우리 집안의 최고 막내 이놈은 실하다. 뼈부터가 야들야들한 제 누나를 안아들 때보다 힘겹다. 벌써 나와 두번 결혼한 전혀 안미운 6살 조카딸은 요즘 발레를 배운다. 턴도 하고 나비보다는 참새처럼 깡충대며 발레동작을 선보인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는 막내는 시샘이 보통 아니다. 따라해야 하고 주목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큰아빠. 나 봐요” “큰아빠 이건 뭐예요?” 혼을 빼놓는다. 한자까지 땠다고 어머니는 천재까지는 몰라도 준재는 넉넉히 되고 남는다고 하신다. 늘그막에 로또를 긁고계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머니와 나는 어디까지나 둘째인 조카딸이 1순위다. 내 무르팍을 점령하고 내놓지않는 동생을 탓하지 않는다. 제 발레동작을 빠짐없이 따라하고 뭐든 먼저하고 가지고 싶어하는 동생한테 양보한다.
“누나가 해줄께~” “누나가 읽어줄께” 처음 해보는 누나 노릇이 제법이다. 누나 목말을 태워주니 녀석도 해달란다. 한번 재미를 붙이니 먹이 물고 온 어미 본 제비새끼처럼 팔을 벌리고 조른다. 말이 되어서 제 누나를 등에 태우니 털커덕 제 놈도 탄다. 그렇게 수월찮은 무게의 두 녀석을 태우고 거실과 방안을 기어다녔다.
얼마동안 두 녀석과 엉겨 놀았을까. 잠깐 쉬는데 졸음이 온다. 연신 뭐라뭐라 떠드는데 내 대답은 웅얼거리고 정신은 몽롱하니 눈꺼풀이 무겁다.
마침내 구세주처럼 동생이 애들을 데리러 왔다. 어르신들이 명절에 찾아온 자식들을 두고 왜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다.
녀석들이 떠나고 삭신이 쑤셔 끙끙댔다. 어머니가 타박을 하신다. “아이고 니도 환갑을 바라보는데 뭐하는 짓이고… 큰아빠가 돼가지고 넋이 나가서는 쯧쯧쯧…. 내 그럴 줄 알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왜 몰입이 고통을 가져오기도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