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010-000-000 김ㅇㅇ. 혹시 시간 되시면, 제주시에서 커피 한잔 하실까요? 갑작스레 요청하여 송구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김선생님의 문자다. 그의 글은 빼놓지 않고 읽는다. 정중함과 겸양은 일란성 쌍생아다. 짧은 문자에도 사람이 보인다. 그런데 하필 혹이 붙은 날이다.
“문성훈입니다. 만나 뵐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딸아이와 상의해보겠다고는 했지만
“….어디서 뵙는 게 좋을까요? 편하신 시간은 언제신지요?”라고 답신을 보냈다. 상의 결과와 무관하게 어찌됐건 만나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통화를 했고 점심 약속을 잡았다. 딸에겐 바닷가 근처이니 사진을 찍고 있으라고 했다. 족히 1시간이면 될거라고 나조차 미심쩍은 약속을 했다.
늦은 아침을 여유롭고 과하게 부페로 먹은 부녀는 오전을 숙소에서 뒹굴었다. 딸은 점심을 거르겠다고 했고 나 역시 배가 꺼지지 않았다. 아침식사 후 산책을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선생님은 차가 없다고 했다. 뚜벅이 동지인 것도 반갑다. 해변에 딸을 내려주고 식당으로 갔다. 제주 현지인들이 일하던 중에 들러서 먹는 식당이다. 말하자면 육지의 함바집인데 점심시간에만 문을 연다. 나 역시 제주를 찾으면 잘 가는 이런 식당이 몇 군데 있다. 관광객을 받는 웬만한 식당보다 푸짐하고 맛있다. 호주머니 가벼운 여행객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고마운 식당이다. 덕분에 맛집을 한군데 더 알게 됐다.
그는 프로필 사진 속 그대로다. 구면인듯 인사를 나눈다. 마음부터 닿아 있는 사람끼리 탐색은 의미가 없다. 그는 딸과의 오붓한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테니 전혀 괘념치 않아도 된다고 했다. 만나서 영광이란 말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어번 주고 받은 것 같다. 마치 어제 만났던 지인과 마저 나누지 못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간단하게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주고 받고는 평소의 생각과 글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어느덧 그릇은 비워졌고 이야기는 막 달아오르려던 참이다. 카페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바닷가의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은 카페였다. 선생님은 카페 주인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품이 단골인듯 싶었다.그는 술을 전혀 못하지만 커피를 좋아한다고 했다. 커피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커피맛을 잘 모르지만 진하고 맛있었다. 이곳으로 이끈 이유를 알겠다.
흔히 한국은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여있는 사회라고 한다. 남성들 간에는 술을 매개체로 급속히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굳이 학연을 끌어대려면 그는 한참 동문 선배인 셈이다. 하지만 둘은 학번으로 서로의 나이를 가늠할 뿐이다. 술을 못한다니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한번으로 끝날 인연이 아니라면, 오래 도록 보고싶다면 어설픈 동류의식에 기대서는 안된다. 이성간에도 이별을 예감하고 싶지 않다면 연애보다는 썸을 타는 편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다시한번 혼자 다닐 딸을 걱정한다. 다 큰 성인이고 벌건 대낮이다. 정작 애비는 태평이다. 이미 딸과 약속했던 시간은 지났다.
해방신학의 대가 혼 소브리노의 유일한 아시아인 제자이기도 한 선생님은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책 이야기를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발자취를 따라 취재차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려 했는데 2년째 미뤄지고 있다고 했다. 같은 세례명을 가진 나는 나야말로 교황의 선배가 아니겠냐는 실없고 발칙한 농을 건넸고 그는 왜 역대 교황이 프란치스코를 쓰지 못했는지를 말해줬다. 너무 위대한 성인이셨기에 감히 쫓을 수 없고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교황조차 부담스러워 했단다. 그런데 정작 나는 세례받을 당시에 당신께서 세속적으로는 너무 불행한 삶을 사셨으니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베풀고 기적을 행한 성인의 이름 받기를 원했었다. 물론 “그런 삶을 사셨다면 성인이 못되셨을 겁니다. 그런 성인은 안계세요”라는 신부님의 미소 머금은 따끔한 질책에 이내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건 남다른 달란트다. 그가 그랬다. 번역서가 아닌 원서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겐 축복이다. 더구나 그는 신랄하고 묵직한 신학서의 저자다.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책과 여행으로 수렴된다. 그는 나의 대책 없고 즉흥적인 여행 스타일을 흥미로워 했다.
