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사람이 있다. 감동을 잘하는 사람이다. 크건 작건,위대한 인물이건 이웃집 사람이건 대상에 상관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사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주변에 두고 있다는 것 또한 축복이다.
내게도 떠오르는 몇 사람이 있다. 함께 살아가는 아내와 좋아하는 동생이 그렇다. 동생은 눈동자도 체구도 다람쥐를 닮았다. 만날 때마다 도토리와 알밤을 줏어 모아뒀다가 볼 가득히 옮겨와서 내게 떨궈준다.
책, 음악, 그림, 인물, 이야기가 그의 식량이다. 재기 넘치고 영민하며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감정에 솔직하고 감동을 잘한다. “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형?” “와 정말 훌륭하잖아요 형?” 버릇처럼 되묻는다. 나는 감동해 마지않는 그의 표정과 진심에 감동한다.
최근에 그로 하여금 찬탄을 자아내게 하는 인물은 ‘구자범’이다.
클래식음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 본 이름일 것이다. 그는 ‘정명훈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 정상급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동생 덕분에 그를 알게 되고 그의 강의를 시청했으며 그가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감히 지휘할 엄두를 못낸다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었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나는 그를 글과 강연으로 먼저 받아들인다. 우리나라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사실에 흐뭇해하고 안도감을 느낀다.
철학을 전공했음에도 음악을 선택했던 용기, 낯선 이국 땅에서 들였을 노력 그리고 외국에서 인정받은 명성과 보장된 미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야에서는 메마른 땅이었을 고국으로 돌아온 신념과 의지는 남다르다. 그의 글과 지휘하는 모습에서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연을 들으면서 그의 해박한 식견에 놀라고 열정에 녹을 것 같았지만 내가 나인지라 감탄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남편은 기자, 아내는 서울대 출신에 미국 박사라면 누구나 쉽게 연상되는 삶이 있다. 중앙 일간지의 촉망받던 기자였던 김선우는 돌연 사표를 던지고 기러기아빠 생활을 청산한다. 미국에 있던 가족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부러움을 사는 학벌과 화려했던 경력을 뒤로 한 채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월 수입 100만원으로도 풍족한 완전체가 된 네 식구의 행복이 부럽다. 정성드려 가꾼 농작물을 망치는 사슴을 원망하고 쫓아내기보다 사슴을 배우기로 했다는 말이 심오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이후로 작물 재배보다는 산과 들에 자라는 야생 작물을 채취해서 먹는다. 인터넷을 끊은 것은 물론 휴대폰도 네 식구가 두개를 돌려쓴다.
그는 기고와 번역, 동네 수영장 수상 안정요원 아르바이트로 돈벌이를 하지만 한국에서의 기자생활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두 딸에게 공부 스트레스란 게 있을 수 없다. 아내는 교수를 포기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는 코로나 이후 집을 팔고 떠날 세계여행을 구상 중이다.
구자범과 김선우는 닮은 듯 다른 삶을 택한다. 둘 다 강남 출신에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을 다녔었고 갓 쉰을 넘겼거나 앞두고 있다.
구자범은 독일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서른 아홉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김선우는 마흔에 기자로서의 이른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김선우가 아무런 계획없이 둘째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 오른 해가 2013년이다. 그해 구자범은 일부 단원의 모략과 음해로 지휘봉을 놓는다.
2012년 말. 첫사랑이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삶과 인간에 대한 회의가 찾아들고, 음악하는 의미를 잃었던 시기다. 그랬던 그에게 다시 지휘봉을 쥐어 준 사람은 스승 아르프 교수였다. 죽음을 앞둔 스승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제자의 손을 잡고 마지막 유언이 될 말을 남겼다. “넌 내가 가르쳤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내 앞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겠다고 약속해라.” 구자범은 귀국길에 아르프 교수가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얼마뒤 사모님에게서 메일이 온다. “내 남편이 너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잘 안다. 네가 최고의 제자라는 말은 20년 전부터 했다. 내 남편의 유지를 이어달라” 마침내 그는 지휘봉을 다시 잡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김선우에게는 선배기자였던 아버지의 삶이 변화를 가져온 계기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보수일간지 기자에서 '스콧 니어링'의 삶을 쫓게 된데는 분명 나름의 고심이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TV에 성동일이 출연했다. 국민아빠로 부상한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그의 아버지는 무능력했으며 무책임했고 폭력적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가 제게 물려준 유일한 유산이 있다. 당신과 정반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가르쳐 주신 것이다.” 라고 했다. 철학책 한권을 읽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김선우의 부친 역시 유력일간지의 논설위원을 거쳐 고문을 역임했다.
앞날이 보장된 독일 A급 오페라단의 수석 상임지휘자 자리를 박차고 척박한 풍토의 고국으로 돌아와 ‘인간을 위한 예술’을 펼치려는 구자범과 촉망받는 국내 유력일간지 기자에서 ‘지속 가능한 행복한 삶’을 찾아 먼 이국 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선우.
누군가는 돌아오고 또 다른 이는 떠나지만 나는 그들의 진정한 용기와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 열렬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