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풍경

by 문성훈

아내가 나즈막히 노래를 부릅니다. 딸은 거실 쇼파에서, 아들은 제 방에서 잠들었습니다.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려나 봅니다.
차례와 아침식사 뒷정리까지 마친 느긋한 오전입니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는 앞치마도 벗지않은 채 기타를 들고와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내가 노래 불러줄께~"
간만에 포식을 해서인지 저도 식곤증이 밀려오려고 합니다. "커피 마실거야? 나는 마셔야겠어. 잠 온다."
"좋지"

정월 초하루인데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느라 어김없이 늦잠에 취한 아이들을 깨우고 차례를 지냈습니다.
전례없이 단촐한 우리 식구 네 명이서 보내는 설입니다. 아내가 차례상에 올릴 술이 없다고 술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냥. 커피 올릴까? 봉지커피 있어?"
"아니. 믹스커피는 없는데..."
"그래? 그럼 사올께"
선친은 생전에 봉지커피를 좋아하셨습니다. 원두커피 드시는 건 못뵈었었습니다. 편의점까지 간 김에 정종을 사왔습니다.

오랫동안 고향 큰집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켜봤지만 제가 제주가 되고나니 순서도 방법도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7년 전.아버지 첫 기제사를 준비하며 제사와 관련된 공부를 나름 했습니다. 결론은 제 방식대로 지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와 차례의 의미, 고인을 기리는 마음만 그대로 간직하겠다는 것이지요. 형식이나 예법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우선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자 가득한 병풍 대신 나비와 꽃이 가득한 세련된 파티션을 세우고 순서도 간소화했습니다. 가끔은 커피도 올리고 아내가 구운 케잌, 마른 수리매도 올립니다. 모두 생전에 좋아하시던 것들입니다.
'오셨을거다.' '드시고계시겠지' 작별인사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아들, 딸, 며느리 한번에 절을 합니다.

올 설날에는 막내동생네가 오지 못했습니다. 꼬맹이들 세배를 받지못해 아쉽습니다. 대신 제주씨가 동영상을 찍어 가족톡방에 올려줬습니다. 꼬맹이 셋이서 큰아빠, 큰엄마, 고모부, 고모, 형과 누나들... 하다하다 망고한테도 세배를 합니다. 동생과 제수씨 웃음소리가 섞입니다. 절을 몇 번이나 하는지...
보고싶지만 건강이 우선이고 서로를 위해 지켜야 합니다. 막내동생도 제사를 모십니다. 동생은 딸만 셋인 집의 맏사위입니다. 동생이 돌아가신 장인 제사를 모십니다.

며칠전에 어머니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이번 설은 오도가도 하지말고 지내지말자"
"제수씨하고 애들만 안오면 되지않을까?"
"어데. 바이러스가 사람 가린다카드나? 얼라들이 지 애비하고 맨날 뒹구는데 바깥 출입도 삼가해야지. 니 마음은 아는데 부모가 자식한테 차례 지내지마라카는게 쉽귿나"
"알겠습니다. 생각 좀 해볼게요"
그래서 아내에게 동생네는 못오게하고 우리 식구들만 단촐하게 지내자고 했는데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난 후 아내가 제게 한 얘기는 다릅니다.
"여보. 어머니 말씀은 차례상도 차리지 말고 지나가자는 뜻이셨대"
"그래?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준비해서 차례 모시는게 내가 마음 편할 것 같애."
"알았어."
어제 한나절. 저는 잘 뒤집었네 모양이 잘 안나왔네 야단맞으면서 전 몇 가지와 생선를 부쳤고 아내는 제가 좋아하는 탕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쳤습니다.
차례를 올리고 음복을 하는데 아들이 묻습니다.
"아빠. 이런 한국 문화가 앞으로도 계속 남아있을까요?"
"글쎄... 니 생각엔 어떨것 같냐?"
"안남을것 같은데... "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아빠생각에는 크리스마스 , 사월초파일보다 더 중요할 것 같다. 자신이 누군지, 어떻게 있게 됐는지도 모르면서 한번도 못봰 그런 분들을 기리는 게 맞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뭐 서양에도 떙스기빙데이 같은 거 있잖아"
"그건 우리 추석이랑 비슷한 거잖아? " 딸이 묻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근데 아빠 얘기는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서 서로의 안부도 묻고, 새해에는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그런 날로 생각하면 되지않을까 하는거지. 이것 봐 차린 음식도 결국에는 우리가 다 먹잖아."
"네"

20210212_150013.jpg
이전 11화엄마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