“저는 뭐랄까…공기를 마시러 가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 곳의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이 마시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해서요”
나는 여태 가보지 못한 남미여행을 동경하고 있다고 했고 그는 3개월간 머물렀던 남미 경험을 나눠줬다.
“남미는 사람을 보러 가는 겁니다. 사람이 보이지요” 사람을 보이는 여행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제가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그는 내 글이 독특하고 남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일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과분하다고 만나뵙게 돼서 영광이라고 했다.
폰이 울렸다. 어느덧 만난 지 2시간을 넘겼다. 딸 아이는 혼자 택시로 움직이겠다고 했다. 나는 ‘곧 가겠다’는 말로 10분의 시간을 더 벌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기다리고 있을 딸아이를 생각해서 카페 앞에서 헤어지자고 했고 나는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다.
시간을 가리키는 ‘곧’은 여행하다 시골길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다 왔다’는 길안내만큼 신축성이 탁월한 단어다.
차 안에서 선생님은 다시한번 내 글에 두고 문체나 방식을 바꾸지 말라고 당부했다.
“원래 글쓰기를 배운 바도 없고 어릴 적부터 써오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제 글은 본 데 없고 근본 없는 글입니다. 그래서 바꾸거나 누구를 따라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생각하는 그대로고 내키는대로 긁적일 뿐이죠.”
“원래 예수님이 족보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서도 아귀가 잘 맞지 않습니다.”
그 말에 둘은 한바탕 웃었다. 헤어지면서 그는 제주에 오면 연락하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 그냥 택시 부를께’
‘1키로 남았어. 다왔어 신호대기중’
‘아까 거기서 여기까지 3분 거린데’
돌아가는 중에 딸아이의 톡이 날아들었다.
‘승질머리하고는…. 언제 네비로 찍어서 확인해봤대’ 중얼거렸다.
벌써 오후 3시다. 아무래도 오늘 오후는 지는 죄가 있어 봉사활동에 전념해야겠다.
“아빠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미리 알았으면 혼자 다녔지”
“꼭 모셔다 드리고 싶은 분이라서 바로 못왔어.”
“아시던 분이야?”
“오늘 첨 뵌 분인데… 그 분은 신학자신데…..”
주저리 주저리 변명을 대다가 문득 (너 한테 내가 왜 궁색하게 이래야 하지. 느닷없이 들이닥친 건 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대신 “그래 어디 가고싶어 (어디로 모실까요?)”라고 했다.
딸아이는 어느 마을 이름을 댔다. 그 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단다. 네비를 찍으니 60키로가 넘는다. 제주에서 60키로면 서울로 치면 상계동에서 양재동만큼 끝에서 끝이다.
“근데 아빠 내가 깜빡하고 sd카드를 빠트리고 왔지 뭐야. 급히 챙겨 오느라…”
“그럼 사진기로 못찍겠네. 폰으로만 찍어야 겠네. (어째 넌 누굴 닮아 뭘 잘 흘리고 다니냐 그래)”
“ 응. 근데 아빠 내 작품 사진 본 적 없지. 사겠다는 사람도 있어”
“그래서 팔았어? (그럼. 이번 달 용돈 안줘도 되겠네)”
“아니 가격을 못 정하겠어. 정하면 알려주려고…. 보여줄까”
“응(대체 뭔데 니 사진을 산대? 아마츄어. 그것도 사진학과 학생 작품도 아닌데…)”
인물 사진이었는데 느낌이 있었다.
“근데 말이다. 넌 서양화 전공인데…. 허구헌날 사진 찍고 컴퓨터 앞에서 사냐? (밤에는 잠 좀 자라. 아침에는 일찍 좀 일어나고)”
“아빠 현대미술은 말이야…… 주저리 주저리…..”
“음. 그래도 뭐 좀 그리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빨리 아빠 사무실에 걸어 놓을 그림이나 근사하게 몇 점 그려주라. 들인 본전 좀 뽑게)”
“그게 회화는….. 페인팅 작업은….. 어쩌고 저쩌고…..”
어느덧 차창 밖 전경은 고즈늑한 시골길로 바뀌어 있었다. 돌담 사이로 난 길을 구부구불 돌다보니 세련된 카페 하나가 눈에 띈다. 외딴 섬으로 갓 시집 온 서울 새댁처럼 새초롬한 자태가 주변 풍경과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어…. 여기 맘에 든다. 차도 마실 겸 여기 주차할까? 다왔는데…”
“아냐. 여기 내가 찾을 수 있어. 바닷가가 바로 앞인걸 뭐….”
