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 누군가를 따르게도 되고, 친하게 지내기도 하지만 경원시하고,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만나거나 함께 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형님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학교 선배가 있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 주변 사람을 챙기고 품는 넉넉한 도량이 돋보이는 분이셨다. 20년가까이 가까이 지켜봤지만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 상황이 없을 수야 있겠는가. 그럴 때마다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특유의 재치있는 유머와 웃음으로 주위를 긴장시키지 않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반전 없는 소설과 영화가 재미없듯 사람도 반전이 있으면 감동이 배가 되거나 때로는 실망하게 된다.
유독 나를 아껴서 늘 곁에 두셨는데 언젠가 어떤 행사를 준비했던 후배들을 위한 만찬을 베푸셨던 적이 있다. 그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내게 맡기셨다. 잘 아는 회사 근처 식당을 예약해두었다.
식당 사장 내외와도 잘 아는 사이여서 피크 타임에 홀을 예약할 수 있었다. 실질적인 사장은 여주인이었는데 남편은 회사 운영을 하면서 아내를 도왔다.
행사는 무사히 치렀는데 행사 중에 식당 남자 사장과 선배가 구면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주인이 선배에게 다가와서 두손으로 악수를 받고 깊숙히 인사를 올려서 알게 됐다.
행사가 있고 난 후 직원들과 그 식당을 찾았을 때에서야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됐다.
사업적으로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남자 주인은 섬유 사업을 하는 선배 회사에 남품하는 협력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내게 어떤 관계냐고 묻고 난 후 그가 한 말은 무척 의외였다.
“아휴 얼마나 무서우신데요….. 좋은 분인 건 저는 잘 알죠. 그런데 일에 있어서는 어찌나 꼼꼼하고 철두철미하신지… 인정스럽기도 하시지만… 저희들은 회장님 뵐 때마다 벌벌 떱니다.”
후배들의 실없는 농담도, 버릇없어 보일 수 있는 행동도 언제나 그 특유의 미소와 재치있는 응수로 받아넘기시는 당신만을 봐왔던 나로서는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래서 선배를 대하는 내 자세가 바뀌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대신 존경은 흠모에 가까울 정도로 더 단단해졌고 인생을 살아가는 교훈 한가지를 더 얻을 수 있어서 반가왔다. 이런 반전은 사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참으로 싫어하는 부류인데 하마 같은 사람이다.
오래 전 유행했던 의류제품의 로고에 하마(Hlppo)가 쓰였던 건 특유의 친근하고 푸근해 보이는 선입견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마야 말로 내가 아는 동물 중에 가장 반전 있는 동물이다.
늘 강에 몸을 담그고 동그란 눈과 코를 내밀고 있거나 한가하게 노니는 모습으로 유순할 것만 같은데 실은 난폭하고 공격적이기로는 첫 손가락을 다투는 동물이다. 건드리거나 아무런 위험을 감지하지 않아도 달려들기 일쑤다.
사자도 덤벼들지 못하는 무장도 장난이 아니어서 우스꽝스러운 큰 입의 송곳니는 성체 수컷의 경우 30cm에 달하고 그 송곳니로 여차하면 동족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마의 타고난 공격성은 유명해서 연간 2000~4000명의 인명을 살상하는 것은 물론 우두머리가 되면 무리 안의 다른 새끼들은 모두 물어 죽인다. 그 방법 또한 잔인해서 쫓아내거나 상처를 입히는 게 아니라 밟고 물어뜯어 해체시켜야 직성이 풀릴 정도다.
흔히 느릿할 것 같다고 오해하지만 뭍에서조차 시속 50k이상으로 뛰니 인간의 2배만큼 빠르고 수영솜씨는 모터보트를 쫓아갈 정도다.
몸무게 1ton이상으로 육상동물 중에 코끼리와 흰코뿔소 다음가는 덩치를 자랑하는 코뿔소의 반전이다.
넓은 육지 대신 한정된 강에서 무리생활을 하는 하마의 개체가 무한 증식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가 아닌 동족의 새끼를 모두 죽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영역다툼에서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 생태 때문이기도 하다.
약한 수컷이나 다 자란 성체 수컷이라도 우두머리 다툼에서 패배하면 무리에서 쫓겨나게 되는데 자외선에 유독 약한 피부를 지닌 하마가 강을 떠난다는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하마의 영역 표시방법은 엽기적이기까지 한데 물속에서 대변을 보면서 꼬리를 흔들어 흩뿌리는 방식이다. 남미에서 사육하다 야생화된 하마들로 생태계가 교란되는 것은 천적도 없는데다 강을 이런 식으로 오염시키고 엄청난 식욕으로 식물들을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순하게 생긴 외양 혹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보여지는 느릿한 행동으로 공격적이거나 난폭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강과 무리를 떠나서 살 수 없는 포유류 동물인 하마.
사람 역시도 마찬가지다. 푸근해 보이는 외모나 공개된 장소에서 드러난 신중한 언행으로 지레 짐작해 자칫 인자하고 우직한 성품을 지녔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하마가 자신이 머무는 강물을 더러운 배설행위로 더럽히는 것처럼, 자신을 따르지 않는 동족은 잔인하게 짓밟는 본능처럼 자신의 좁은 영역에만 연연해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으로 가득찬 사람이란 걸 알게 되는 불쾌한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면 이런 부류의 사람은 곁에 두지 않는게 상책이다.
언제 나를 공격하고 내가 속한 사회와 조직을 배신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잠시 물 밖으로 그 크고 위압적인 몸집을 드러낼 때, 하품하듯 입을 벌리는 순간에 그 무시무시한 송곳니를 보게 됐다면 그때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물 안에서 쏟아내는 배설 행위는 볼 수 없으니 그가 몸 담그고 있는 강물의 고약한 냄새를 맡았다면 알아차려야 한다.
그마저 무시한다면 자신이 어리석거나 선입견과 아집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이다.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는 대인관계에서의 반전은 그 사람을 더 깊고 가깝게 혹은 외면하거나 멀리하게 만든다.
하마라고 해서 말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사실은 돼지에 더 가깝다. 생물학적 분류상으로… 이 또한 놀라운 반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