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에도 DMZ이 필요하다

by 문성훈

내놓고 자랑할만큼 잘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누군가 건강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요건에 대해 물어온다면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라"고 말하겠다.
'적절한'은 가늠하기 막연한 말이다. 생달걀을 쥔 손아귀의 힘이거나 생각보다 말이 뒤쳐져 오는 반 템포 정도의 간극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인간관계에 있어 이 정도의 긴장감은 소통과 공감은 넘나들게 하면서 결례나 오해의 경계를 지켜주는 초병이 되어준다. 배려나 격려조차도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러한 긴장관계는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열어준다.
운동선수도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푼다. 실수와 부상의 위험은 줄어들고 집중력과 감각은 깨어난다. 몸을 데워서 이마에 땀이 맺히기 직전의 상태. 서로의 체온과 입김이 불쾌감을 주지않을 정도의 거리, 몸과 마음이 경직되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제서야 플레이 할 준비가 된 것이다. 너무 의욕이 넘치면 과장과 허위가 끼어들고, 미리 지치면 상대에게 의존해서 민폐를 끼친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일 때. 자신을 고립시키고 내면 세계로 가라앉았을 때 가장 정직하고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며 행복이 충만해진다.
우리는 고독의 경계면 그 수면 위로 떠올라 숨을 쉬지만 이내 마른 공기와 차가운 온도를 감지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필요하고 손발을 허우적댄다. 그 손을 잡아주고 담요를 덮어주는 그 무엇. 그 무엇 때문에 사람이 필요하고 예술, 종교, 철학이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경계면을 의식하는 것이다. 수면을 일렁이게 하거나 거칠게 끌어당기는 힘은 거부할 지혜를 가져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내면세계 속으로 잠겼을 때 가장 행복한 것만은 분명하다. 철학이나 예술, 종교 조차도 심취하다보면 함몰되기 쉽고 함몰되면 나를 잃어버린다. 자신을 잃는 것은 그릇이 깨진 것과 같아 잠길 데가 없어진 것이다.

DMZ라는 낯선 얼굴로 다가와 어느새 익숙한 이름이 되어버린 지대가 있다. 이제는 무감각해질 지경이지만 한때 전쟁까지 치른 양 진영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현실은 변한 게 없다. 그런데 정작 그 지대는 평화롭고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갔다.
지방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근육질의 콘크리트 덩어리에 둘러싸인 도심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건 그 DMZ인지도 모른다. 풀 한포기 나지않는 아스팔트 도로를 경계로 우뚝 솟은 빌딩이 우리 모습일 수는 없다. 인간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살아있지도 않다.

지속적이고 발전적인 인간 관계란 결국 각자의 내면 세계를 가진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경계지대를 가꾸는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를 무시해도, 무단으로 침범하거나 깨뜨리면 무성한 지뢰밭을 피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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