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 가족여행 가신다면서요?"
"아이구 코로나다 뭐다... 바쁘기도 하고... 안간다고 했는데 애들이 이미 예약해놨다고 하네요"
"자제분들이 기특하네요. 가셔야죠.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언제 떠나세요?"
"이번 금요일 가서 일요일 옵니다."
"어디로요?"
"여수라네요."
“좋으시겠어요.”
“허허 뭐 그렇죠”
여간해선 방해될까봐 작업자에게 말을 붙이지 않는데 들은 바가 있어 말을 건넸다. 목공 김씨는 이 현장에서 처음 뵌 분이다. 올해 예순 넷이시다. 다른 목공 작업자들이 모두'형님'이라 부르는 걸 봐서는 가장 연장자다. 교실 맨 뒷줄에서 딴 짓해도 모를 것 같지만 단상 위 선생님은 귀신같이 안다. 어언 30년이 다 되어가니 현장을 한바퀴만 돌아도 작업상황과 작업자의 숙련도가 눈에 들어온다. 하루 이틀정도 같이 있다보면 그들의 개략적인 성품까지도 파악된다.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작은 집단 안에서도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인간 군상, 있음직한 일들이 일어난다.
친절하거나 불손한 성격, 성실하거나 게으른 사람, 명석하거나 아둔한 일처리 한마디로 인간시장이 열린다. 대개 일로써 만난 사람들끼리는 솜씨로 능력을 가늠하지만 그 능력이란 게 결국은 인품에서 비롯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가령 김씨와 같이 작업하는 박씨와 최씨는 솜씨도 솜씨려니와 게으른데 쌍둥이처럼 붙어다닌다. 그들이 김씨를 부르는 경우는 두가지다. "형님. 커피 한잔(혹은 식사)하고 하시죠" "형님. 그만하고 가시죠" 그들은 어김없이 점심시간 시작 15분쯤 전에, 작업 마치기 30분전 부터 연장을 챙겨 퇴근 준비를 서두른다. 10분이면 마무리될 일도 남겨놓고 손을 뗀다.
김씨는 "응. 이거 좀 마저 하고..." 김씨의 대답에 그들은"형님. 갑시다. 가자니까요" 채근한다. 그들 역시 아직 일과시간이 조금 남았다는 걸 안다. 마지막까지 작업에 열중하는 동료의 모습이 내심 불편해서다. 같은 인건비를 받으면서 한 사람은 두 사람 몫을 하고 두 사람은 한 사람 몫도 못해낸다. 시킨 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이 있고 좀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이 있다. 김씨는 묵묵히 성실하면서도 지시받은 일처리에 자신의 경륜과 기술을 보태는 사람이다.
모두가 퇴근하고 나는 현장소장에게 넌지시 일러둔다.
"ㅇ반장(목공팀 작업반장)한테 얘기해서 앞으로 우리 현장에 저 두 사람은 빼라."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잖아도 제가..."
공사현장에는 나름의 불문율이 있다. 내가 회사 대표라도 현장소장을 통하지않고 작업자에게 직접 지시를 하지 않는다. 현장소장 역시 시급한 사항이 아니라면 각 공정의 반장를 통해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나는 현장에 가면 말없이 공정마다의 작업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한번에 정리해서 현장소장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현장소장은 반장들을 통해 작업의 세부사항을 협의하고 반장들이 작업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밟는다. 기한이 정해진 프로젝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작업하는 경우가 대개 그러하듯 전공정을 총괄하는 일만큼이나 감독하고 관리하는 일 그리고 실행하는 일이 모두 중요하다.
대학에 복학했던 무렵이었다.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 있었다. 우연히 옆 좌석의 대화를 듣게 됐다. “저기 저 빌딩 보이지? 저거 내가 세운 거야” 한 사내가 좀더 젊은 사내에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큰 빌딩을 가리키며 자랑을 했다.
