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떠난다고 했다. 만나고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고 한국에서 마지막 만나는 사람이 나라고 했다.
“뭘 먹을래? 냉면? 아니면 백반집도 괜찮은데 있는데… 한식?”
” 백반요“ 그는 삼계탕을 시켰다. 아마 한동안은 먹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때 교수님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겠죠? 감사드려요. 꼭 뵙고 갈려고 했거든요.” 씨익 웃는데 가벼운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같다.
지난주 금요일에 전화가 왔었다.
“저 내일 결혼해요. 꼭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하하하. 죄송해요 너무 급작스럽고 서둘다보니…. 다음 주에 뵈러갈려고요.”
전화를 끊자마자 직접 만들었다는 웨딩사진을 보내줬다. 말로만 들었던 그의 연인을 사진으로 만났다. 같이 오려고 했는데 그녀는 지방 본가에서 짐을 꾸리느라 내일 공항에서 만난다고 했다.
결혼한지 1주일된 한 쌍의 젊은 부부가 독일로 떠나는 것이다. 그 곳에 정착할 것이라고 했다. 베를린 공대에 입학허가를 받은 신부는 박사과정까지 마칠 예정이고 그는 우선 취업해서 기반을 닦다가 아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가면 자신도 다시 공부를 계속 할 계획이라고 했다.
내 일처럼 반갑고 20대로 돌아간듯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4년전 진로를 고민하며 휴학 중이던 그를 만났다. 내 수업을 청강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다른 학생과 같이 출석을 하고 리포트를 내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다음해 복학해서 내 수업을 다시 수강했다.
어느날 면담을 신청해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유학과 취업,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애기를 나눴다. 나는 주저하지 말고 당장 떠나라고 조언해줬다. 두드려보고 재는데 시간을 보내느니 부딪치고 헤쳐나가라고 했다. 주춤거리고 우물쭈물하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였다. 나머지 문제는 허들에 불과하다고 했고 현실적인 대안도 좀더 산 사람으로서 얘기해줬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뛰어넘었고 독일로 떠났다. 지금 아내가 바로 독일에서 만난 여자친구였다.
그녀는 간호학과를 다니다 다시 수학교육을 전공해서 석사과정을 1년 반만에 조기졸업했다고 했다. 가슴을 뜨겁게하는 일을 하고싶어 진로를 수정하다보니 남보다 늦은 출발이어서 지체없이 달렸던 모양이다. 수학하고 싶은 독일의 교수에게 석사, 박사과정 둘 다 지원했는데 석사과정이 됐다. 한국에서 석사를 밟고 서른에 타국에서 다시 석사과정을 시작하는 용기와 집념이 느껴지니 더 마음이 놓이고 든든해진다. 내일 통화라도 하게되면 되려 그를 부탁할지도 모른다.
작년에 귀국한 두 사람이 독일행을 결심하고 양가에 통보를 한 것이 추석이었다. 처음에는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 동거를 할 계획이었는데 어른들을 뵈었던 자리에서 혼담이 오가고 결혼까지 단숨에 이뤄졌다고 했다.
독일에서의 취업과 공부 계획이 구체적이다. 착실하게 준비하고 오랫동안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1년동안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이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 모두 언어 장벽이 없고 현지생활에 잘 적응했던데다 무엇보다 바라보는 지점이 같으니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는 내게 고맙다고 했지만 실상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는 흔히 책이나 만나는 사람에 의해서 인생행로가 바뀌는 경우를 보고 듣고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비슷한 얘기를 듣고 같은 사람을 만났더라도 사람마다 선택은 갈린다.
책이든 사람이든 자극은 줄 수 있지만 자기 안에 태울 수 있는 무언가가 없으면 불꽃이 튀지 않는다. 그 불길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하는 삶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너 가야되지? 준비할 게 많을거고.”
“네”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힐끔힐끔 스마트폰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안전국가로 분류돼서 독일 도착해서도 자가격리를 하지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다.
“베를린 오시면 꼭 오셔야돼요. 한국 들어오면 또 뵈러 오겠습니다.”
“단문으로라도 하루하루 일기 쓰듯 거기 생활 써나가. 도움이 될거야. 고민있거나 상의할 거 있으면 메일은 계속 보내고….”
“네~ 내일 공항에서 전화드리겠습니다.”
출발이다.