몇 분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바다가 펼쳐졌다.
“여기 찍을 거 많겠네. 사진 많이 찍어. 아빠는 아까 그 카페에 있을게. 거기로 와”
“응. 나 거기 찾을 수 있어. 데려다 줄게. 아빠 왼쪽으로 가봐… 여기서 다시 오른 쪽으로….”
딸이 일러주는 대로 가다보니 동네를 벗어나 큰 길을 만난다.
“야! 찾을 수 있겠다며…. 으이그 (어째 길치인거까지 닮았냐 그래)”
“히히 잠깐만… 찾을 수 있다니까…. 일단 다시 오른쪽 저 골목으로… 앗 찾았다. 그 카페 이름…” 딸아이는 검색을 통해 카페의 이름을 찾아냈고 네비를 켜서 안내했다.
카페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딸은 사진을 찍으러 가고 나는 카페 안팎을 둘러본다. 얼마나 흘렀을까. 더운 날씨때문인지 딸아이는 후줄근해져서 돌아왔다.
“아휴 밖은 더워….”
“사진 많이 찍었니?”
“응”
“그럼. 차로 한바퀴 둘러보다 돌아갈까?”
우리는 작은 동네 구석구석을 멈췄다 가다를 반복하다 마침내 숙소로 방향을 틀었다.
“너. 아까 작품 사진…. 그거 아빠한테 톡으로 줘봐. 괜찮더라”
“응. 근데 아빠 페북이나 SNS에 올리면 안돼. 알았지? “
“왜. 부녀지간에도 지적 소유권 있냐? (넌 아직 아빠꺼니까 그것도 내꺼나 마찬가지지. 그런 감각을 누가 준 건대)”
“아무튼 안돼. 공개하는 거 아냐. 싫어. 아빠만 가지고 있어.”
“알았다. 알았어. 줘봐 (치사해서 혼자 감상하고 만다. 내가)”
“그런데 아빠 배고파?”
“아니 늦은 아침에…. 채 꺼지기도 전에 점심 먹었잖아. 나는 저녁 생각 없는데…. 왜?”
“응. 난 점심 안먹었잖아. 리조트로 ㅇㅇ 언니가 데리러 온다고 했거든 같이 저녁 먹을 것 같아서…”
ㅇㅇ 언니는 딸아이 친구의 언니인데 유난히 딸아이를 이뻐해서 딸이 제주에 올 때마다 친동생처럼 챙겨준다. 딸아이는 혼자 제주에 오게되면 그 언니 집에 머문다.
“그렇게 해. 나는 그 안에 스터디 카페 좋더라. 거기서 문닫을 때까지 있어야겠다.”
8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10시에는 돌아와. 너무 늦지말고…”
“음. 10시 반까지 올게”
“그래. 그럼 10시 반까지”
스터디 카페는 한산했다. 함께 가족여행 온 듯한 젊은 엄마 네 사람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넓은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하루를 정리하려는데 창 밖의 제주 밤 정취가 눈길을 앗아간다. 운무가 꼈다가 이내 그치길 반복했다.
안내문에는 10시에 폐장한다고 나와있다. 어느덧 스터디 카페에는 혼자만이 남아있다. 이윽고 10시가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적거렸더니 음악이 그치더니 예고도 없이 조명이 꺼져 버린다. 스마트폰 램프에 의존해 가방을 챙긴다. 아직 딸아이가 올 시간은 아니다.
산 속에서 밤은 빨리도 흐른다. 11시 30분. 딸아이에게 전화를 한다.
“어디야? 언제 오려고 그래?”
“곧 출발할거야. 아빠 아직 안잤어?”
“니가 안들어왔는데 아빠가 자니. 조심해서 들어와 (곧? 그거 낮에 내가 쓴건데 복수하니 지금?)”
“응. 언니가 길 잘 알아.”
딸아이는 자정이 되기 전에 돌아왔다.
“코로나 땜에 식당도 일찍 문닫았을텐데 어디 있었니?”
“응. 언니집에…. 거기서 저녁 먹고 지금까지 있었어”
제주에서의 사흘째 밤이 저문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차를 가져다 줘야 한다.
“그만 자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 돼”
“응. 사진 마저 정리하고… 근데 아빠 다음에도 제주 오게되면 엄마한테만 말고 나한테도 일정 물어봐 줘. 같이 오게…”
“ 알았어. (설마 내가 그러겠니? 지금도 후회가 되는데…. 신경 쓰이고 간수하기 힘들고…..) 불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