건물주처럼은 보이지않았다. ‘설계를 했다는 말일까? 아니면 시공? 그것도 아니면 벽돌을 날랐다는 의미일까? 어쨌든 저 빌딩을 짓는데 일조를 했다는 뜻이겠지. 누구나 빌딩을 올리는데 관여한 사람들은 모두가 저렇게 말할 수 있겠구나’
문득 나 역시 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수년에 걸쳐 지어졌을 건축공사의 작은 한 부분을 맡게 될 것이고 이런 얘기를 예사로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좀더 빨리 결과를 볼 수 있고 내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으면 하는 바램을 그때 가졌었던 것 같다. 알게모르게 그 바램은 후일 인테리어로 내 진로를 정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내게도 그처럼 자신만만하고 치기어린 젊은 날이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한 건물을 리모델링 하는 중이다.
나는 건축주와 협의하고 예산을 정했으며 디자인과 설계를 했다. 그렇다면 나의 역할이 지대해서 이건 오롯이 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못 한번 박지 않았고 붓을 들어보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의 구상을 옮겨 준 이들은 따로 있다. 역할이 다를 뿐이다. 이 프로젝트에 관여한 모든 이들이 건물을 올렸다고 말할 요건은 갖춘 셈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이 맡은 역할이 크건 작건 어떤 태도와 애정를 가지고 임했느냐에 따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일용직 용역으로 짧은 기간동안 참여했더라도 ‘나의 비질로 다른 작업자들의 순조로운 공사진행을 돕는다.’거나 ‘내가 놓는 벽돌 한 장이라도 비뚤게 해서 많은 사람의 수고로움이 빛을 잃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품는 사람이라면 ‘이 건물을 내가 만들었다."고 말할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그저 밥벌이를 위해 정해진 시간동안 해야만돼서 늘 해오던대로, 내가 맡은 부분은 전 공정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라서 완성도나 가치에 대한 관심은 없는 사람은 자격미달인 것이다.
나는 아무리 작은 현장에서도 이렇게 둘로 갈리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만 인품과 태도는 공사를 구분할 수 없다는 신념 비슷한 걸 가지게 됐다. 자식은 어버이의 등짝을 보고 자란다.
내가 작업 현장에서 높이 쳐주는 목공 박반장도, 전기 김사장도 그리고 목공 김씨도 평소의 생활이 건전하고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냈다. 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아직껏 예외는 없었다.
작업자들 모두에게 아이스커피를 돌렸다. 2층에서 작업하는 김씨의 커피는 내가 가져갔다.
“자제분들은 어떻게 두셨어요? 나이는요?”
“아들, 딸 하나씩인데 서른 여섯, 서른셋입니다. 큰 애가 아들인데 작년에 장가보냈죠. 다들 취직해서 제 몫은 하는데 딸아이는 시집 갈 생각을 안하네요.”
"며느님도 보셨군요. 이제 다 키워놓으셨으니 큰 걱정은 덜으셨습니다. 효심도 깊고… 자제분들이 이제 그만 쉬시라고는 안합니까?"
"하죠. 늘 하는데 아이고 뭐 지네들만 잘 살면 됐죠. 저야 아직 일할만 한데다 걔네들보다야 수입이 낫죠… 애들이 취직하고나서부터는 아빠 엄마 쓰시라고 매달 돈을 부쳐주더구요. 그런데 제가 못하게 했어요. 아직 애비 정정하다고... 지들 앞날 챙겨야죠."
“왜 그러셨어요. 그만큼 키워줬으면 받으셔야죠. 주지 말라고 하지 마세요”
“하하 그런데 제가 더 득을 봤습니다. 하지말라니까 몰랐는데 우리 부부 앞으로 연금보험을 들어놨더라구요. 지들이 보내던 돈의 2배던걸요. 제가 더 이득인거죠. 껄껄껄”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의 손길은 멈출 줄 모른다.
“그러셨군요. 정말 훌륭하게 키우셨네요. 키운 보람이 있으십니다. 요즘 그런 젊은이들 흔치않습니다. 아버지가 그동안 고생한 것도 알고…. 두 분이 훌륭하셔서 자녀들이 보고 배운 걸 겁니다. 제 아이들도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제가 부족해서 그렇게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잠시라도 일 떠나서 맘 편히 푹 쉬다 오세요. 월요일 뵙겠습니다. 여행 다녀오신 얘기도 제가 꼭 들어야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허허허 예~ 그러지요."
나보다 연세 많으신 분께 이런 말이 합당할 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진심이고 특급칭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